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필사의 나트랑 탈출기(중)

싱싱한 놈 2개

by 김정훈

우선주의 추억

옛날에 거래가 안 되는 우선주를 강제 장기 투자하고 있었다. 매도 호가는 상한가, 매수 호가는 하한가였다. 나는 매도 호가보다 한 호가 낮은 쪽에 100주를 주문했다. 운 좋으면 1, 2주 팔리는, 그런 날이면 아주 운 좋은 날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100주가 다 체결된 것이다. 기분이 너무너무 좋았다. 다른 사람들이 다 바보 같아 보였다. 왜 욕심이 그렇게 많은지, 그냥 상한가 바로 아래 호가에 주문 내면 가끔 팔릴 텐데…. 나는 나의 똑똑함에 감탄하며, 혹시 떨어졌으면 다시 살까 하고 네이버 주식창을 검색하니 상한가였다.

순간, 아! 내가 팔면 오르는 절대적인 진리에 당황했다. 정말 사서 떨어지는 것은 참겠는데, 판 다음에 상한가는 며칠을 못 잔다. 혹시나 하고 본주 공시를 보니 아무것도 없다. 작전인가 확인하려고 증권 앱으로 들어가니, 와! 기분 최고다. 호가는 변화가 없다. 내가 판 다음에 누가 1주로 가격 장난을 친 거였다.



드디어 나는 똑똑한 머리를 굴렸다. 상한가는 130%고 하한가는 70%니까, 130을 70으로 나누면 넉넉잡아 185주다. 야, 만약 오늘 살 수만 있다면 정말 최고의 투자가 되는 거다. 사면 사는 거고 못 사면 못 사는 거고. 주식은 마음을 비우고 하는 것이라고 나 스스로 대견해하며 정말 자랑하고 싶었다.

의기양양하게 하한가 주문 185주 매수 버튼을 누르는 순간, 매수 잔액이 부족하다고 한다. 순간 내가 계산을 못 했나 싶어 계산기를 누르니 분명히 185.xxx가 선명하게 뜬다. 원래 잔액이 조금 있었는데 왜 안 되지? 그래서 순간 같은 종목을 팔았다 살 때는 같은 수량만 되나 싶어 100주를 주문했다. 그래도 예수금 부족! 정말 증권회사 시스템을 욕하고 싶었다.

D+2 예수금을 확인했더니 미수금이 떠 있었다. 매도를 한 게 아니고 매수 주문을 한 것이었다. 그 안 팔리는 주식을 내가 100주나 더 사준 꼴이었다. 그날 거래량의 99%는 내가 만들었다. 그리고 종가는 하한가. 어떤 놈이 1주를 던진 거다. 왜 던진 거야?


그랩호출 예행연습

나는 조심을 해도 실수를 그렇게 많이 한다. 준비를 안 해서 실수하는 것은 아니다. 확인하고 또 한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확인을 한 번 더 하다가, 그 확인하는 과정에서 챙겼던 것을 흘린다. 괜히 확인해가지고….

이번 나트랑 여행도 준비는 철저히 했다. 유튜브 나트랑 맛집은 다 검색했다. 그리고 하나하나 받아 적었다. 그것을 한글로 쳐서 프린트로 뽑았다. 나의 사랑하는 며늘님께서, 아니 아드님의 부인께서 나트랑 할인 쿠폰과 무료 쿠폰을 하사하셨다.


그리고 그랩의 공포 때문에 그랩 부르는 곳, 버스 이용 유튜브도 시청하면서 처음 가는 나트랑 공항의 구조를 생각해 봤다. 그랩 앱도 집에서 미리 눌러봤다. 나트랑 공항에서 호텔까지…. 누르면서도 불안했다. 이거 잘못 누르면 한국에서 눌렀는데 기사가 오면 어떡하지? 기계치인 나는 조심조심 이것저것 눌러봤다. 그리고 충분히 이메이징 트레이닝을 하고 나트랑행 비행기를 탔다.


나트랑 공항에서

아무리 집에서 가상연습을 해도 공항에서 그랩을 부르는 것은 내게는 공포다. 다낭에서의 두 번의 시도는 경험이 아니라 그냥 실패의 트라우마다. 나는 나트랑 공항 도착 전까지 비행기에서 다낭 여행처럼 휴대폰을 꺼둔다. 배터리 방전이라는 상상은 죽어도 하고 싶지 않다. 다른 사람들의 영화 보는 것을 훔쳐보다가 눈이 마주치면 괜히 이상한 느낌이 들어 눈을 돌리고….

드디어 나트랑 공항에 도착했다. 역시 검문대는 길이 길어도 너무 길었고, 혹시나 인민군 복장을 한 검문소에 걸릴까 봐 긴장되는 것은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검문대를 통과하고 공항 밖을 나가는데 TV에서 본 화면은 나오지 않는다. 밤에 도착해서인지 다낭에서의 악몽이 내 뇌를 마비시킨 모양이다. 그랩 존은 안 보이고 무언가 안내하는 사람이 택시를 배차하는 느낌이다.


나는 휴대폰을 키고 그랩의 출발지를 나트랑 공항으로검색하는 순간 멘붕이 일어난다.

