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벗어난 지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잘 때 코가 막힌다. 자려고 불 끄고 누웠는데 콧구멍이 턱 하고 막히는 느낌이 들면 그날 밤은 비염이 도진 것이다. 오른쪽으로 돌아누우면 왼쪽 콧구멍이 크응하고 뚫리고 반대로 돌아누우면 반대쪽 콧구멍만 뚫리는 걸 반복하다 잠에 든다. 어릴 때부터 비염과 아토피와 천식을 돌아가며 겪으면서 가뜩이나 엄살 많고 예민한 성격이 더 증폭돼 버렸다.
아직 스물 다섯 살이라 콧구멍 하나 막히는 정도로 그칠 뿐이지 나이가 들면 이것보다 심하게 아플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아프게 될지 상상하다 보면 늘 친할아버지가 떠오른다. 일흔이 되시던 해에 파킨슨병 판정을 받은 할아버지는 완치랄 게 없이 12년을 더 투병하셨다. 워낙 공감에 취약하신 할머니는 병에 걸린 할아버지가 혼자 있고 싶어하시는 걸 이해하지 못했고 할머니 뿐 아니라 거의 모든 가족들은 할아버지가 얼마나 힘들 지 알지 못했다. 일 년에 두어 번 정도 친가댁에 가면 할아버지는 항상 방안에 꼼짝않고 계셨는데 어쩌다 과일접시라도 가져다 드릴 일이 있으면 구부정하게 앉아 계시는 할아버지 옆을 쭈뼛대다 도망치듯 나올 뿐이었다. 좀 더 살갑게 말 한마디 건네드리면 좋았겠지만 나는 사려깊음과는 거리가 있는 초등학생이었다.
할아버지의 병세는 질기도록 나아지지 않았다. 잠깐 거동이 좋아지실 때가 있었지만 일시적이었고 다시 원상태로 되돌아가시면 그 절망감이 배가 될 뿐이었다. 격주에 한 번 서울성모병원에서 진찰을 받으시고 알약을 거르지 않고 드셔도 점잖고 빠릿빠릿했던 할아버지가 예전의 할아버지로 돌아오진 못했다. 처음에는 미세하게 반응 속도가 느려진 것 같다가 얼굴 근육이 서서히 굳어버렸고 나중에 가서는 걷는 보폭이 좁아지다 못해 혼자 화장실에 가실 수 없을 만큼 걸음이 안 좋아지셨다.
할아버지의 일상을 엉망으로 만든 파킨슨 병은 뇌에서 도파민이 만들어지지 않아 생기는 질병이다. 이제는 흔해진 질병인 당뇨병의 치료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체내에 어떤 물질이 하나 부족하면 부족분을 메워주는 방식으로 병을 호전시킬 수 있다. 당뇨병 환자가 인슐린 주사를 꾸준히 맞으면 정상생활은 가능하듯, 도파민이 부족한 파킨슨병 환자는 도파민을 투여받으면 된다.
더구나 도파민은 만들기도 쉽다. 인슐린은 788개의 원소로 이루어졌고 분자량이 도파민의 37 배에 달한다. 현재 기술로 인슐린을 대량생산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훨씬 조그마한 도파민 정도는 충분히 모방할 수 있다. 문제는 도파민이 뇌까지 도달하는 게 어렵다는 점이다. 뇌혈관장벽 (BBB)이라고 불리우는 얇은 미세혈관이 뇌를 감싸고 있어서 아무 물질이나 함부로 뇌를 투과하는 걸 막는다. 프랑켄슈타인처럼 머리를 열어서 도파민을 타겟부위에 쏴주지 않는 이상 파킨슨 병 환자는 경구투여나 주사를 통해 도파민을 투여받게 되는데 아무리 많이 넣어줘도 뇌까지 못가고 죄다 소변으로 배출되거나 엉뚱한 기관에 가서 부작용을 일으킨다.
그래서 연구자들이 생각해낸 게 "레보도파"라는 것인데 체내에서 쉽게 도파민으로 전환될 수 있는 데다가 뇌혈관장벽(BBB)를 통과하는 이점도 지녔다. 할아버지가 꾸준히 드신 약도 레보도파였다. 하지만 레보도파의 한계라 해야 할까, 질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게 아니고 화학적으로 합성한 물질을 주입하다보니 환자의 움직임이 좀 나아지는 기간이 길어봐야 3년 남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