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에서 돌아온 일요일 오후이다.
저녁 무렵 찾아올 손님맞이 준비로 마음이 분주하다. 식사를 준비하다 보니 파가 필요했다. 텃밭으로 나가 쪽파 한 줌을 뽑아오기로 한다.
현관문을 나서면 바로 집 앞에 작은 텃밭이 있다. 이곳은 마트가 가깝지 않아 다소 불편한 시골이지만, 봄부터 가을까지는 이 작은 밭에서 파와 상추, 고추, 가지 같은 식재료를 언제든 얻을 수 있다. 내 손으로 가꾼 싱싱한 채소를 바로 식탁에 올릴 수 있다는 것은 시골살이의 분명한 즐거움이다.
남편은 지난해, 나무판자로 테두리를 두른 길쭉한 밭을 만들어 주었다. 우리 부부는 그곳을 ‘틀밭’이라 부른다. 아직은 이른 봄이라 지난가을 심어 둔 쪽파만이 푸르게 자라고 있다.
쪽파 한 줌을 쑥 뽑아 든다. 따뜻한 봄기운을 받은 덕분인지 하루가 다르게 싱싱하게 자란다. 다른 집 쪽파에 비하면 여리고 볼품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내 눈에는 꽤 대견한 농산물이다.
밭 한쪽에 돌아 앉아 쪽파를 다듬는다. 식물도 감정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탓일까. 뿌리를 잘라내고 흙을 털어내는 일이 어쩐지 조심스럽다. 방금 전까지 땅에 자리 잡고 있던 것을 뽑아낸 까닭에 , 뿌리를 자르고 누런 잎을 떼어내면서도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다. 마트에서 사 온 파를 다듬을 때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내가 심고 가꾼 쪽파는 시장에서 파는 것처럼 미끈하고 반듯한 모양은 아니다. 하지만 농약 한 번, 화학비료 한 줌 쓰지 않은 먹거리라는 생각에 오히려 마음이 놓인다. 등 뒤로 내려앉는 봄 햇살이 쪽파의 초록빛과 어우러져 유난히 싱그럽다.
문득 며칠 전 부녀회 모임에서 만났던 동네 어르신의 말씀을 떠올린다.
“농약을 치지 않고는 작물을 키우기 어렵지요?.”
“이분은 농약 안 해. 유기농으로 농사짓는 분이야.”
농사를 짓는 일의 어려움을 묻는 내게 곁에 있던 다른 아주머니께서 얼른 대답을 해주셨다. 농약을 치지 않고 농사를 짓는다는 말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요즘처럼 농약과 비료 사용이 당연한 시대에 유기농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분명한 철학과 고집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평범해 보이던 어르신이 그 순간 다르게 보였다.
직접 농사를 지어보니 그 말의 무게를 알 것도 같았다. 땅속의 작물을 갉아먹는 굼벵이, 여린 상추를 갉아먹는 달팽이, 수확철마다 먼저 파고드는 벌레들까지. 자연 그대로의 농사는 결국 벌레들과 나누어 먹는 일이라는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꽃을 키우는 일조차 예외는 아니었다.
어르신은 유기농으로 재배한 농산물을 판매했던 경험도 들려주셨다. 크기도 작고 모양도 고르지 않은 농산물은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어려웠고, 오히려 불평을 듣는 일이 더 많았다고 했다. 애써 키운 작물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일은 결국 마음의 상처로 남았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은 그저 먹을 만큼, 자식들과 나눌 만큼만 농사를 지으신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너무 쉽게 겉모습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것은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먹거리에도 마찬가지다. 크고 반듯하고 흠 없는 것을 고르는 일이 너무도 자연스럽다. 하지만 자연 상태에서 그런 모습이 만들어지기란 쉽지 않다. 우리가 ‘좋은 것’이라 여기는 기준이, 결국은 농약과 비료를 부르는 셈이다.
가끔 외국을 여행하며 로컬 시장에서 보았던 작고 투박한 채소들이 떠오른다. 그때는 누가 저런 것을 사 먹을까 싶었지만, 이제는 안다. 그것이 오히려 자연에 가까운 건강한 먹거리였다는 것을 말이다.
유기농 농사는 단순히 농약을 쓰지 않는 일이 아니라, 자연의 순환을 거스르지 않겠다는 태도에 가깝다. 그리고 그 태도는 결국,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로 되돌아온다.
오늘 내가 뽑아 온 쪽파 역시 튼실하지도, 반듯하지도 않다.
뿌리에는 흙이 엉겨 있고, 매서운 겨울 추위를 견디느라 제대로 자라지 못한 잎은 다소 엉성하다.
나는 잠시 다듬던 손을 멈추고 쪽파를 바라본다.
조금 전까지 조심스럽게 잘라내던 뿌리가 더욱 믿음직스러워 보인다.
이 쪽파는 누군가의 선택을 받기 위해 자란 것이 아니라
제 힘으로 겨울을 버티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나는 다시 쪽파를 손에 둘고 조심스럽게 흙을 털어내고, 마른 잎을 벗겨낸다.
한 가닥도 허투루 버리지 않겠다고 마음먹는다.
그것이 이 소박한 한 줌의 쪽파에 대한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다듬어 놓은 쪽파의 초록빛이
이전보다 조금 더 깊고 싱싱하게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