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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읽는남자 Dec 14. 2022

인간관계 힘들면 안 하면 그만

“싸웠어?”


“아니, 그냥 당했지”


옷은 흙투성이고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다. 얼굴은 군데군데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는데 맞은 흔적 같았다. 초점이 없는 눈은 시선이 땅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같이 싸우지 그랬어”


“덤비면 더 맞아,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낫지”


“멘탈은 어때? 괜찮아?”


“아니, 억울하고 분하네”


덤덤하게 대꾸하는 모습이 오히려 더 측은해 보였다. 차라리 그 자식들 죽여버린다거나 어떻게 복수할까 식으로 화를 내는 편이 위로하기 더 편할 것 같았다.


“나쁜 놈들이네”


갑자기 나를 쳐다본다. 뭐 그런 어이없이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표정이다. 자칫하면 분노가 나를 향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말을 돌려야 한다.


“편의점이나 가자 뭐라도 좀 마시게”


“됐어, 그냥 갈래”


교복 바지에 묻은 흙을 털며 일어난다.


“집에 가게?”


“어”


그래 뭐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차피 이 정도다.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 일러 줄 수는 있는데 그건 클라이언트의 요청이나 합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이 친구 성격상 그건 안될 것 같아서 제안도 하지 않았다. 집에 가서 메탈 음악이나 실컷 듣는 편이 나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옷을 털고 머리를 몇 번 슥슥 정리하더니 가방을 든다. 그리고 인사도 없이 성큼성큼 걸어가는 친구. 그대로 둬야겠다 생각했다. 어차피 나도 이제 학원 갈 시간이기도 하고.


“헤이”


갑자기 나를 부른다.


“왜”


“같이 가자”


“어디”


“와봐”


학원을 갈 시간이긴 한데, 이 친구가 조금 안타까운 생각도 있어서 나쁜 데만 아니면 같이 갈 생각도 있었다. 그리고 궁금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 얘는 어딜 갈까?


“말 안 해주면 안 갈래, 어디 가는데?”


“음악 들으러”


“음악?”


우리는 지하철을 탔다. 홍대입구역에 내렸는데 친구는 자세한 이야기는 해주지 않고 계속 걷기만 했다. 가끔 저 누나 우와 대박 예쁜데, 정도 대화가 있었는데 근데 그 누나, 진짜 예쁘긴 예뻤다. 딱 내가 좋아하는 날씬하고 통통한 스타일. 나도 나중에 꼭 저런 여자 친구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골목골목을 지나 오르막길에서 숨이 차서 헉헉거릴 때 즈음에 도착 여기야, 하는 친구. 고개를 들어 간판을 보니 ‘부추 전골’이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벽에 붙은 공연 포스터나 오래된 간판 스타일이 도무지 식당 같아 보이진 않았다.


“여기 뭐하는 덴데?”


“가보면 알아”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벌써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드럼과 기타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친구가 좋아하는 록 음악을 틀어주는 펍 정도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에 들어서니 역시나 음악소리가 크게 들렸고 조명이 거의 없다시피 어두웠다. 지하임에도 천장이 높았는데 한쪽 벽이 온통 LP 판이었고 도서관처럼 저 높은 곳까지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저 위에 있는 건 도대체 어떻게 꺼낼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고 친구는 벌써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긴 맥주를 파는 곳이 분명하다. 이렇게 들어와도 되는 건가. 그런데 여기는 왠지 교복 입은 남자 고등학생에게 피쓰 락앤롤, 이러면서 술을 쿨하게 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들이닥치면 퍽 더 폴리스, 이러면서 머리 긴 남자들이 경찰을 향해 몸을 던질 것만 같았다.


의외로 그냥 평범한 대학생 같은 누나가 메뉴판을 들고 왔고 친구는 펩시 두 잔과 감자튀김을 시켰다.


“여긴 콜라가 좋아 정말 시원해”


“뭐야 여기 분위기 좋다”


“그렇지? 여기 신청곡도 돼. 잠시만”


일어나서 카운터 쪽으로 가는 친구. 종이와 메모지를 가져온다. 아, 그런 시스템 인가보다 생각했다.  메모지 2장을 주며 적어,라고 한 뒤 자기도 뭔가 열심히 적는다.


“알지? 여기 분위기에 맞춰서 적어. 아이돌 이런 거 안돼”


“넌 뭐 적을 건데”


“요즘 신해남과 환자들 그거 좋던데 그거랑, 음 마이 케미컬 로맨스로 시작해야지”


여기 분위기에 맞는 곡이라면 위저나 오아시스 정도면 통과할 것 같았다. 그리고 퀸도 적었는데 그건 친구에게 사전 검열당했다. 퀸은 자기가 싫단다. 도대체 왜?


잠시 후 그냥 평범한 대학생 누나가 커다란 컵에 얼음이 잔뜩 담긴 잔과 펩시 콜라 캔 그리고 감자튀김을 가져다주었다.


