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나쁜 여자

by 별똥꽃

현구는 미애에게 한 두어 마디 메시지를 보낸 후, 며칠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미애에게 연락을 했다. 몇 해 전 미국으로 이민을 간 현구와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는 미애는 밤과 낮이 달랐기 때문에 시간을 맞추기 힘들었다. 현구와 미애는 그들이 헤어진 후부터 자신들의 삶을 짧은 문자 메시지로 서로에게 알렸다.


어찌 보면 미애와 현구의 인생은 끝없는 엇갈림의 연속이었다. 자신이 부담스러워 힘들어하던 현구를 위해 자신이 떠나 준 거라고 생각하는 미애와 달리 현구는 미애가 자신에게 싫증이 났고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져 도망가 버린 나쁜 여자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왜 헤어진 지 오 년이 지나고 나서야 나를 찾아왔어?"라는 미애의 질문에 현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너와 헤어지고 난 후 ) 대학교 내내 나는 사람을 사귈 수가 없었고 그 후로도 널 기다리면서 늘 너의 주변에서 서성거렸다. 너의 자취방 앞 골목, 교정, 터미널 그리고 드문드문 보이는 너의 남자 친구, 그리고 너의 졸업식, 그리고,,,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못 잊어하면서 왜 현구가 자기 앞에 나타나지 않았는지 미애는 끝끝내 이해할 수 없었고, 그 당시 일류대 병을 앓고 있던 현구는 떠나간 미애가 자신에게 다시 돌아와서 제발 받아달라고 애원하길 바랬던 것이다. 현구는 미애와의 사랑을 지독하고 지랄 같은 사랑이라고 정의했다.


미애가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해 버린 후, 현구는 비로소 미애를 완전히 포기할 수 있었다. 현구는 문학 동아리에서 만난 선배와 사귀기 시작했고 둘은 늦게 결혼해서 아들도 낳았다. 결혼 후 외국에서 살던 미애가 일 때문에 한국에 다시 나온 그해, 졸업 후 대기업에서 일하던 현구는 미국으로 주재원이 되어 나갔다. 현구가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귀국해서 지방에서 일을 때는 미애가 사는 도시에서 거주를 하면서 옆 도시로 통근을 했었다. 미애가 현구를 찾아 현미의 옷가게를 처음 찾아갔을 바로 그 무렵에 말이다. 현구가 몇 년간 같은 도시 같은 동네에서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미애는 현구에게 그 무렵 자신의 가족이 살던 아파트 거실에서 보이는 전망 사진을 보냈다. 현구가 산이 좋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산이 거의 70프로를 차지하는 그 사진의 구석에 찍힌 다른 아파트가 현구가 2년 동안 살았던 바로 그 아파트였다는 것을 둘은 그제야 알게 되었다. '바로 옆에 살면서, 식당에서도, 마트에서도, 은행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어떻게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을까?'라고 미애는 생각했다.


현구와 연락이 닿고 미애는 5일 동안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4일 동안 식사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먹은 게 없으니 3일 동안 화장실에도 갈 수가 없었다. 미애는 현구를 잊기 위해 나름 열심히 노력했다. 밤새 현구의 메시지를 기다리거나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현구를 귀찮게 하지 않고 자신의 불면증, 식욕저하, 변비를 한꺼번에 치료하기 위해서 매일 운동을 하기로 결심을 했다.


현구에게 첫 연락을 받고 딱 일주일이 지난 토요일 아침에 미애는 새벽에 일어났다. 몇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운동 대회에 그날도 딸이 참가하기 때문이다. 운동 팀에 속한 다른 아이들과 딸은 버스를 타고 대회가 열리는 곳으로 가지만 아이를 버스 타는 곳까지 데려다주려면 미애는 새벽녘에 일어나야 했기 때문에 전날 밤에 알람을 맞춰 놓고 잤었다. 하지만 미애는 알람이 울리기 한 시간 전에 잠에서 깨었다. 그리고 메모집을 뒤적이던 중 예전에 자신이 여기저기 남긴 글들을 읽었다. 현구의 소식을 궁금해하며 자신이 쓴 수많은 글들 중에 몇 개를 골라 현구에게 보냈다. 하지만 현구에게 연락이 오지 않았다. 미애는 현구에게 몇 번의 문자를 더 보냈지만 현구는 답을 보내지 않았다. 마침내 미애는 현구에게 전화를 했다. 하지만 들려온 것은 현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남긴 딱 세 마디였다:

현구: "여보세요?"

미애: " 오빠 통화 가능해?"

현구: "전화하지 마! 지금 집이야."


미애는 그제야 깨달았다. 현구에게 자신은 그저 질척거리는 나쁜 여자일 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미애는 현구의 연락처를 차단하기 전에 현구에게 메시지를 또 보냈다: 미안해. 차단할게. 오빠가 아니라 나 때문이야. 이렇게 미애와 현구의 짧은 재회는 끝이 났다. 내가 하면 사랑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그 애매모호한 둘의 관계를 결국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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