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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읽는남자 Jan 04. 2023

무슨 일 나도 싹은 나고 꽃은 피던데

뻐꾸기가 나무 꼭대기에 올랐다. 워꾹! 워꾹!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울기 시작한다. 곧 여기저기서 새들이 우는소리가 들린다. 마치 ‘일어나 아침이야’ 외치니, ‘네 일어났어요’ 하며 대답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여우는 비탈길을 오른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 여우. 긴 혀를 내밀고 헥헥 거린다. 잠시 숨을 고르더니 천천히 동굴을 향해 걸어간다.


“어이, 곰. 나 왔어”


컴컴한 동굴 입구에서 소리치는 여우.


“곰씨 나 왔다고 일어났어? 아침이야”


다시 크게 외치고 동굴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가 하며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곰씨, 곰아, 곰탱이 이름을 바꿔가면 몇 번 더 불렀을 때, 드디어 동굴 안에서 저벅저벅하는 뭔가 걸어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동굴 안 움직임을 감지한 여우는 동굴 입구에서 조금 더 멀리 떨어져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를 한다. 잠시 후 모습을 드러내는 곰. 동굴 입구에 머리만 내어 놓고 그 자리에 그대로 엎드린다.


“어이, 곰 일어났구나. 나 또 왔어”


“너 진짜 잡아먹어 버린다”


“사냥할 힘은 있어? 많이 없어 보이는데 지금”


“오늘은 왜 온 거야”


“오늘도 진짜 동굴에서 안 나올 거야?”


“그게 궁금해서 이 아침 새벽부터 여길 온 거냐”


“응, 나는 궁금한 건 못 참거든”


“그래? 그럼 알려주지. 난 영원히 안 나가”


“왜 영원히 안 나와. 이제 좀 나와 그냥”


“싫어. 여기가 좋아”


“거기가 좋은 게 아니라, 동굴 밖이 싫은 거겠지”


“암튼, 궁금한 거 해결됐으면 이제 그만 가. 귀찮게 하지 말고”


“아니, 그러지 말고 나와봐. 요즘 이 산에 나비가 제철이야. 나비 잡으면서 놀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날씨는 또 얼마나 좋은데, 신나게 나비 쫓아다니다가 연못에서 시원한 물 마시면 캬, 꿀맛이야. 같이 가자. 내가 스폿을 알아”


“싫어”


“왜 또 싫어”


“의미 없어”


“뭐가 의미 없어. 노는데 무슨 의미가 필요해. 신나면 됐지”


“이 세상은 무너졌어. 아무 의미가 없어진 거야”


“무너지긴 누가 무너져. 너 엄마 돌아가신 것 때문에 그러는 거지?”


“……”


“그래, 그 정도 했으면 엄마도 기특해하실 거야. 그렇다고 계속 거기 있으면 엄마가 더 걱정하실 거라고”


“아니, 그냥 난 여기서 죽어버릴 거야.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고,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어. 그래서, 나는 여기서 나갈 이유도 없어”


“어이 곰씨 양반, 잘 들어. 이 세상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게 아니라. 너는 지금 그냥 동굴 안에 있어서 그렇다고 느끼는 거야. 세상이 왜 무너져. 내가 서있는 이곳은 해가 짱짱해. 저기를 봐, 내가 말한 나비가 쌍으로 돌아다니고 있어. 거기서 나오면 나처럼 느낄 수 있다고”


“아니, 내가 밖으로 나가도 나는 지금과 똑같을 거야.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이 곧 나의 전부야. 밖으로 나간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어”


“달라, 내가 느끼는 것이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지겠지만, 사실은 달라. 너는 일단 그 동굴에서 나오기만 하면 돼. 그것만 해도 확 달라져. 네 그 조그만 뇌 안의 세상은 아주 좁아. 그것보다 더 넓고 큰 세상이 그 동굴 밖에 있다고. 나오면 알아”


여우가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너만 그 안에 있는 거야. 네가 그 안에 있건 말건 지구는 돌고 있고 우주는 팽창해. 지금도 새 생명은 태어나고 있고 새싹은 나고 꽃은 피고 있다고. 동굴에서 나와서 그걸 목격하란 말이야. 그것만 하면 돼. 세상에서 의미를 찾으란 말도, 재미를 느끼란 것도 아니야,


그냥 동굴 밖으로 나와서 싹이 나고 꽃이 피는 현장을 목격하라는 것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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