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비가 머문 자리

by 연필 든 정원사

지난 계절의 흔적이 남아 있는 밭에서 마른풀을 제거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굵은 나무처럼 누렇게 말라버린 줄기와 풀뿌리를 낫과 호미로 뽑아낸다.

억센 뿌리를 호미로 들어내는 순간, 흙이 묻은 돌멩이 같은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앗!, 깜짝이야!”

화들짝 놀란 나는 한걸음 뒤로 물러서며 소리를 질렀다.

손바닥만 한 두꺼비였다.


“휴, 뱀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린다.

이곳에 내려와 살며 이따금 많은 종류의 벌레들이나 곤충과 마주치지만, 그런 상황이 그리 무섭지는 않다.

뱀을 보아도 징그럽게 생긴 탓에 싫기는 하지만, 그것을 꼭 없애버려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어쩌면 이곳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그들일지도 모른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잠시 호미를 내려놓고 녀석을 살펴보기로 했다.

갈색 바탕에 얼룩덜룩한 무늬를 가진 피부, 울퉁불퉁한 몸은 주변의 흙이나 마른 나뭇잎을 닮아 있었다.

그 때문일까.

자기를 보고 놀란 나와 달리 녀석은 느긋해 보인다.

이곳은 원래 자신의 구역이라는 듯, 도망갈 생각도 없이 제자리에서 가만히 있다.

작은 두 눈을 천천히 깜빡이며 갑자기 나타난 나를 경계하는 눈치다.


어린 시절 시골집에서 자주 보던 두꺼비가 떠올랐다.

무섭다기보다 반갑고 정감이 간다.

이 모습을 나 혼자만 보기에는 아쉬워, 나뭇가지를 전지하고 있는 남편을 불렀다.

“여보, 빨리 와봐. 여기 뭐가 있어!”

손나팔을 만들어 소리치자 남편은 무슨 일인가 싶어 서둘러 달려왔다.


“무슨 일인데?”

“두꺼비야. 오랜만이라 같이 보려고.”

우리는 쪼그리고 앉아 한동안 두꺼비를 지켜보았다.

“두꺼비가 있으면 땅이 건강하대. 벌레도 많이 잡아먹고.”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모르는 게 없네.”

남편은 나를 대단하다는 듯 바라본다.

내가 스마트폰으로 슬쩍 정보를 찾아봤다는 사실은 모른 채 말이다.

그런 남편 덕분에 내 ‘아는 체’도 점점 늘어가는 것 같아 슬며시 웃음이 난다.


“사라지기 전에 얼른 사진 한 장 찍어줘요.”

가만히 있던 두꺼비가 느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남편이 장갑을 벗고 휴대폰을 들어 올린다.

찰칵.

아마도 오늘 정원일기의 주인공은 저 두꺼비일 것이다.

두꺼비는 한 번 자리 잡은 곳을 잘 떠나지 않는다고 하니, 이곳에 터를 잡고 오래 살아주었으면 좋겠다.

잠시 멈추었던 밭일을 다시 시작한다.

묵은 풀을 정리하는 일은 여전히 힘이 들고, 이마에는 어느새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몇 시간의 수고 끝에 밭이 깨끗하게 정리되었다.

몸은 고단하지만 미루어 두었던 과제를 끝낸 것처럼 마음이 한결 가볍다.

올해 이 밭에는 무엇을 심을까. 생각만으로도 기대가 된다.

무엇을 심기 위해서는 먼저 비워내야 한다.

채워져 있는 것을 그대로 둔 채로는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없다.

허리를 펴고 일어나 호미와 낫을 챙겨 집으로 올라가는 길,

나는 왜 이 힘든 일을 계속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눈을 돌리니 주변 풍경이 달라져 있다.

누렇게 마른풀로 덮여 있던 언덕마다 파릇한 봄기운이 무연히 번지고 있다.

생강나무에는 노란 꽃이 피어 옅은 향기를 흘리고, 진달래도 연분홍 꽃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체리나무의 꽃망울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풀어 있다.

아마도 이 봄날의 풍경이 그 답일 것이다.


비어 있던 자리가 다시 채워지는 것을 바라보는 일, 우연히 만난 두꺼비를 통해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일,

그것만으로도 오늘의 수고는 충분히 보상이 된다.

나이를 더할수록 봄이 더 좋아진다.

한껏 움츠렸던 것들이 제때를 알고 몸을 여는 계절, 자연에서 만나는 것들은 항상 반복되지만 결코 같은 모습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지난 시간에 대하여 묻지 않고, 다시 시작하라고 일깨워주는 시간이다.

나무 계단 끝에 이르자 보랏빛 제비꽃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 작은 것들은 모여 만드는 아름다움은 특별하게 아름답다.

크고 작음을 떠나, 각자의 자리에서 다투지 않고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은 참으로 보기 좋다.

나 역시 그렇게, 내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