나트랑 공항은 안 나오고 푸꾸옥과 캄란, 탄손낫 공항만이 검색되는 것이다. 그림으로 검색해도 나짱도 안 나온다. 내 휴대폰이 망가졌나? 인터넷이 망가졌나? 가슴은 두근거린다. 머리가 아찔하고 몸에 땀이 난다.

밖은 깜깜하다. 그랩은 잡을 수가 없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소리가 들린다. “미터기, 미터기…” 소리가 마구 들린다. 난 여기서 침착성을 잃지 않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호텔 주소를 종이에 크게 적었다.


그 순간 내게 접근해서 “미터기, 미터기…” 참 한국말 찰지게 한다. 난 유창한 영어로 “노 미터기!(No Metergi!)” 그러면서 내가 적은 종이를 그에게 보여주며 “그랩(Grab)…” 그랬더니 "똑 같아요!!" 그가 가격을 부른다. “60만 동.” 그 안내원은 험상궂은 기사가 모는 차에 나를 배차했다. 정말 기사는 건장했고 눈 빛이 매서웠다.


담배 냄새에 찌든 차! 담배 냄새가 나를 불쾌하게 했지만, 그 아저씨의 포스에 “뒤에 타겠다”는 말은 감히 꺼내지도 못했다. 10분이면 호텔에 도착할 텐데, 어라? 그런데 왜 여기는 60만 동이나 달라고 하지? 베트남이면 다 똑같을 것 같다는 잘못된 논리적 오류!

호텔로 가는 길

호텔까지 10분이면 도착하는 다낭과 달리 차는 어두운 산길을 달린다. 다낭 같으면 벌써 도착하고도 남았을 시간에 불빛 하나 없는 길을 달린다. 내가 숨 막히는 이유는 찌든 담배 냄새 때문인지 나의 긴장감 때문인지. 혹여 내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면 이 아저씨가 나를 어떻게 할지…. 이때 교무실에서의 농담, ‘캄보디아 싱싱한 것 두 개’가 떠올랐다. 나는 내가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고 씩 웃었다. 그런데 호텔은 도착할 생각을 안 한다.


순간 구글 지도 검색한 것이 떠올랐다. 출발했을 때의 위치가 나트랑 공항이 아니고 캄란 공항이었다. 나짱 공항도 아니었다. 지금 나는 엉뚱한 공항에 도착했고 산길로 납치당하는 것이 아닌가? 불안했다. 험상궂은 인간이 나트랑 호텔 주소를 보고 엉뚱한 곳에 떨어진 나를 속으로 비웃으며 납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서서히 들기 시작했다.


불빛 하나 없는 산길. 나는 어디로 가는가? 더욱더 무서운 것은 주변에 차가 단 한 대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말 담배 냄새 때문에 숨이 막힌다. 나는 아저씨 눈치를 보며 살금살금 숨을 쉬기 위해 창문을 조금씩 연다. 왜 그가 트는 음악은 사람을 더 소름 돋게 하는지. 미터기는 40만 동을 넘어도 산길이다. 50만 동을 넘어도 산길인 것 같다. 자꾸자꾸 캄보디아가 생각난다. 60만 동도 넘었다. 호텔이 아니다. 나트랑 공항도 아니고 이상한 캄란 공항에 와서…. 거기서 나는 ‘설마’ 하는 마음이 ‘혹시’로 바뀌었다.


싱싱한 놈의 결말

메타기가 75만 동이 넘었을 때 호텔에 도착했다. 휴! 아무튼 내가 찾은 호텔인지는 확인 되지 않았지만 아무일도 안 일어난 것에대해 그냥 살아서 기쁘다. 그 아저씨한테 60만 동만 주면 화낼 것 같아서 2만 동을 팁으로 주었다. 그랬더니 그 아저씨가 너무 좋아하며 고마워하면서 내 가방을 호텔까지 들어준다. “땡큐”를 연발하면서. 어둠 속에서의 그 아저씨 표정은 무서운 줄 알았는데 아주 순박하게 생겼다. 혹시나 호텔이 다른 곳이 아닌가 걱정했는데 나짱에 내가 예약한 호텔이었다.


나트랑의 맛집은 준비해놓고, 나트랑 그랩 타는 법은 그렇게 연구하고 연습했으면 뭐 하나? 공항 이름도 제대로 확인 안했고, 공항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조사도 안 하고, 다낭의 경험으로 나트랑을 내 마음대로 재단하고 사람의 외모에 나의 상상의 편견을 덧붙여서 살아간 나의 공포. ‘캄보디아 싱싱한 놈 2개’.

ps. 캄란 공항은 원고 쓰기전만 해도 나트랑 공항의 다른 이름이었나 생각했다. 글쓰면서 알았다. 서울과 인천공항의 관계와 나트랑과 캄란 공항의 관계가 같다는 것을..., 해외경험이 부족하고 어리바리한 나에게는 당항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알림)

원래는 매거진 ‘제미나이와 함께 60대 도보여행’으로 글을 썼었는데 뒷 부분부터는 연재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60대 제미나이와 함께 60대 도보 여행은 이 글의 전편과 같다.. 그중에 1,2,3, 편만 링크 걸었으니 읽어보시면 이 글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될 것입니다.


01. 나는 대한민국의 60대다.


02. 나는 여행의 결격자이다.()


03. 나는 여행의 결격자였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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