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의 굴레
나는 옷을 멋으로 사지 않는다. 나의 표현이 아닌 가림의 용도로 산다. 디자인보다는 기능이다. 기능보다는 가격이다. 같은 가격이면 가성비다. 만 원짜리 세일 코너에 가면 나는 디자인을 보고 고르는 게 아니라, 할인 품목 중 원래 정가가 제일 비쌌던 것을 산다. 디자인이 아무리 촌스러워도 나의 안목은 무시한다. 원래의 정가가 제품의 품질이며 세상 사람들의 허영을 채워줄 근거라는 편견을 갖고 나는 물건을 고른다.
나트랑을 갔다. 거기서 뭐 했는지를 모르겠다. 다른 사람은 "여기 경치가 좋고 이곳이 맛있고" 이렇게 말한다. 나는 "여기가 수영장 딸린 호텔인데 3만 원대야". "이게 3만원대 호텔 수영장 사진이야. 바다가 다 보이지? "라고 말한다.
3만 원짜리 숙소에서 밥이 이렇게 잘 나오는지, 그 맛이 있건 없건 내게는 상관없다. 그 가격으로 호사를 누렸다는 사실을 자랑하고 싶을 뿐이다. "거기는 헬스장에서도 바다가 보여!" 바다 풍경 자체는 의미 없다. 그냥 내가 저렴한 가격에 기쁨을 누렸다는 이상한 심리... 나도 이해 못 하는 나의 심리다.
"그리고 망고 있잖아... 이거 봐, 얼마인지 알아? 500원이야, 500원!"이라며 무지하게 이익을 본 것처럼 게거품을 물고 떠든다. 내게 망고의 맛은 중요치 않다. 귀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유롭게 먹었다는 게 중요하다. 남의 관심 따위 상관없이 나만 만족하면 그만이다.
한번은 가게에서 혼자 100만 동 넘게 주고 킹크랩을 사 먹었다. 그렇게 바가지를 쓰고 비싸게 먹은 날, 길거리에서 한 아주머니가 "한 마리에는 30만 동인데 두 마리에 40만 동"이라며 호객을 했다. 한국 돈 5만 원에 사 먹었던 것을 저녁에는 길거리에서 두 마리에 2만 원꼴로 파는 것이다.
결국 그날만 킹크랩을 세 마리 먹었다. 맛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저 귀한 것을 싸게 샀다는 사실에 스스로 만족했을 뿐이다. 그날 저녁의 킹크랩은 맛으로 먹은 게 아니라, 나트랑에서 귀한 음식을 자유롭게 누려야만 한다는 강박으로 먹은 것이다. 나의 숫자 강박.
추가로 산 킹크랩은 사실 이익이 아니었다. 이미 킹크랩에 물린 내 입에 억지로 한 마리를 더 밀어 넣어, 내 배를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활용한 것에 불과했다. 나는 숫자의 자유로움을 찾아 나트랑에 왔지만, 숫자의 사슬은 이미 다른 부위에 채워져 있었다.
다낭에서 그렇게 마사지사 타령을 해놓고도, 사실 내 깊은 곳에는 한국에서 누리지 못한 것을 현지에서 누리고자 하는 심리가 있었는지 모른다. 평소 자유롭지 못한 욕구의 불만은 이성에 대한 외로움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숫자에 대한 억눌림이었을 것이다.
깨끗하고 젊은 마사지사가 있는 곳을 상상하면서도, 내 눈길이 가장 먼저 머무는 곳은 역시 '금액'이었다. 방금 다낭보다 싸게 마사지를 받고 나왔는데, 바로 앞 가게 할머니가 더 싼 가격으로 호객을 한다. 90분에 25만 동, 한국 돈 12,500원 정도다.
정말 마사지를 하루에 두 번 받은 적이 있어도 바로 나와서 또 받는 건, 이건 무엇인가에 허기진 심리 상태인가? 숫자에 대한 강박이 내 뇌를 지배했던 것 같다. 그래도 내가 허용 못하는 단 한가지, 낯 선 남자가 내 몸에 손대는 것은 싫다. 아무리 격투기 선수같은 아줌마가 들어와도 내 몸을 맡길 수 있지만 남자 맛사지사가 내몸을 만지면 온몸이 간지럽다. 그 시간은 맛사지를 받는 시간이 아니라 그냥 소름과 간지러움을 참는 시간이다.
