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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읽는남자 Nov 07. 2022

소유욕은 사랑이 아니라 병이야

아이들에게 뭐든 다 해주려고 하지 않는다. 결핍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지고 싶은 욕구를 항상 다 채울 수는 없는 것이라고 아이들에게 정확히 알려주려 한다. 참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짐승과 사람의 차이라고 이야기해준 적도 있다. 물론 포기를 친구처럼 생각해서도 안된다. 최선을 다해서 가지려고 노력하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면 쿨하게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노력의 시간을 인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포기. 이것은 특히 이성에 대한 감정에서 무척 어렵고 힘든 일이다. 가지고 싶은 것이 물건이나 음식이라면 욕망의 그 순간을 조금 참고 잘 넘겨서 없앨 수도 있다. 그런데 이성 관계는 차원이 다르다. 좋아하는 이성이 나와 같은 마음을 품지 않는다면 슬프고 좌절하고 아프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 인간은 생존과 번식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 아닐까. 번식은 우리에게 아주 큰일이다. 그래서 이성에 대한 감정은 다른 것보다 특히 더 조바심 나고 몰입하게 되며 감정의 동요가 깊게 일어난다.


그래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가 물건이 아닌 사람이기 때문에 더욱 그래야 한다.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남도 가질 수 없게 한다’ 거나, ‘네가 아니면 나는 살 의미가 없다’ 거나 하는 건. 글쎄, 그거 일종의 병이라고 생각한다. 정상이 아니다.


사랑의 숭고한 가치를 나는 믿는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단순히 번식을 위한 호르몬 작용이 아니다. 희생과 헌신의 증거들을 보더라도 단순히 동물적인 관점에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떠난다는 그 말’은 진정 참이다. 그래야 한다. 그건 너무 정상이다. ‘너의 행복을 빌어 줄게’ 또한 마찬가지. 희생과 헌신이 붙어 있는 그런 게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네가 좋은데 넌 내가 이성으로 좋지 않구나. 그래, 그럼 가거라. 네가 원하는 사람 곁으로. 네가 잘되고 행복한 것이 궁극적으로 내 사랑의 목표다’ 그래, 이렇게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는다면 그 소중한 마음 고이 간직하자. 그녀와 같이 나누지는 못해도 내 안에 싹이 난 그 마음을 굳이 없애려 애쓰지 말고, 그냥 간직한 채 살아가는 거다. 열받을 필요도 없고 자책할 필요도 없이, 갓 태어난 노란 병아리를 두 손에 올려놓은 것 마냥 조심스럽게 보듬어주고 볼을 비벼주자. 어느 날인가 그 녀석이 이제 스스로 걸을 수 있다고 속삭이면 그때 놓아주는 거다.


그게 훨씬 사랑답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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