“와 진짜 시원하겠다”


“그지 그지”


콜라 잔을 만지는 순간부터 차가움이 손에서 느껴졌다. 캔을 따서 잔에 붓고 감자튀김을 하나 먹어 보았다. 방금 튀긴 감자. 이것은 엄청 추운 날 밖에서 벌벌 떨다가 집에 들어가서 정말 뜨겁게 예열된 전기장판과 이불 사이로 몸을 쏙 넣었을 때 그 급진적인 포근함과 따뜻함, 딱 그런 느낌이었다. 콜라도 한잔 마셨는데 너무 차가워서 뇌까지 얼얼했다.


“우와 대박 시원스”


“이거지”


손님이 우리뿐이어서 그런지 친구가 신청한 노래가 바로 들렸다. 마이 케미컬 로맨스의 아임 낫 오케이. 딩딩딩딩딩 신나게 시작하는 기타 리프에 곧이어 절규하는 보컬의 음성이 클럽을 가득 채웠다. 순간 카메라 조리개가 갑자기 쭉 좁혀지듯 넓고 방대하게 퍼져있는 세상이 이 클럽으로 쪼그라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친구는 이래서 록 음악을 듣는구나. 음악의 부피가 팽창해서 나를 아주 작은 공간으로 밀어 넣는 느낌이다. 이렇게 크게 틀어도 되나 싶은, 조금 걱정이 되는, 그것을 부숴버리는 것이 록 음악의 매력이라고 친구가 말했던 것 같다.


친구는 손가락을 들어 올리기도 하고 가사를 약간씩 따라 하기도 하며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음악은 연달아 친구가 신청한 곡으로 플레이되었다. 신해남과 환자들의 어글리 마더스 클럽. 보컬은 가녀린 홍대 누나의 음색이고 코드를 단순히 긁어대는 펑크록 같으면서도 약간 팝 같은 느낌이다. 이런 것도 좋아했었나.


“그런데”


친구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응? 뭐”


“친구가 필요해?”


“친구? 어떤 친구”


“그러니까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꼭 있어야 하냐고”


“있으면 좋지, 없으면 외롭고”


“그렇지. 근데 너무 피곤해 사람 관계가”


“그래 마음 맞는 사람 찾기가 쉽지 않지”


마침 나오는 음악은 내가 신청한 거다. 위저의 퍼펙트 시추에이션. 반가워서 친구가 하는 이야기를 잠깐 듣지 못했다. 아, 여기 이런 쾌감이 있구나. 평소에 혼자 듣는 음악을 공개적으로 크게 틀어주는 이 느낌. 괜찮은데?


“나도 알아 내가 싸가지 없고 제 멋대로인 거”


“아는구나. 다행이네”


친구가 너무 진지해지는 것 같아서 살짝 농담을 던졌다. 성공한 거 같은 게 친구가 씩 웃었다.


“그런데 계속 이렇게 살면 안 되냐고, 남한테 피해만 안 주면 되잖아”


“그럼 혼자 살아야지”


“그래 혼자 살고 싶다고 근데 그게 안되잖아”


“안되지 학교도 가야 되고”


“그래, 그게 좀 답답해”


“이야기를 듣고 보니까 좀 그러네, 세상은 눈치를 봐야 하는 시스템이긴 해”


“그렇지?”


공감을 해주니 아주 좋아했다. 노래방 아저씨가 쿨하게 15분 서비스 시간 넣어 주듯이 기왕 공감해 준 김에 좀 더 나가 보기로 했다.


“요즘은 혼자 살기 좋은 세상이니까, 불가능하진 않아”


“그지 그지?”


친구 눈이 커졌다. 성공.


“어, 혼자 살 수 있어. 이런 데서 즐기면서. 친구? 필요 없을 수도 있어”


“내 말이”


“외롭지도 않아. 음악도 있고 포르노도 있잖아. 될 거 같아”


“맞아!”


갑자기 콜라 잔을 들어 건배하는 시늉을 한다. 그래 맞춰주자. 잔이 부딪히며 챙 하는 소리가 났다. 콜라도 약간 락스타처럼 팔을 높이 들어마시는 친구. 신청한 음악은 아니었지만 위저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지 캔 댄스 돈 에스크 미를 틀어준다. 여기 디제이, 센스 있다.


“역시 너는 말이 통한다. 고맙다 친구”


“어, 그래”


“많이 먹어, 여기는 내가 낼게”


“그래야지 땡큐”


어두운 이곳은 친구와 어울렸다. 정리를 한다고 했지만 여전히 헝클어진 머리는 마치 왁스를 많이 발라서 일부러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 같은 로커의 모습이었고, 지쳐있는 모습은 며칠 밤낮을 몰입해서 곡을 쓰다 나온 작곡가 같았다. 그래, 너는 이런 분위기가 어울린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 맞는 것이 있다. 그렇다면 맞지 않는 것도 있는 법. 너는 좀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헤이 락커”


“응?”


“한마디 해도 될까?”


“뭔데”


인간관계 힘들면 안 하면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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