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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Jul 29. 2020

이제 디자인 요청은 이 시트에 작성해주세요

나홀로 신입 디자이너에게 스타트업은 딱히 일하기 좋은 환경은 아니었습니다. 스타트업이 보통 구성원들과 회사가 함께 성장해가고 하나하나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많이 표현하는데, 정말 틀린 말은 아니더라고요.. 이런 것도 만들어야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나쁜 의미가 아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부분까지 규칙과 기준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중 하나가 디자인 요청 관련이었습니다.



미안한데.. 이것 좀 해줄 수 있어요..?

사실 그전까지 디자인을 요청하는 것 자체에도 양식이나 어떠한 규칙이 있어야 한다고 인지하지 못했는데 실제 업무를 해보니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단순히 기획안만 잘 전달 받으면 되지 싶었는데 회사가 발전하면서 디자인 업무의 범위가 넓어지다 보니 효율적인 일 처리를 위해 필요했습니다.

(당시 디자인을 요청하던 방식이었습니다. 누구는 회사 메신저로, 누구는 메일로, 누구는 말로 툭 - 카톡으로 안 준 게 어디야...싶습니다..)

처음에야 저도 해달라는 데로 해드렸지만, 했던 업무들의 히스토리가 따로 남지도 않고 위에서도 명확히 어떤 업무를 하는지 모르니 제가 일일이 뭐 뭐 합니다. 설명하기도 애매했습니다. 또한 디자인 요청 인입 채널이 다르다 보니 간간이 놓치는 업무도 발생하고, 업무의 중요도에 따라 우선순위를 나누기도 어려웠고 급하지 않은 업무는 아예 잊혀 버리게 되는....


그래서! 디자인 요청 방식 통일화 및 채널을 일원화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목적은 이랬습니다!

디자인 요청 일원화 + 디자인 업무 히스토리 기록(저도 회사에 나 무슨 일 하고 있어요! 이렇게 디자인 작업 요청이 많고, 협업이 필요한 부서가 많아요! 라고 말하고 싶었음)

또한 같이 일하는 크루들이 이런 거까지 맡기면 힘들겠지.. 라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있어서 디자인 요청에 대한 장벽을 낮추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디자인팀(나 혼자긴 했지만)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습니다. 어제 한 요청을 오늘 아침에 언제 돼? 금방 되지 않아? 급한데 내 것부터 해줘 등의.. 그래서 디자인 업무에 대한 존중을 생기게 하는 목적도 있었거든요.


먼저, 회사 내에 다른 크루가 잘 만든 시트를 참고해 가면서 저의 목적에 맞게 만들기 위해 다양한 부분을 고려하였습니다.


<사용자 입장에서>

모든 부서에서 접근 가능한 툴이며, 사용할 수 있는가?

회사에 추가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가?

디자인 요청에 자체가 부담으로 다가가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처음 본, 자주 사용하지 않은 사람도 쉽게 요청할 수 있을까?


<디자이너 입장에서>

모든 업무의 기록(히스토리)이 남을 수 있을까?

당장 시작해야 할 업무와 앞으로 하게 될 업무 리스트를 볼 수 있을까?


위에 모든 상황을 고려해서 만들지는 못했지만 대략 이 정도의 고려 사항을 만족할 수 있는 디자인 요청 방식을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저희는 구글 메일, 스프레드시트 등을 업무용 툴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민의 여지 없이 구글 스프레드시트를 이용해서 만들기로 했습니다.



구성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본 구성은 몇 번의 업데이트를 거친 현재 버전 기준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일단 기존 업무 요청의 업무 성격들을 파악하여 정기적 요청이 들어오는 항목별로 카테고리를 나누고 발주가 필요한 항목도 한 스프레드에 모아 시트 별로 구분을 하였습니다.

(20.7월 기준 디자인 요청 시트)

각 분류별 시트로 구성을 짜고 간단한 안내 사항을 적어뒀습니다.   

요청은 최소 일주일 전에 → 작업할 시간은 줘라

일정이 급할 경우 메신저나 메일을 통해 → 내가 시트만 보는 게 아니니 급하다면 별도 요청도 해라

상세한 디자인 기획안 첨부 → 요청 양식 및 형식을 갖춰라

나름 각 항목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내포했던 것 같습니다 :)

그리고 리스트 항목에는 크게

요청일/요청자/마감 요청일
→ 작업 시간이 촉박할 시에는 작업 기한을 늘리도록 하겠다.   

필요제작물/상세스펙/상세내용 및 기획안 링크
→ 전에는 뭐하나 만들어줘~하면 탐정이 되어 자료를 찾고 인터뷰를 하러 다녀야 했거든요. 뭐 만드는 거예요 이게? 어디에 쓰는 거예요? 등등 물어보면 요청자는 가벼운 작업으로 생각했지만, 범주가 굉장히 크거나 비용이 발생하는 인쇄물 등까지 나와야 하는 건들도 있었습니다.
또한 어떤 사진을 넣어달라 하면 제가 그 사진을 찾으러 드라이브를 탐험하였고, 어떤 제품으로 발주를 들어가야 한다면 그 제품 사이트에 직접 들어가 작업 사이즈도 일일이 확인을 하고 아예 제품 자체를 찾아야 하는 경우도 태반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어느 정도 어떤 의도로 무엇을 만들려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위의 항목들을 넣어놨습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고 느낀 부분인 것 같네요...)   