그래서 물었다. "우먼 매니져 오어 맨 메니져? " 난 손으로 X표를 하면서 맨 맨 맨 노 노 노를 외쳤다.
그녀는 빙그래 웃으며서 우먼이라고 한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그녀가 인도하는 맛사지 샵으로 들어간다.
누가 들어오나 잠시 기다렸다. 보통 호객꾼은 예뻐도 막상 들어가면 호랑이 같은 아줌마들이 버티고 있기 마련인데, 여기는 호객꾼마저 할머니이니 어느 정도일까 싶었다. 그래도 희미한 반전을 기대했다.
역시 반전은 있었다. 그 할머니가 마사지사로 들어오는 것이다. 순간 깨달았다. 내가 첫 손님이구나. 장사가 너무 안되어 호객도, 카운터도, 마사지도 할머니 혼자 1인 3역을 하는 곳이었다.
그녀의 기도가 내 기도 보다 간절했던 것 같다. 그녀는 오늘도 절망의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를 하고, 주기도문을 외우던 중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하는 순간에 뭔가 멍청하게 생긴 놈이 앞의 마사지 가게에서 나오는데, 방언처럼 25만동 가격을 부르자 마자 넘어오는 것이다. 그녀는 기도의 응답을 체험한 것이다. 이건 그녀에게는 기적이다. 아무리 호객을 해도 앞에 두 명의 예쁜 처자가 있는 곳으로만 다 가고 자기 가게에는 한 명도 오지 않아 생계가 막막했을 것이다. 그런데 기도를 하자 마자 그것도 바로 맛사지 받고 나오는 놈이 직통으로 자기 가게에 뭔가 홀린 듯이 들어오는 것은 기적이라고 밖에 설명할 것이 없다,
기도 응답이 일어난것이다. 나는 그녀의 주기도문을 이어서 외울 처지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생계를 걱정한 간절한 기도가 정욕을 풀기 위한 민망한 기도를 이긴 것으로 상상이 된다.
가게 표면은 깨끗했는데, 왜 반바지가 바로 없고 어디선가 찾아다 주는 느낌인지... 실제로 재사용이 아닐 수도 있지만 나의 상상력은 저 너머로 넘어가고 몸은 벌써 간지러워 왔다.
이 유튜브를 본 것까지 떠올리며 나는 불안에 떨었다. 그러나 할머니의 맛사지가 시작되는 순간 부드러운 느낌이 아니라 거친 손의 느낌이다. 고생한 우리 어머니가 내 등이 가려울 때 긁어주는 느낌이다. 거칠 거칠한 손이 옛날의 편안함이 나의 강박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키고 나를 그녀에게 맡기고 편한 잠을 잤다. 그 순간은 숫자의 강박도 청결의 문제에서 잠시 나마 해방된 시간이었다. 실제로는 그녀와 내가 나이차이가 얼마 나지 않았을텐데 ...., 심지어는 내가 더 많을 수도 있었을텐데도 나는 내모습을 못보니 ㅋㅋㅋ
결국 나트랑을 간 이유도 간단하다. 나는 낯익은 다낭을 가려고 했다. 그런데 비행기 표가 다낭보다 나트랑이 싸게 나온 것이다. 나트랑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는데, 두 번이나 간 다낭 말고 나트랑 가라고 캐나다에서 온 딸이 말하는 거다. 그래서 더 싸다는 이유만으로 나트랑 항공권을 예약했다.
그런데 학교에서 나트랑 간다는 말을 했을 때, 옆에 있던 선생님이 "혼자 가지 마세요. 요즘 캄보디아에서 납치해요"라고 했다. 나는 웃었다. "야! 나 잡아가지고 뭐 해. 밥도 많이 먹고 동작도 느려서 답답해서 그냥 가라고 할 거야. 인질 해봐야 돈도 안 나올 것 같고..." 그랬더니 앞에 있던 내 친구 선생님이 리얼하게 대답했다. "술도 안 먹었으니 배 가르면 싱싱한 것 여러 개 있잖아."
나는 정말 이 말에 빵 터졌다. 영화 대사도 기억 안 나지만... 그런데 이 말이 나트랑 여행에서 내게 공포가 되어 돌아올지는 몰랐다.
* 실재로 이 연재는 60대, 제미나이와 다낭 도보 여행의 후편인 것이다.
전편을 보면 내용의 연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참고로 링크를 걸어 놓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