한 바퀴를 돌아 다시, 봄

-환갑, 또 한 번의 시작

by 연필 든 정원사

생일 아침이다.

오늘 같은 날이면 어김없이 이른 새벽부터 걸려오던 엄마의 전화가 생각난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기억을 더듬어 작년 봄 환갑을 맞던 그날 아침으로 돌아간다.


십간(十干)과 십이지(十二支)가 만나 이루는 육십갑자의 한 바퀴를 돌아, 다시 태어난 해로 돌아온 생일 아침의 마음은 유난히 특별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몸을 빌려 세상에 첫울음을 터뜨리며 이어 온 삶이 한 바퀴를 돌아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 시간, 나는 비로소 어른의 옷을 입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태중에서부터 나를 품고 사랑으로 길러 주셨던 그분들은 이제 더 이상 뵐 수 없는, 기억 속의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엄마가 지금도 살아 계셨다면, 오늘 새벽에도 어김없이 전화를 주셨을 것이다.
잘 들리지 않는 귀를 수화기에 바짝 대고, 늘 그러셨듯이 미안한 목소리로.


“오늘 네 생일이지?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못 해 주는구나….”

“괜찮아요, 엄마. 엄마만 건강하시면 돼요!.”

“쑥이 한창 올라오는 봄인데, 쑥떡이라도 해 주면 좋으련만….”


나이가 드실수록 떨어지는 청력 탓에 고함치듯 주고받는 통화였지만, 엄마의 전화는 언제나 가장 먼저 도착하는 생일 선물이었다.

집을 떠나 학교에 다니고, 직장을 얻고, 그 후 결혼하여 부모님의 품을 떠난 뒤로 실제로 쑥떡을 얻어먹는 일은 거의 없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엄마를 자주 찾아뵙지 못했기 때문이다.


짧은 통화를 끝내고 나면 한동안 전화기를 내려다보곤 했다. 딸의 생일을 챙겨 주지 못하는 아쉬움과 미안함을 담은 엄마의 목소리가 길게 여운으로 남는 시간이었다.

결혼하고 내 아이를 낳고 기르며 부모로 살아가게 된 어느 때부터 내게 생일은 그다지 특별한 날이 아니었다. 학창 시절처럼 친구들의 요란한 축하도, 누군가 끓여 주는 미역국도 없는 날. 어쩌면 평소보다 조금 더 쓸쓸한 하루이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

그 애틋한 전화를 더는 기대할 수 없는 생일 아침이다.

나도 어느새 엄마처럼 눈가와 이마에 주름이 잡히고, 검은 머리 대신 흰머리가 더 많은 나이가 되었다.


내 생일은 음력 이월 중순, 양력으로는 대략 삼월 하순 무렵에 찾아온다. 봄이 일찍 온 해에는 엄마가 여린 쑥을 뜯어 쑥인절미를 만들어 주셨다. 아직 봄풀이 제대로 자라지 않은 양지바른 밭둑을 오가며 쑥을 뜯었을 엄마의 마음을 떠올리면 코끝이 알싸해진다.

엄마 나이 마흔을 넘어 얻은 늦둥이 딸인 나는 엄마에게 유난히 애틋한 막내딸이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음에도 반드시 대학에 가겠다는 철없는 딸의 바람을 꺾지 않으셨다. 농사를 짓는 틈틈이 시장에 나가 장사를 하며 뒷바라지를 해 주신 강인한 엄마였다.


그 고단하고 치열했던 엄마의 시간을 디딤돌 삼아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얻었다. 딸이 맞벌이하는 직장인으로 바쁘게 살며 제 손으로 미역국 하나 제대로 끓여 먹지 못할 것을 아시고, 늘 안타까운 마음으로 전화하셨던 엄마였다.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던 엄마의 목소리는 이제 다시 들을 수 없는 너무 먼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다. 살아 계실 때 한 번이라도 더 찾아뵐걸, 고단한 세월의 흔적처럼 굽어진 등을 한 번 더 쓰다듬어 드릴 걸…. 마음만 있었을 뿐, 시간 내어 전하지 못한 일들만 회한 속에서 줄줄이 떠오른다. 그래서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늘 늦는 것인가 보다.


그리운 시간은 다 어디로 흘러가 버린 것일까.

