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운동을 하러 나간 시간을 틈타 현구가 미애에게 연락을 했다. 현구와 미애가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은 것은 얼마 전에 둘이 친구로 지내기로 합의를 본 이후였다. 미애는 최근 들어 살을 뺀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는 중이다. 왜 살을 빼냐는 현구의 질문에 미애는 "예뻐지려고"라고 대답했다. 현구는 미애의 그 대답이 불편했다. 여자는 꼭 예뻐야 한다는 그런 사고가 전근대적이라고 미애에게 말했다. 미애는 예전에 현구가 자신을 좋아했던 이유가 자신의 미모 때문이었음을 상기시켰다.
남사친 그리고 여사친으로 관계 정리를 한 두 사람은 사실 그게 불가능할 것이라는 건 내심 알고 있었다. 각자의 배우자에게 친구로 소개할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친구가 되겠는가? 미애는 남편에게 현구를 소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구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 또한 현구가 그렇게 외쳐대는 페미니즘에 반대되는 입장임을 현구는 모른다.
직장 생활을 하며 가정을 돌보느라 이중고에 시달리는 미애에게 현구가 페미니즘을 그토록 외쳐대는 이유가 뭘까? 미애는 사실 이해하기 힘들었다. 사는 게 고단하니 그럼 직장이나 가정 둘 중에 하나를 포기하라는 말인가? 요즘 같이 물가 비싸고, 애 키우는 데 돈 많이 드는 세상에서 남자가 벌어 오는 돈만으로 생계를 꾸려나가기 빠듯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나오는 직장을 포기할 수도 없는데 그래서 가정을 포기하라는 건가? 설령 부부 사이가 멀어져 결혼 생활을 접는다고 한들 그럼 아이들은 어떻게 하라는 뜻인지?
미애는 아무 대안이 없이 계속 여자의 권리만 외쳐대는 페미니즘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래서 페미니즘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미애는 자신의 삶이 너무 고단하고 바빠서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여력도 없다. 그렇게 현구와 관심도 없는 페미니즘에 대해서 억지로 토론을 하고 난 이후에 미애는 현구의 속마음을 알 수 있었다.
현구는 아내 몰래 미애와 연락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미애가 아주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가질 수 없는 미애가 예뻐지는 것도 싫고 미애가 가질 수 없는 자신은 여자를 배려하고 최선을 다해 봉사하는 이상적인 남성상으로 보이고 싶은 것이다. 둘은 서로에게 다시 상처를 주고 있다. 그게 상처라는 것도 깨닫지 못한 채. 하지만 다행히 직관력이 강한 미애는 현재 둘의 관계가 서로에게 해롭다는 것을 깨달았다. 관심도 없는 페미니즘에 대한 토론 덕분에. 너무도 현구다운 선택이다. 대 놓고 말하지 않고 돌려서 얘기하고, 자신이 선택하지 못하고 남이 결정하게 하는... 처음에 미애와 현구가 헤어졌을 때도 그랬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미애와 현구가 지금 영영 돌아 서지 않으면 다음에 또 반복될 것이다. 그때는 아마 "기후 변화" 뭐 그런 거대한 인류의 생존에 관한 문제로 다투지 않을까 싶다.
미애는 현구에게 또 마지막 인사를 한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바란다고. 미애는 자신을 사랑하는 한 남자를 위해 직장을 다니고, 아이를 키우고, 지금보다 더 예뻐져서 남편이 자신과 함께 있을 때 자랑스러워하고 잠자리에서 행복한 남자가 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그것이 현구가 말하는 페미니스트의 적이라 할지라도 미애는 자신을 사랑하고 원하는 한 남자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예전에도 지금도 변함없는 미애의 생각이다. 비록 자신의 첫사랑은 깨졌지만, 미애가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이상형의 여자와 살고 있어 너무 좋다는 남편의 행복을 깨고 싶지 않다. 성당을 다니고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이상적인 남자로 현구 자신이 뿌듯하고 만족스러운 생을 살기 위해 현구 역시 미애와의 관계는 이쯤에서 정리해야 한다. 사필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