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여자의 마음

by 별똥꽃

헤어진 사람을 다시 만난다는 건 사실 평소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한 미애에게 아주 드문 일이다. 남편을 포함해서 예전에 미애가 사귀었던 모든 남자들을 중에서 특히 현구가 자꾸 생각나는 이유는 예전에 그가 미애에게 보여준 헌신적인 사랑 때문이다.


미애는 현구와 연락이 닿은 후 어느 일요일 오후 자신의 친한 친구와 통화를 했다. 친구는 미국에서 자란 미애보다는 나이가 많은 미혼녀다. 미애와 그 친구는 둘의 나이 차이를 신경 쓰지 않고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다. 예전에 미애가 현구 누나의 옷가게를 두 번째 방문했을 때 미애 대신 옷 값을 내줬던 바로 그 친구다. 미애의 친구는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는 것"을 좋아한다. 미애는 사실 남에게 빚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음에 그 빚을 갚기 위해 또 만나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이다.


미애의 친구는 자신이 최근에 선을 본 남자에 대한 얘기를 했다. 그 남자가 혼자서 미애의 친구를 좋아했다가, 예정도 없이 만나자고 했다가, 자신은 연애를 할 준비가 안됐다고 했다가, 또다시 만나자고 애원을 했나 보다.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다 한 거다. 그 얘기를 듣고 있는 미애는 그 남자가 꼭 미애 자신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춤추고 노래하고 악기 연주까지 하는 일인극의 대가인 것이다. 미애와 현구의 짧은 재회가 그러했다. 미애의 어설픈 일인극이었다. 미애의 친구가 최근 선 본 남자에게 그다지 반응을 안 보였듯이, 현구 역시 미애 혼자 웃다 울게 그냥 내버려 둔 거였다. 친구가 선 본 남자의 이야기를 다 마친 후 미애는 자신의 친구에게 최근 현구와 연락이 닿은 얘기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남녀 사이에 좋으면 좋은 거고 싫으면 싫은 거지, 좋지도 않고 싫지도 않은 것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어! 좋으면 좋다고 하든가, 싫으면 싫다고 하든가! 아니, 헤어지고 내내 나를 잊지 못했다면 왜 한 번도 앞에 나타나서, "나는 너랑 다시 사귀고 싶다. 너는 어떠냐?"라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한 거야?


미애로서는 정말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미애 생각하는 이상적인 남성상은 도전정신과 성취욕이 강한 그런 사람이다. 미애의 남편과 미애가 사귀게 된 계기도 미애의 남편이 포기하지 않고 미애에게 여러 번 데이트 신청을 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않고 뒤에 숨어 남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길 기대하는 것을 미애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동안 미애의 삶이 그녀를 변화시킨 걸까? 아니다. 미애는 항상 그랬다. 흑색이든 백색이든 분명하고 회색에 대해 무지했다. 미애에게 회색은 어중간한 부류처럼 여겨졌다. 수동적이면서도 공격적인 기회주의자들. 간에 붙었다가 쓸개에 붙었다가 하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현구와 성향이 비슷한 친구는 현구의 입장을 대변했다. 친구는 현구 쪽에서 말한 이별 이유에 한 표를 던졌고 아마 미애가 그를 거절할까 봐 앞에 나타나지 못했을 거라고 말했다. 미애는 친구에게 말했다:

어쩐지 그 남자 편을 드는 것 같은 이 느낌은 뭐지? 내 친구 맞아?


사실 미애는 지금이라도 필요하다면 새 출발할 수는 있다. 자신의 외모와 능력이면 어떤 남자든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미애가 남자 보는 눈이 별로 없다는 거다. 이것저것 안 따지고 맘 통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미애는 젊은 시절에 항상 손해 보는 듯한 연애를 했었다. 그나마 미애 남편이 다행히 눈에 콩깍지가 제대로 씌어서 항상 그녀를 열렬히 사랑한다고 입이 닿도록 말이라도 하지 않는다면 둘의 결혼 생활은 일찌감치 정리되었을 것이다.


미애에게 남편은 자신의 이십 년 인생을 투자한 작품이기 때문에 좋든 싫든 끝까지 함께 해야 할 그런 존재다. 장점만큼 단점도 많지만 그냥 놓아 버리기엔 미애 자신의 청춘이 너무 허무해지기 때문이다. 나이도 나이인 만큼 현실적인 문제 또한 고려해야 한다. 이제 슬슬 퇴직 이후의 삶을 생각해야 할 나이에 갑자기 혼자가 돼서 퇴직 후 생활비, 의료비, 주거비 등등을 감당해 내려면 아마 미애는 평생 일의 노예가 돼야 할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미애에게 그럴 자신 없다. 미애 같은 바보가 남편과 헤어진들 제대로 된 남자를 고른다는 보장은 더더욱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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