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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머리 없는 며느리

아버님 죄송합니다

by 우주

결혼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새벽에 경비실에서 연락이 왔다

아버님이 오셨단다

허둥지둥 옷을 갈아입고

남편은 모시러 내려가고

나는 어쩔 줄 몰라서

문 앞에 서있었다

전날밤 남편이 술 먹고 늦게 들어와

라면을 끓여 먹고

설거지도 안 해 집이 엉망이었다

겨우 아버님을 거실에 모시고

어머님께 전화하니

어제 술 드시고 밤기차로

서울 가신다는데 못 말렸다고 하시며

시래깃국을 끓여드리라고 했다

어떻게 끓이느냐니까

배추를 삶아 멸치국물에

된장 넣고 끓이라고 하셨다

남편은 출근하고

슈퍼도 문을 열지 않았는데

배추를 구해야 했다

옆집문을 두드리니

다행히 배추가 있다고 해서 빌렸다

솔직히 밥도 안 해보고

결혼해 한숨만 나왔다

어려운 공부도 했는데

살림이야 가서 하면 된다는

어른들 말만 믿었다

일손 느린 내가 물을 끓이고

설거지를 하고

통배추를 자르고 씻고

또 삶아서 또 씻고

멸치국물을 내고

삶은 배추를 잘라서 넣고

된장 한 숟가락을 넣는데

거의 10시가 되었다

눈치 없는 며느리는

밥은 필요 없다고 하셔서 안 했다

상에 배추된장국 한 그릇만 차려드렸다

어젯밤부터 아무것도 드시지 않았을 텐데

마실 것도 챙기지 않고

상에 밥도 없이 국만 드렸다

지금 실력이면 밥도 했겠지만

그때는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도

된장국 하나 끓이는데

3시간이 걸렸다

밤기차 타고 아들집 와서

된장국만 드시고 가신 아버님

정말 죄송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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