완료일
→ 네가 요청한 작업을 나 이때 끝냈어~의 의미와 동시에 셀 배경에 색을 채워 넣어 각각의 시트를 보면서 완료된 작업과 작업을 진행해야 하는 작업을 빠르게 확인 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하였습니다. 

추가로 기획안 템플릿도 제작하여 점점 규격화를 시켜나갔습니다. 저희는 특히 오프라인에 적용하는 디자인이 많은데, 예를 들어 단순 모든 지점에서 냉장고에 붙일 안내문이 필요해요! 라고 했을 때 지점마다 냉장고 형태며, 열리는 방향이며, 색상이며 등이 지점마다 달랐고, 모든 사항에 대해 지점을 방문해서 디자인에 반영할 수 없었기에 좀 더 상세한 디자인 요청이 필요했습니다. 정확한 문구는 뭔지, 어느 범위에 사용이 되는지, 실제 설치 및 작업이 필요한 항목이면 사진도 첨부해주고.. 무슨 무슨 사진을 넣어달라 하면 그 무슨 무슨 사진 파일을 같이 전달해 주든지 링크를 전달해 주든지..등...

(이외의 다른 발주 페이지들..)


신기하게 업무 효율이 올라갔습니다.

회사에서 필요한 디자인 업무의 90% 이상은 위의 시트에 기입되고 히스토리가 쌓이다 보니 나름의 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1. 업무 효율성 UP! 

정말 기존보다 업무 효율성이 몇 배로 좋아졌습니다. 전체 업무 요청을 한 번에 파악할 수 있었고, 놓치는 업무가 줄었으며, 일의 우선순위를 나뉘어 순서대로 작업이 가능해졌습니다. 이후에 다른 디자이너가 왔을 때도 업무 분배 및 업무 파악이 수월했었고요.


2. 디자인 R&R 명확한 구분 가능 

조직이 커지다 보니 디자인 일에도 분류가 필요해졌는데 해당 시트를 통해 어떤 성격의 업무가 있으며, 어떻게 구분 지어져야 하는지 정보로 쓰일 수 있었습니다.


3. 스케줄 파악 및 업무 패턴 파악 가능 

월 기준으로 보통 마케팅 및 광고 관련은 월초에 업무가 몰리며, 신규 지점 오픈일 2주 전에는 어떤 업무들 요청이 오며, 몇 건의 이벤트가 있고 어떤 주기로 요청이 들어오는지 해당 업무에 시간이 어느 정도 소요가 되는지,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디자인파트 내에서도 대략적인 스케줄 파악 및 시간 조정에 예측이 조금씩은 가능해졌습니다.


4. 디자인 파트(팀) 독립? 

기존에는 oo팀 하에 디자이너 한 명의 팀원으로 존재했었습니다. 해당 시트를 통해 디자인 업무의 양은 어느 정도이며, 어떤 부분까지 확장이 되어있고 업무 시간은 어느 정도 걸리는지 객관적인 데이터가 쌓이다 보니 회사에도 명확하게 디자이너 추가 채용을 건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냥 막연히 저 힘드니까 인원 더 뽑아줘요 ㅠ_ㅠ 했다면 쉽지 않았을 거 같은데 디자인 요청 시트로 쉽게 설득(?)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도  지속적으로 시트를 써가면서 업데이트를 하고 활용도를 높혀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업데이트를 할 예정이고요. 지금까진  모든 크루가 디자인 요청에 거부감을 줄이고 장벽을 낮춘다는 것에 좀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면, 이제는 디자인 파트(팀)의 입장에서 모든 팀의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업데이트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배울 수 있는 점은 어디에나 있구나.

이 시트를 만들면서도 새롭게 배운 점들이 많았습니다.

디자인 요청 하나에도 커뮤니케이션이 담겨 있으며,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의 장벽을 낮춰야 한다고 생각했고, 장벽을 낮출 수는 있지만, 그 상황을 방치해서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는 없겠다고 느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이 글을 쓰면서 내용이 메일을 잘 쓰기 위해 찾아봤던 글과도 굉장히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메일이든 디자인 요청이든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기 편하게 작성해야 한다는 생각이 기본이라 느꼈습니다.


사실 패기 좋게 만들어도 같이 일하는 크루들이 제대로 써주지 않았다면 저 시트의 용도나 의미가 무색했겠지만, 다행히도 다들 몇 번의 안내와 설명을 해주니 대부분 다들 잘 사용해 주셨고, 이후에는 오히려 몇몇 부서에서 저희 요청 시트 형식을 가져가서 사용하시는 걸 보고 아! 적어도 못 만들지는 않았구나! 싶었습니다.

물론 많은 경험을 토대로 만든 것은 아니지만 현재 저희 회사 상황에서는 유용하게 쓰이고 있어서 다행이며, 앞으로도 더 능률적으로 일하는 방법들을 많이 고민하며 저 자신도 발전해 나가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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