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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Nov 16. 2019

차 괜찮아요?

작년 가을부터 가을 태풍이 오기 시작했다. 비가 많이 안 오는 곳에 살고 있지만 작년 가을부터 유난히 태풍도 잦고 비도 많이 왔다. 며칠 전 올 들어 세 번째 태풍이 오기 전날이었다. 주말 친구들과 너무 재미있게 논 탓에 아파서 결국 학교를 빼먹은 아이는 집에나를 리고 있는데 하필 그날따라 퇴근이 늦어졌다. 사실 일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나에게 늦은 퇴은 비일비재하지만 그날만큼은 일찍 퇴근하고 싶었다. 주차장으로 가기 위해 육중한 문을 닫고 한 발 내디디니 비 억수로 왔다. 주차장까지 우산을 쓰고 갔는지 그냥 갔는지조차 기억할 수가 없다. 


시동을 걸고 운전을 해서 집에 대략 반 정도의 거리에 도달했나 보다. 빨간 신호등에 걸려 대기하고 있는데 차에서 요한 소리가 다. 게다가 엔진 등까지 들어왔다. 차가 갑자기 서버리면 어쩌나 불안한 마음을 안고 천천히 운전해서 겨우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했다. 어쩐지 차에서 타는 냄새도 나는 것 같았다. 차에 대해 무지한 나는 보닛도 겨우 열 수 있었다. 하지만 열어 본들 뭐하겠는가? 연기가 나거나 하면 적극적으로 대처를 했을 텐데 특별한 사항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보닛을 닫고 집으로 향했다.


다음날 출근을 하러 주차장에 갔다. 시동을 걸어 보니 차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꼭 시골 농부들이 타는 경운기 소리 같았다. 평소보다 더 천천히 운전해서 직장으로 가기 위해 게이트를 지나는 순간 신분증을 확인시던 경비원께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차는 괜찮아요?"

그래서 나는 멋쩍은 얼굴로 "지금, 카센터에 가져가는 중이에요!"라고 대답했다.

게이트를 무사지나고 카센터로 향하는데 옆에 타고 있던 아이가 천연덕스럽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차에서 레이스카 소리가 나! 냄새도 비슷하고..."

'이렇게 라도 레이스카를 타 보는구나!' 싶었다. 차도 운전도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내가 레이스카를 탈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털털거리는 차를 몰고 카센터로 갔다. 카센터 매니저에게 문제점을 설명했다: 엔진 소리, 타는 냄새, 엔진 등. 그곳에서 고칠 수 있는 데까지 고쳐보겠다고 말씀하셨다.


사무실에 도착하고 얼마 되지 않아 외국인 직장동료한테서 이메일이 와 있었다. 며칠 전 차사고가 났는데 문자 메시지 번역 좀 해 달란다. 그래서 내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잠시 후 동료가 와서 보여준 문자 메시지는 차하고는 상관없는 메시지들이었다. 그리고 사진 한 장과 서류도 보여주었다. 차 후미가 심하게 일그러진 사진과 보험회사 개인정보 처리 동의서였다. 동료의 차를 뒤에서 받은 차량은 어느 회사차였고, 동료에게 렌터카를 주고 동료의 차를 어느 수리점에 가져갔다는 것이다. 나중에 차 수리점으로 전화를 해 보니, 수리비가 차의 가치인 250만 원보다 더 나오기 때문에 보험회사에서 수리를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동료는 차 값을 받고 폐차를 시켜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었다.


동료를 도와주고 그날 업무를 모두 마치고 나는 카센터로 갔다. 다행히 중고 부품으로 엔진에 연결된 플러그며 엔진 점화장치 등을 바꾸셨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는 요란한 소리를 내지 않았다.

중고로 산 차를 벌써 9년째 타고 다닌다. 이 차가 앞으로 얼마나 버텨줄지 모르기 때문에 직장에서 걸어서 30분 거리로 이사를 한 것은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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