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이 된 것은 질려버렸기 때문이었다. 세포에 질렸고 시약 냄새에 질렸고 산 꼭대기에 위치한 자연과학대학에 질렸다. 같은 학교의 같은 학과로 장장 10년을 통근한 박사 과정 선배가 나이브하다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이 정도면 다닐만큼 다녔단 생각이 들었다. 대학원생이 되는 게 별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한 번 들자 갑자기 회사가 너무 가고 싶어졌다.
교수님 앞에서 지지부진한 미팅 같은 것은 그만하고 보호구 없는 랩실에서 매번 숨 참으며 해골바가지 그려진 시약 쓰는 일도 그만두고 어서 대기업 홍보 영상에 나오는 언니 오빠들 처럼 멋드러지게 회사원 라이프를 즐기고 싶었다.
환상을 쉽게 갖는 편이었다. 2년 전, 이 학교에 오려고 편입했던 때도 똑같았다. 나도 저네들처럼 등에 사자 그림이 박힌 과잠을 입고 싶고, 2호선 타고 대학교를 다니고 싶어지자 멀쩡히 다니던 4년제 여대를 죽어라 미워했다. 교수님을 미워했고 채플 수업을 무시했고 동기들과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곧 떠날 사람처럼 굴며 수업을 들었다.
부러움에 한껏 부푼 마음은 환상을 부채질했다. 사자가 마스코트인 대학으로만 옮기면 됐기에 그 학교의 내 성적으로 갈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학과에 지원했다. 환상이 현실을 만나 터지는 순간 그동안 타인의 욕망을 모방해왔다는 걸 깨달았지만 그때는 이미 20대의 진로가 거의 결정된 뒤였다. 생명과학을 떠나 다른 과로 전향하기에는 벌써 4학년 졸업반이었던 것이다.
내가 또 환상에 젖어 학교를 미워하는 지 모른채, 취업을 결심했을 때는 7월 말이었다. 보통 하반기 공채가 9월에 시작되니 남은 기간은 한 달 정도였다. 취업에 완전히 백지 상태였지만 엣다 모르겠다 퍼져버리지 않았던 건 대학원에는 질려도 회사는 아닐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깨달음도 우유처럼 유통기한이 있는 게 아닐까. 그당시 나는 대학원으로부터 멀리 도망갈 곳이 필요했다. 지금 여기 말고 다른 곳이기만 하면 족했다.
그래서 하반기 공채 일정을 따르는 스케줄은 꽤나 할 만했다. 한 달 안에 자소서와 영어 점수를 만들고 그 다음 한 달은 인적성 검사와 면접을 준비하는 내내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았다. 사실 대학원을 탈출할 생각에 룰루랄라였다.
지원서를 돌린 회사 중 딱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바이오 의약품을 만드는 공장 단위의 회사였다.
회사 홈페이지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저희는 성공적인 GMP 생산을 위해 협력하고 있습니다."
생명과학을 전공했지만 GMP라는 것을 취업 준비할 때 처음 알았다. 처음엔 GMO 옥수수랑 비슷한 건 줄 알았고 그 이미지가 잔상이 되어서인지 의약품 제조할 때 따라야 하는 가이드라인임을 알고도 꽤 가볍게 생각했다.
그렇게 앞으로 또 무엇에 질리게 될지 모른 채 나의 GMP 입성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