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꽃을 피우는 삶
“꼬꼬댁 꼬꼬, 꼬꼬댁 꼬꼬꼬.”
몇 시쯤이나 되었을까. 잠결에 들려오는 닭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수탉이 우렁차게 선창을 하면 암탉들이 뒤이어 꼬꼬댁거리며 새벽의 정적을 깨운다.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이웃의 닭장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시골에서 살던 어린 시절에도 이른 새벽이면 어김없이 닭들이 이렇게 우렁찬 울음소리로 단잠을 깨우곤 했다. 그래서일까. 잠자리에서 듣는 닭 울음소리가 시끄럽다기보다 어쩐지 정겹게 느껴진다.
닭들은 참 부지런하다. 깨워 주는 이가 없어도 때를 알아 온 동네의 새벽을 깨운다. 어둠이 물러가며 밝아오는 아침처럼 점차 잦아드는 닭 울음소리를 알람 삼아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시골의 봄 아침은 언제나 상쾌하다. 지난밤 잠자리에 들면서 기대했던 바로 그 아침의 모습이다.
오늘은 해가 떠오르기 전, 언덕 아래 밭에 내려가 완두콩을 수확하기로 했다.
이른 봄의 일이다. 창고를 정리하다가 검은 비닐봉지 하나를 발견했다. 열어보니 묵은 완두콩 씨앗이었다. 시골살이를 시작하며 심으려고 사 두었다가 파종 시기를 놓치고 잊어버렸던 모양이다.
삼 년이나 지난 씨앗은 쪼글쪼글했고 연둣빛도 많이 바래 있었다. 버릴까 하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두세 알씩 심어 두었다. 별 기대 없이 호미로 흙만 살짝 덮어 주었는데, 며칠 뒤 놀랍게도 연둣빛 새싹들이 검은흙을 뚫고 올라오고 있었다.
컴컴하고 어두운 창고에서 긴 시간을 견딘 씨앗이 흙을 만나 환한 세상 밖으로 고개를 내민 것이 신기하고 대견했다.
그렇게 나온 여린 싹들은 따뜻한 봄 햇살과 촉촉한 봄비 속에서 하루가 다르게 자랐다. 연둣빛 새싹은 봄 햇살을 받으며 점점 짙어졌고 줄기를 뻗기 시작했다. 지지대를 세우고 줄을 띄워 주었더니 차분히 감고 올라가 어느 날 하얀 꽃을 피웠다.
여린 흰나비의 날개를 닮은 완두콩 꽃은 정원에서 보는 꽃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묵은 씨앗을 버리지 않고 심은 수고를 보상받는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르자 꽃 진 자리마다 초록 꼬투리가 조롱조롱 매달렸다. 납작하던 꼬투리들이 점점 통통하게 살이 오르더니 누르스름한 기운을 띠며 수확할 때가 되었음을 알려주었다.
꼬투리 하나를 툭 따서 껍질을 벗기니 초록의 작은 콩알들이 가지런히 들어 있다.
“여보, 이 꼬투리 안에 콩이 몇 개나 들었을까?”
기울어진 지지대를 손보던 남편이 내 곁으로 다가오며 말한다.
“글쎄, 다섯 개? 여섯 개쯤?”
“맞아. 씨앗 하나가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맺는다더니 정말 그렇네.”
“이렇게 많이 달렸는데 그 묵은 씨앗을 그냥 버렸으면 어쩔 뻔했어.”
겨우 콩꼬투리 하나를 까면서 괜히 호들갑을 떨어 본다.
결실의 기쁨이 이런 것인가 보다.
초록의 완두콩은 그저 시장 한 귀퉁이나 마트 식자재 코너에서나 보던 것이었다. 내 손으로 심고 가꾸어 수확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더구나 흙도 만나 보지 못한 채 사라질 뻔했던 씨앗의 결실이기에 감동이 더 크다.
누르스름한 꼬투리만 골라 땄는데도 비닐봉지가 제법 묵직하다. 생각보다 많은 수확에 마음이 흐뭇하다.
밭에서 집으로 올라오는 길 끝에 이르면 우리 집 정원과 이어진다. 철도 침목으로 만든 계단을 따라 느긋하게 올라오다 보니 화사한 꽃무리가 시선을 끈다. 자갈마당 한쪽에 자리 잡은 끈끈이대나물이 군락을 이루어 분홍꽃대를 밀어 올렸다.
지난해 씨앗을 채종 하며 떨어뜨렸던 모양이다. 마당 여기저기에 아무렇게나 떨어진 씨앗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 질기고 성실한 생명력에 새삼 감탄이 올라오는 광경이다.
씨앗의 정직함이 이런 것인가 보다. 눈에 보이지 않던 그 씨앗들은 어느 순간 그들만의 온도와 바람, 수분을 만나면 반드시 싹을 틔운다.
기어이 돌틈을 뚫고 비집고 올라온 작고 연약한 모종들을 나는 차마 뽑아내지 못하고 함께 공생을 허락했다. 자주 지나는 길이라 밟지 않도록 돌아가야 하는 불편함도 있었지만, ‘어디 한번 꽃을 피워 봐’ 하고 응원해 주고 싶었다.
보호받지 못한 척박한 자리에서 싹을 틔운 그들이 자라 꽃을 피운 풍경 앞에서 남편과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춘다. 꽃밭이라는 안전한 경계를 벗어난 자리에 뿌리를 내렸지만, 기죽지 않고 꽃을 피워 낸 끈질김이 생명의 본질처럼 느껴져 뭉클하다. 엉성하고 볼품없어 보여도 있는 힘껏 꽃을 피운 저들의 수고에 오래 눈을 맞춘다.
우리 부부는 아직 정원과 텃밭 일에 서툴다. 마당 주변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꽃들을 아까워하며 과감하게 뽑아내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의 정원에는 일목요연한 단정함 대신, 경계 밖에서 서성이고 흔들리며 피는 꽃들로 어수선하다.
세련되고 매끈한 것들이 주는 화려함도 좋지만, 울타리 밖에서 서성이며 기다림의 시간을 견딘 꽃들의 당당함이 더 좋다.
오늘 아침, 텃밭에서 만난 완두콩 씨앗도, 나의 정원에 초대받지 못하고 자갈마당에서도 마침내 고운 꽃을 피워 올린 꽃들도 나에게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자리가 넉넉하지 않아도, 돌보는 이가 없어도,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묵묵히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보라고 말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삶도 씨앗 하나와 다르지 않다. 어떤 씨앗은 기름진 밭에 떨어지고, 어떤 씨앗은 자갈 섞인 거친 땅에 내려앉는다. 그러나 어디에 떨어졌든 결국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낸다.
완두콩이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집으로 올라오는 아침, 나는 잠시 걸음을 늦춘다.
자갈마당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꽃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어쩌면 삶이란, 누구보다 멋진 모습으로 피어나는 일이 아니라 그저, 자기 자리에서 끝내 꽃을 피워 내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