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고해성사

by 별똥꽃

현구에게서 "이제 연락하지 마!"라는 일종의 경고를 받고 미애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미애는 남편과 비밀이 없는 사이이기 때문에 현구에게 연락이 왔음을 남편에게 바로 알리지 않았을 때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몇 시간 후 출장지에 가있는 미애의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출장지에서 미애의 남편이 하는 일이며 남편이 지내고 있는 호텔 등에 관한 얘기를 듣고 있다가 미애는 어렵게 말을 꺼냈다. 사실 남편이 출장을 가기 며칠 전에 현구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곧 출장 가는 남편을 심란하게 하고 싶지 않아 얘기를 못 꺼냈다고 말이다. 그리고 남편에게 알고 봤더니 미애 가족이 현구 가족과 몇 년 전에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다고 전했지만 남편은 미애의 생각처럼 박장대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불쾌한 구석은 전혀 없어 보였다. 미애는 남편에게 이제 경쟁자가 생겼다고 말했더니 남편은 자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여유롭게 말했다: "걱정 안 해! 어차피 승자는 나니까!" 그도 그럴 것이 나이나 외모, 학력, 능력 등을 고려해 볼 때 미애의 남편은 전혀 손색이 없었다. 더군다나 미애의 남편은 직장에서 퇴직할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퇴직 후 다른 직장을 가지면 미애는 그때 봐서 일을 그만두고 싶으면 남편이 버는 돈으로 편하게 살 수도 있 거라고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사실 두 남자를 꼭 비교해서가 아니라 가정이 있는 과거의 연인들이 이십 년이 더 지난 지금 예전의 감정으로 되돌아가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너무 조심스러워 결단력 없는 현구도 옆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미애도 배우자 몰래 불륜을 저지를 만한 위인들은 못 되었다. 어차피 이 둘의 관계는 결과가 예정된 드라마일 뿐이다. 미애는 묵묵부답인 현구에게 마지막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자신의 남편에게 이미 털어놓았고 다음에 귀국해서 혹시 만나고 싶으면 말해 달라고. 미애는 남편이 현구와의 만남을 허락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현구는 자신의 부인에게 끝끝내 말하지 않을 거라고 미애는 생각했다. 자신을 보러 와도 몰래 만나러 오거나 아니면 한국에 와도 자신을 만나지 않고 그냥 미국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일류대 병이 있는 현구는 미애가 다시 자신에게 연락해서 제발 본인을 한 번만 만나 달라고 애원하길 바랄지도 모르겠다고 미애는 생각했다.


현구와 미애가 나란히 교정을 걷거나 연극을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현구의 가족과 미애의 가족이 만나 아는 사이가 되는 일도 없을 것이다. 현구와 미애의 인연은 이미 이십사 년 전에 끝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애는 현구와 연락이 닿은 짧은 기간 동안 예전의 자기 자신과도 재회한 것 같아 기뻤다. 두 번의 출산과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불어나 버린 몸무게를 싸악 줄어야겠다는 각오도 했다. 만약에라도 훗날 현구를 한번 만나게 된다면 자신의 큰 체구 때문에 키 작은 현구가 왜소해 보이지 않을까 내심 걱정도 되었다.


어찌 됐건 미애와 현구의 지독한 사랑의 끝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떠나 줬다는 미애도 너무 사랑해서 붙잡지 못했다는 현구도 보기 드문 멍청이들임에 틀림없다. 이 바보들의 지랄 같은 사랑 이야기의 결말을 조심스럽게 지켜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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