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몰랐던 사회의 온도.
요새는 '이십춘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20대들이 많이 방황하고 있다고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또한 대학졸업 후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이십춘기를 겪고 있다.
학생신분으로써 보호받고, 잘못을 저질러도 어리다는 이유로 용서가 되었던 과거에서 벗어나 대학을 졸업하면서 '어른'으로 대우받기 시작하고, 거기엔 막중한 책임이 뒤따른다.
졸업 후 운이 좋게도 바로 취직이 되었어서 1년동안 한 회사에서 일할 수 있었고, 그때 처음으로 어른들의 세상 속 차가움을 경험했다. 어른이 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은 그저 '돈을 번다.'라는 사실 외에 많은 책임을 동반했다.
대학생때는 '학생'이라는 명패가 무기가 되어 실수를 하더라도 모두가 넘어갔고, 쉬고 싶다면 하루정도 뒤로 미뤄도 큰 책임과 후폭풍이 뒤따르지 않았다. 학비내고 듣는 수업은 집중하지 않아도 크게 눈치볼 필요가 없었고, 과제도 하고 안하고는 내 학점에만 영향을 끼칠 뿐 그게 다였다.
하지만 회사생활에서 실수는 사죄와 책임이 뒤따랐고, 학생때에 비해 작은 실수라도 용나되지 않았다. 원한다고 갑자기 쉴 수 없었고, 쉰다면 그걸 매꾸기 위해 다른날 더 노력해야 했다. '남의 돈을 번다.'는 일은 내돈으로 배우는 자유와는 차원이 달랐고, 머무는 내내 눈치와 스트레스를 동반했으며, 수직적인 관계 속 맨 아래로써 다양한 일들을 떠맡으면서 미루거나 떠넘기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때로는 지금껏 받아본 적 없는 낯선 대우에 마음에 생채기도 많이 났지만 어른이기에 견뎌야했다.
서러울 때마다 마음 한편으로 그 많은 일들을 겪고 지금까지 버텨낸 부모님이 생각나는데, 그들은 어떻게 이런 사회 속에서 지금껏 견디며 지금까지 다다를 수 있었을까 하는 경외심과 존경이 든다. 힘든 사회를 견디고 돌아와 어린 나의 투정을 받아주고, 뒷바라지해준 부모님이 대단하면서도, 철없던 지난 날들에 대한 후회와 미안한 마음이 가득해진다.
오늘도 차가운 세상을 하루 또 견디는 모든 어른들이 존경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