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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하 Jun 24. 2024

우연성 음악의 이해

존 케이지의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존 케이지의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에는 특별한 표제가 없습니다. (클래식에서 '표제'는 내용을 담은 제목을 뜻합니다.) 없는 제목에 굳이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죠. 일상에서도 매초 단위로 어떤 뜻을 담으려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출근'이라는 사명을 띠고 집을 나서지만, 직장 가는 길에 일어나는 사소한 주변상황은 무심코 지나칩니다. 어제는 새소리를 듣고, 오늘은 공사구역 기계음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는 약속된 소리가 아닙니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당황하거나 불안에 떨지 않고 가던 길을 가죠. 이것이 우연성 음악의 전제입니다.

위의 존 케이지 음악에는 세상 속 온갖 잡다한 소리들이 모여 있습니다. 정말이지 현실과 같습니다. 쇠, 나사못, 판자, 고무, 나무판 등에서 나오는 비화성음들을 최대한 섞어 놓았습니다. 내가 무심결에 듣고 있는 세상의 잡동사니들에서 울리는 소리는, 의미 있는 소통을 위한 진동이 아닐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편한 백색소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소통을 부르짖고 있다면, 인간은 극도의 정신분열에 시달릴 것입니다.

 그의 대표작 <4분 33초>.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무대에 올라와 정지상태로 악기를 사용하지 않고, 4분 33초 동안 머무르다 내려옵니다. 연주시간 동안, 기침소리, 소곤거리는 말소리, 의자소리 만이 들릴 뿐입니다. 우리네 일상 중 한 컷을 담은 거죠. 그저 평범한 시간에서 오는 우연한 소리들을 음악에 포함하고 싶은 예술가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무대 위 연주되지도 않는 오케스트라 악기들조차도, <4분 33초>라는 곡의 악보포함됩니다. 예상치 못한 찰나에 소리가 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면, 자세를 바꾸다가, 혹은 멈춰 있는 동안 재채기를 해서 악기를 건드리는 소리가 날 수도 있습니다. 지금 말없이 걷고 있는 나도 세상이라는 오케스트라 속에 포함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현대 음악은 현실주의라는 기본 위에 놓여있습니다. 꾸미지 않죠. 과장보다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악기와 음계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현실에 가까운 소리 만들기를 시도합니다. 컴퓨터 음악, 미분음악, 전자음악 등을 활용하기도 하고, 현대음악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은 산에서 들리는 새소리 등을 녹음해서, 악보에 넣기도 했습니다.

이제 ‘일상’이라는 단어를 떠 올리며 존 케이지의 음악을 한 번 더 감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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