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날은 2021년 12월 23일이었다.
- 정말 크리스마스 선물이네.
가족끼리 취업 합격을 만끽하고 여흥의 종국에는 그런 말로 마무리했던 것 같다.
합격 문자를 기다리느라 더이상 졸아질 액체도 없을 만큼 타들어갔던 마음은 모두 잊었고
이브 전 날 공지해준 인사팀 임직원분들이 참 마음 따뜻하신 분들이라고도 생각했다.
지원한 기업에 모두 떨어지고 마지막 남은 S사에 합격하고 든 생각은
아 이제 됐다. 가 끝이었다.
그간 혼자서 별의별 상상을 다 했던 탓인지
결정적인 순간에 남은 맛은 싱거움밖에 없는 듯했다.
취업 준비할 동안 한번도 날 들들 볶지 않았던 부모님이,
행여 내가 신경쓸까봐 취업 얘기는 꺼내지도 않던 부모님이,
합격 통지날을 기점으로 과할 정도로 약속을 잡기 시작하셨다.
모임의 요지는. S사 들어간 딸내미.
엄마 동기 모임, 아빠 동기 모임, 부부 골프 모임, 성당 모임, 친척 모임...
그런 날이 며칠 이어지다가 하루는 엄마가 조금 풀이 죽은 채로 돌아오시더니 이렇게 물으셨다.
- 딸, 너희 회사... 약 만드는 데 맞지?
- 응. 바이오펄머쓔티컬. 항암제 같은 거 있잖아.
- 음...
- 응? 왜?
- 아니, 엄마 친구 하나가 S사 하는 일이 정확히 뭔지 묻더라고.
엄마의 눈알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 약 만든다고 말해줬는데 갑자기 어떤 약을 만드느니, 걔네가 직접 개발을 하는 건지
뭐 이런 걸 꼬치꼬치 캐묻는 거 있지. 좀 알아야 콧대를 제대로 밟아주고 오는 건데.
엄마가 그동안 자랑을 많이 하고 싶으셨구나. 싶었다.
- 바이오 의약품을 우리가 직접 개발하는 건 아니고 씨에모만 하는 거야.
고객사한테 계약을 따오면 그때부터 쎌컬쳐랑 퓨리피케이션 프로세스를 거쳐서 위탁생산 해주는 시스템.
이해가 좀 가요?
내 설명이 엄마의 얼굴을 조금 얼빠지게 만드는 걸 보고서야
CMO, Biopharmaceutical, Cell culture, Purification 같은 단어가
얼마나 배려없는 설명이었는지 깨달았다.
2.
바이오 의약품, 입에 잘 안 붙는 단어다.
앞에는 영어고 뒤에는 한자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여하튼, 당신은 바이오 의약품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것이 있는가?
나는 바이오 의약품 하면, 항상 대형 병원의 중환자실이 떠오른다.
소독약 냄새가 은은하게 풍기는, 링겔이 주렁주렁한 장소 말이다.
그곳에 계신 환자분들은 높은 확률로 의사의 처방하에,
그리고 간호사의 손길 아래 바이오 의약품을 투여받을 것이다.
중증환자들이 약국에서 파는 타이레놀을 주로 먹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당연한 얘기다. 타이레놀은 쉽게 삼킬 수 있고 동네 편의점에서도 팔고
무엇보다 상대적으로 위험하지 않아 보이니 말이다.
하지만 바이오 의약품은 타이레놀과 다르긴 다른 것 같다.
왜? 무엇이?
타이레놀과 바이오 의약품 그 두 가지는 어떻게 다를까?
3.
의약품은 크게 2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합성 의약품"과 "바이오 의약품".
약국이든 편의점이든 우리가 쉽게 얻을 수 있는 대중적인 약은
합성물질로 만든, 화학식에 기반한 합성 의약품이다.
반대로 바이오 의약품은 합성물질이 아닌, 그러니까 생명체에 기반해서 만든 것이다.
"Living thing" 을 잡아서 죽여서 만드는 것은 아니고,
"Cell"도 생명체, 즉 생물학적 제제로 본다.
세포는 작고, 또 우리가 이미 몇십 억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어서
세포의 엄청남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세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살리고 있다.
잠시 깨끗한 병을 떠올려보자. 거기에는 세포 1개가 있다고 치자.
우리는 세포에게 먹이를 줄 수 있고 세포가 밥을 먹는 모습을 현미경으로도 볼 수 있다.
그렇게 세포를 무럭무럭 잘 키운 뒤 현미경으로 병을 보면 어떤 모습일까?
세포가 여전히 1개일까?
1개가 2개, 2개가 4개, 4개가 8개, 8개가 16개....
세포는 2진법에 의해 몇 백 배로 불어난다.
(고등학교 생물시간에 배운 게 기억나지 않는가? 이게 바로 세포 분열이다!!)
세포는 갯수만 불리는 게 아니다.
우리가 잘 "조작된" 세포를 넣어줬다면 세포는 소임을 다했을 것이다.
("조작된 세포" 에 대해선 추후 다룰 것이다)
"항체"라는 것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손을 들어 팔과 몸통이 이어지는 겨드랑이 살을 만져보면
거기에 당신의 항체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다.
또 일부는 당신의 몸속 혈관을 빙글빙글 돌며 일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 항체가 질병을 치료하는 바이오 의약품이 된다.
환자는 필요한 항체를 스스로 만드는 데 한계가 있으니
바이오 기업들이 많은 자본을 투자해서 항체를 생산한다.
깨끗한 병, 그러니까 바이오 업계에서는 Stainless Steel Bioreactor 에서 세포를 배양한다.
그럼으로써 바이오 의약품의 핵심 물질이 되는 항체가 우리를 살리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 중환자실에는 타이레놀이 없나요?
- 중환자실에는 타이레놀이 없나요? (하) 에서 계속
[참고 문헌]
- 김시언, 이형기. <바이오 의약품 시대가 온다>. 청년의사. 2019.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