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애와 현구가 헤어진 지는 벌써 스물네 해나 지났다.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미애는 그때 현구와 왜 헤어졌는지 정확히 기억할 수가 없었다. 미애의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현구가 먼저 헤어지길 원했었고 미애는 버려지는 아픔을 겪지 않기 위해서 그를 놓아주었다는 것이다. 아마 미애와 현구는 둘 다 처음 헤어졌을 때 슬퍼하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했을 것이다. 아니 슬픔 따위는 아예 외면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게 둘을 위한 최선이라고 믿으면서.
헤어진 후 처음 몇 해 동안 미애와 현구는 남은 대학 기간 동안 한 번도 서로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각 각의 대학 생활은 둘의 이별을 잊고 지낼 수 있을 만큼 바쁜 일상의 연속이었으리라. 미애는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두어 명의 남자와 사귀었었다. 그리고 졸업 후에는 한 남자와 짧은 연애 끝에 결혼해서 이제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계속된 생존투쟁으로 미애는 지나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기회가 없었다. 결혼 이후에도 미애는 꿈속에서 현구를 가끔 보았다. 미애가 꿈속에서 현구를 보면 약간 무섭기도 했다. 한동안 미애는 현구를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또 애써 지우려 했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의 슬픔 따위를 생각하기에는 미애 자신의 삶이 너무 고달팠고 하루하루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현구와 헤어지고 시간이 점점 지나갈수록 미애는 현구의 소식이 더 궁금해졌다. 때론 현구를 원망하기도 했다. 만약 현구와 헤어지지 않았다면 자신은 지금쯤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한 미애의 연애사도 달랐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마 자신의 인생 자체가 많이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미애가 현구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은 단순히 예전에 사랑했던 한 남자에 대한 그리움은 아니었다. 그녀가 자신의 지나온 인생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자신의 삶의 의미나 목표를 찾기 위해서는 현구와의 재회가 너무 절실했다. 헤어진 한 남자가 한 여자의 인생에 무슨 큰 의미가 있냐고 누군가는 미애에게 묻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미애에게 현구는 마치 날개 부러진 새를 구조해 치료해 주고 다시 야생으로 날려 보낸 구원의 손길과도 같았다. 현구에게 미애는 그가 소년에서 한 남자로 커가는 과정을 함께한 여자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미애가 현구에게 그 외에 다른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미애가 현구의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미애는 현구를 꼭 한번 만나 보고 싶었다. 어쩐지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현구와 그녀의 관계를 매듭짓고 그녀가 앞으로 남은 자신의 인생을 보람 있게 살기 위해서는 현구를 만나 너무 어려서 이별의 의미를 몰랐던 그 시절로 돌아가 멋진 이별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미애의 마음 어딘가에 항상 숨어 있는 슬픔 한 조각이 최근 들어 너무 커져 버렸다. 미애는 현구를 만나서 그녀 맘 속에 있는 슬픔을 다 정리하고 싶었다. 현구의 연락을 기다길 수록 그녀는 더욱더 슬픔의 늪으로 빠져들어 갔다. 미애는 처음 현구와 헤어졌을 때 느꼈어야 할 슬픔을 스무 해도 훨씬 지난 지금에 와서야 느끼는 것 같았다. 미애 자신이 현구와의 이별 이후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때늦은 슬픔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