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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읽는남자 Nov 18. 2022

제발 칭찬 좀 해주세요

“벌써 다 했어? 뭐야 보고서로 만들어 왔네. 그냥 엑셀에서 자료만 뽑아도 되는데, 고생했다. 이런 거 후딱 참 잘 만들어. 내용 좋네. 이거 참 좋다. 굿. 오케이, 이걸로 상무님 보고드리자. 더 고칠 것도 없어 보이는데? 수고했어”


후배의 표정이 밝아진다. 기분이 좋은지 잠시 횡설수설하더니 커피를 마시러 밖으로 나간다. 직장인에게 보상은 월급만 있는 게 아니다. 월급이 가끔 꺼내는 다이아 반지 같은 것이라면 매일 끼고 다니는 14k 커플링 같은 보상이 바로 ‘인정’이다. 누군가 내 수고를 인정해 주고 칭찬해 준다면 그것이 곧 보상이 된다. 업무보고를 마친 후배에게 ‘수고했네 고생 많았다’ 한마디 해주면 될 것을, 우리 선배들은 마치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해서 스티커 하나만 붙여주고 가라는 요원을 대하는 것 마냥 무심하게 지나친다.


칭찬이 좋은 건 다들 아는 사실인데, 그럼 좀 남발해도 되는 것 아닌가?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인간의 생존 전략 때문이다. 인간은 무리 생활을 해야 한다. 유리하다 정도가 아니라 꼭 그래야만 살 수 있다. 그리고 개인은 무리 안에서 기여를 해야 한다. 기여 없이 도태되면 무리 밖으로 퇴출당할 수 있고 그러면 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에게 ‘인정’ 받는 것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너는 쓸모없는 인간이야”, “왜 사니”와 같은 말을 매일 반복해서 듣는다면 그 사람은 삶의 의미를 점점 잃어 가다가 결국 죽을 것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인정’을 느끼거나 확인한다. 가령 사람들과 같이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거나 함께 일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구성원임을 ‘인정’ 받는다고 느낀다. 반대로 사람들이 나와 밥을 먹지 않으려고 하거나 대화를 피하거나 함께 일하는 것을 거부한다면 살 수가 없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이유로 죽는다.


인정받고 있음을 가장 강하게 확인하는 방법이 바로 ‘칭찬’이다. 칭찬을 받으면 자신감이 넘치고 삶에 활력이 생긴다. 그 느낌은 나의 생존이 지속 가능함을 확인하는 기쁨과 동일하다. 며칠 굶주린 사자가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고통을 느낄 즈음 사냥에 성공해서 배불리 먹는다면, 아마 비슷한 활력을 느낄 것이다. 더 오래 배불리 살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긴다.


그러면 ‘칭찬’을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타인이 ‘인정’ 받는 것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혹시 무리에서 나보다 더 큰 자리를 차지할까 봐 위협을 느낀다. 그런 불안감은 권위에 집착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아이가 어릴 때는 “잘했어요”와 같은 피드백을 많이 주다가 고학년이 될수록 ‘칭찬’에 박해지는 이유는 부모의 권위가 도전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제 잘난 맛에 머리가 커져서 더 이상 부모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을까 봐 우리는 점점 박해진다. 회사도 마찬가지. 거만해진 후배로부터 선배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칭찬’에 인색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선배들은 후배가 칭찬을 원하고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지하철에 앉아 있는 내 앞으로 할머니가 다가올 때처럼 조용히 눈을 감고 모르는 척한다.


반면에 강한 생존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칭찬에 박하지 않다. 타인이 인정을 더 받고 말고 간에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경우, 그러니까 이미 확고한 생존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 때에는 지켜야할 권위도 없을 뿐 아니라 불안하지도 질투하지도 않고 양껏 칭찬을 해줄 수 있다. 회사에서 내 위치가 굳건하고 나보다 후배가 더 잘나가는 것이 두렵지 않은 선배는 쿨 해질 수 있다. 조금 모자란 부분이 있더라도 “잘했어! 좋은데?” 할 수 있다. “이것만 조금 바꾸면 더 좋겠는데?” 하면서 멋지고 기분 좋게 지적을 해 줄 수도 있다. 이게 안 되는 이유는, 다시 말하지만 불안해서 그렇다. 후배가 더 잘 나갈까 봐, 혹은 이 녀석은 늘 나보다 부족해야 해! 그래야만 해! 하고 ‘인정’ 하기 싫어서다.


뭣이? 내 말에 동의할 수 없다고? 그럼 제발 칭찬 좀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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