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가 우는 이유

아이에게 미안해지는 순간

by 인절미

"맴~매~앰, 쓰르르륵. 맴~매~~앰"

여름이 되고 매미 소리가 들리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인구 절벽의 시대가 급격하게 도래할 것을 짐작하지 못한 10여년 전의 한국 사회에서는 육아휴직 제도가 있었으나 여러가지 이유로 육아를 위한 충분한 휴직 기간을 마음 편하게 선택하기 어려웠다. 적어도 내 경우는 그랬다.

경력 단절이나 경제적인 어려움도 큰 부담이었지만, 육아휴직을 하는 나로 인해 직장 동료들이 겪어야 하는 업무량 증가가 더 큰 고민 요소였다. 첫 아이를 낳고는 출산 휴가 3개월 후에 바로 복직했고, 둘째 아이를 낳고 1년도 안 되는 육아 휴직을 한 후에 복직한 것이 최선이었다. 그마저도 동료들에게 미안하여 복직하고 나서는 야근을 하는 시간이 많았다.

아이가 밤에 아프기라도 하면 응급실을 가야할 것인지를 밤새 고민하며 칭얼거리는 아이를 안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보냈다. 그나마 새벽에 열이 떨어지면 다행이지만 상태가 나아지지 않으면 직장에 지참 사유를 알리고 병원을 들러서 진료를 받은 후 아이를 맡기고 출근했다. 그런 날이면 직장에 있으면서도 아이의 울음 소리가 귓전에 맴돌아서 눈물이 나곤 했다.


부모가 되기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것을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내가 기억 못하지만 나의 생존을 전적으로 책임져준 내 부모의 노고와 은덕을 실감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 고달프고 간이 녹는 것 같은 시간을 보낸 부모님의 돌봄을 어쩌면 그렇게 감쪽같이 모르고 살 수 있었는지 믿을수가 없었다. 그동안 부모님께 착한 딸이었다고 자부했지만 내 생존에 1도 스스로 기여할 수 없었던 시간을 몰랐기에 할 수 있는 철없는 말이었다. 내 아이도 내가 보낸 간이 녹는 것 같은 시간을 기억못할 것이다. 오로지 그 시간을 기억하고 있는 부모만이 영원한 약자로 철없는 아이에게 져주는 시간을 보낼 것이다. 아이는 모르고 부모는 기억하는 시간 때문에 생기는 이상한 역학관계다. 더 많이 주고 더 기억하는 사람이 약자가 되는 사랑의 아이러니 말이다.

내 부모가 아무런 대가 없이 나를 키웠듯이 나도 내 자녀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사랑으로 키웠다. 아이가 방긋 한 번 웃으면 밤새 잠을 못자고 칭얼대는 아이를 안고 있었던 불안감이 사그라들고, '엄마'라고 불러주면 온갖 시름이 잦아들었다. 아이가 점점 자라면서 싫은 것도 많아지고 고집도 생기면서 내 부모가 나를 키우며 했을 법한 말들을 나도 아이에게 했다.

"너도 이 다음에 꼭 너 닮은 자식 낳아라."

속상하게 하는 아이에게 '너도 한 번 당해봐라'의 저주를 거는 게 아니라, 내가 지금 얼마나 속상한지 너도 자식을 낳아 보면 알 것이라는 서운함의 표현이다. 늘 내가 더 많이 사랑해서 잔뜩 져주고 있는데 몰라주는 아이에 대한 의미 없는 투정같은 감정이다. 그런데 아이가 자라면서 말을 잘하게 되고 생존의 책임이 점점 부모에게서 아이 자신에게로 이양되면서 이런 감정이 더 자주 들었다.


한창 아이가 자기 주장이 강해지는 어느 여름날이었다.

그날도 산책을 하면서 아이가 원하는 것과 합리적인 나의 결정이 상충하는 실랑이가 한참 벌어진 후에 아이의 뜻대로 좀 더 걷고 있었다. 더운 날씨에 잠든 둘째를 둘러 업고 땀이 줄줄 흐르는데 적당히를 모르는 첫째가 땀에 잔뜩 젖은 뒷머리를 모자 속에 감춘 채로 얼굴이 벌게져서는 개미며 돌들을 열심히 내게 설명했다. 모자라도 벗든지 더우니까 잠깐 들어갔다가 나오자는 내 결정을 따라주지 않는 아이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어 건성으로 대답하며 걸었다.

땡볕을 걷다가 나무 그늘에 들어서니 조금 선선해져서 깊이 잠들어 점점 무거워지는 둘째를 추스르는데 갑자기 아이가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더니 '쉿'하고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보며 뭔가를 찾는 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엄마, 소리 들려? 매미가 울지?"

잔뜩 지친 나는 기운없이 '그러네'하고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아이가 둘째를 안고 주저 앉아 있는 내 귀에 대고 이렇게 물었다.

"엄마, 매미가 왜 우는지 알아?"

아이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대답도 못하고 멍하니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직장이 쉬는 하루 동안 밀린 집안 일을 하고 없는 힘을 쥐어 짜내서 아이들과 놀아주고 답답해 하는 아이들을 위해 산책을 나왔는데, 나온지 10분 만에 배변을 완전히 숙달하지 못한 둘째가 소변 실수를해서 옷이 버렸고 그것을 수습하고 있는데 첫째는 자꾸 놀이터에 가자고 하고 한 시간 가까이 땡볕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땀이 나고 더운데 고집스럽게 첫째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더우니 벗으라고 해도 벗지 않고 잠든 둘째를 업고 있자니 무겁고......그런데 고작 개미와 매미라니, 매미가 울건 노래하건 그게 뭐라고.)


"엄마 아빠 매미가 다 회사에 갔어. 아가 매미만 있어. 아가 매미가 엄마 아빠 매미가 보고싶은데 안 오니까 우는 거야."


'아...........'

순간 터져나오려던 (괄호) 속의 내 사정들이 고요해졌다.

왈칵 눈물이 나려고 했다.

아이는 벌써 시선을 나뭇잎과 흙과 쓰레기를 쳐다보며 쉴새없이 말했다.

아이를 따라 30여분을 더 걷는 동안 나는 최대한 성의껏 아이의 말을 들었다.


회사에 간 엄마 아빠 매미가 아가 매미 옆으로 돌아와 아가 매미가 더이상 쓸쓸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아이의 손을 잡고 경청하며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집에 돌아온 아이를 씻기며 물었다.>

"00아, 아까 안 더웠어? 모자를 벗으면 시원한데 이렇게 땀을 흘리면서도 왜 모자를 안 벗었어."

아이가 머리를 감기는 나를 쳐다보며

"그거는 내가 모자를 좋으니까 그렇지. 엄마는 그것도 몰라?"

땀을 찔찔 흘리면서도 자신이 모자를 좋아하니까 쓰고 있었다는 다섯 살 아이의 마음을 나는 왜 몰랐을까.

엄마인데.. 알았어야지. 말 사이의 조사가 틀린 것만 알고 모자를 벗으면 시원한 것만 알았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 기꺼이 더위를 참을 줄 아는 아이 마음을 몰라준 것이 미안해졌다. 매미가 우는 이유도 아이가 고집을 피운 이유도 모르는 초보 엄마라서 아이에게 많이 미안했다.


그 후로 매미 울음소리가 들리는 여름이 되면 잔뜩 땀에 젖은 아이의 뒷머리와 매미가 우는 이유를 설명하던 아이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떠오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