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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읽는남자 Nov 22. 2022

고민과 걱정의 차이는 희망이다

고등학생 때 일이다. 어느 아이가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마치 교과서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자세로 눈을 감고 있었다. 선생님이 분필을 던졌고 그 아이 어깨에 정확히 명중했다. 아이는 당황한 기색 없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너, 잤지?”


“아니요. 안 잤는데요”


“그럼 뭐 했어”


“상상했는데요”


그래, 나도 많이 했었다. 눈을 감고 상상하는 거. 땅에 떨어진 지우개를 줍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눈이 크고 이마가 동그랗게 예쁜 여자 대학생이 시크하게 ‘뭔데’ 하는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장면이나, 일본 영화 ‘태양의 노래’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어느 다리 위에서 홀로 버스킹을 하고 있는 장면, 그리고 아까 나를 시크하게 쳐다보던 여자 대학생이 하필 그때 딱 지나가다가 ‘어머, 이 오빠’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런 류의 상상을 많이 했었다.


인간은 상상력을 지닌 동물이 아닌가. ‘행복한 상상’은 설렘과 뿌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자주 하면 좋을 것 같은데 나이를 먹을수록 횟수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행복한 상상’의 반대는 당연히 ‘불행한 상상’이다. 그것을 우리는 ‘걱정’이라고 말한다.


사춘기 시절 도시락 반찬이 부끄러웠던 때가 있었다. 내 도시락은 주로 ‘집에 있는 반찬’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미니 돈가스나 비엔나소시지와 같은 고급 반찬이 늘 없었다. 놀림을 당하면 어쩌지 걱정을 했었는데 막상 친구들의 반찬통을 모두 오픈하고 보니 다들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구성이었다. 뭐 비슷하네 하며 즐겁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여기서 반찬통 오픈 직전에 내가 상상한 것이 바로 ‘불행한 상상’이다. 실현되지 않을 상상에 불과한 것인데 물론 게 중에 한 놈이 나를 놀릴 수도 있었겠지만 반찬 때문에 전교에 소문이 나서 친구들과 줄줄이 절교를 하거나, 놀림당하다가 왕따가 되어 결국 자퇴를 하게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상상의 깊이만큼 현실이 따라올 수가 없다. 즉, 실현되지 않는다. 몇 번의 유사한 경험 이후 ‘불행한 상상’은 굳이 하지 않는 게 좋다고 결론을 내렸다.


‘고민’은 ‘걱정’과는 또 다르다. ‘고민’은 정답을 찾기 위해 머리를 쓰는 거라 꼭 필요하다. 문제를 해결하고 이전보다 더 발전하기 위한 활동이기 때문에 고민은 진지하게 많이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같이 공부하던 친구가 나보다 먼저 시험에 합격을 해버렸다. 자존심도 상하고 친구가 떠난 자리에 혼자 남아서 공부할 생각을 하니 도저히 엄두가 안 났다. 이것을 계속하느냐 아니면 포기하고 일반 기업에 취업을 하느냐를 두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국 스스로 결론을 내리고 실행하여 취업에 성공했다. 그때 내가 신경 쓰고 생각했던 활동이 바로 ‘고민’이다. 고민은 어쨌든 문제를 해결한다. ‘걱정’과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걱정은 상상력, 즉 감성적인 영역이라면 고민은 이성적인 일을 하는 것이다. ‘저 아이는 나를 싫어할 거야, 나는 분명히 웃음거리가 되고 말 꺼야’는 걱정, ‘뭘 좋아할까, 사랑한다고 고백해 볼까’는 고민. ‘내 인생은 직장인에서 끝나는 거야,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어’는 걱정,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 아니 내가 원하는 꿈은 무엇인가’는 고민. ‘내일 선배를 만나면 또 혼나겠지, 그 자식은 나를 싫어하는 게 분명해’는 걱정, ‘사람은 안 변한다. 내가 다른 부서로 가야겠다. 잘 먹고 잘 살아라 ‘는 고민.


고로, 걱정은 나쁜 것 고민은 좋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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