친정 부모님을 떠올리면 콧날이 시큰해진다. 지금은 두 분 모두 백세를 넘기셨을 나이, 살아 계신다고 하더라도 거동이 불편해 아마 요양원에 계셨을지도 모른다. 요즘은 건강하게 장수하는 어르신들도 많은데 그보다 훨씬 이른 나이에 고인이 되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언제나 아쉽고 그립다.


그리움은 또 다른 기억을 불러낸다. 아버지의 환갑날 아침 풍경을 더듬어 본다.

그 시절 부모의 환갑은 동네의 잔칫날이었다. 친지와 마을 사람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열고, 자녀들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성대한 상을 차려 드리곤 했다. 기대 수명이 길지 않았던 시대에 환갑은 큰 축하를 받는 행사였고, 장수의 증표이자 하늘의 축복처럼 여겨지는 날이었다.


내 나이 스물여섯이던 오월의 화창한 봄날, 그날은 아버지의 환갑이었다. 초등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아 타지에서 근무하던 나는 특별 휴가를 받아 오랜만에 고향을 찾았다.

시외버스를 타고 대관령을 넘으며 바라본 오월의 풍경은 온통 초록빛이 지천이었다. 오랜만에 집으로 향한다는 설렘 때문이었을까. 세상은 유난히 싱그럽고 아름다워 보였다.


그날 아침, 나는 흰 블라우스에 분홍 구두를 신고 환갑의 나이를 맞이하신 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걸었다. 그 짧은 걸음 속에 함께 했던 아버지의 온기가 바로 얼마 전의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환갑을 축하하며 남겼던 기념사진을 들여다본다. 고모님들과 친척 어른들 가운데 대부분은 이제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다만 그날 우리가 함께 왁자지껄 흥겹게 떠들며 지었던 환한 표정만 남아있을 뿐이다.

빛바랜 사진 한 장으로 남아 버린 그리운 순간들, 시간은 많은 것을 지워 버렸지만, 어떤 장면은 선명하게 남아 잠시 그 시간 속에 데려다 놓기도 한다.


그리고 오늘, 나는 그날의 아버지처럼 인생의 또 다른 출발점에 서 있다.

이제 환갑의 의미가 많이 달라졌다. 그 시절 예순의 나이가 노년의 문턱이었다면, 지금의 예순은 아직 한참을 더 살아갈 시간의 초입에 가깝다.

나 역시 여전히 미숙하고, 여전히 배워야 할 것이 많지만 이제는 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상태에 이르는 일이 아니라, 아직 도달하지 못한 길을 묵묵히 살아내며 견디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인지 예순의 시간은 도착점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의 출발점으로 느껴진다.


빠르게 달려오던 시간을 지나, 이제는 속도를 늦추며 다른 길을 바라보게 되는 시기. 나는 지금의 나를 받아들인다. 저무는 황혼은 아직 보지 못한 풍경을 보여 줄 것이고, 앞으로의 시간은 새로운 감각과 깨달음을 안겨 줄 것이다. 삶은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나의 미래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남편과 함께 조촐한 생일상을 차려 식사하고, 자연스럽게 정원으로 향한다. 꽃밭에서 구절초를 캐어 빈 언덕으로 옮겨 심다 보니 목덜미와 등에 땀이 배어 나온다. 남편은 오늘 낮 기온이 20도 가까이 올랐다고 말해 준다.

더디게 시작된 봄이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조금만 천천히 와도 좋으련만, 덕분에 수선화의 꽃대도 늘씬하게 올라왔다. 며칠 뒤면 노란 꽃송이를 보여 줄 듯하다. 매서운 겨울의 추위를 견디고 꽃대를 밀어 올리는 수선화처럼, 오늘 맞이한 시간은 다시 나에게 찾아온 봄이다.

쑥.jpg

“엄마, 생일 축하해요. 이번 주말에 생신 축하 자리 예약해 두었으니 잊지 마세요.”

이제는 엄마의 전화 대신 딸들의 목소리가 나에게 찾아온다. 엄마의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지만, 그 빈자리를 따뜻하게 채워 주는 목소리다.


딸과의 통화를 끝내고, 봄볕이 드는 밭둑으로 나간다.

양지바른 땅에 올라온 여리고 어린 쑥을 조심스레 뜯어본다. 어린 날 맡았던 쑥 향이 그리움과 함께 올라온다.

아득하게 멀어진 시간 속에서, 막내딸을 위해 쑥을 뜯던 엄마의 그 시간이 함께 따라온다.

어쩜 오늘의 봄날은,

내가 다시 시작하는 두 번째 생의 첫 문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