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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Nov 01. 2019

체중 감량 선언

산책과 다이어트를 시작한 지 한 달 이후부터 주위에 본격적으로 선언을 하고 다녔다. 한 달 만에 3kg을 감량했고, 지금으로부터 현재의 모습이 나의 가장 우량한 모습이라고. 나는 선천적으로 고집불통이다. 목표한 바가 있으면 꼭 이루고 만다.


아마도 몇 년 전 독하게 마음먹고 도전한 석사학위 취득 경험이 나에게 이런 자신감을 심어 준 것 같다. 그때 19개월이라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기간 동안 나는 죽어라 공부했었다. 직장과 집안일을 병행하면서. 그 이후 내 몸은 많이 망가졌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망가진 몸을 회복하기 위해서 또 나는 독하게 마음먹고 매일 몸과의 전쟁을 하고 있다.


처음 한 달 3kg 감량을 하고 일주일 정도 지난 지금 저울은 큰 변화를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내 몸에서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입는 옷들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고, 음식을 보면 예전처럼 본능적으로 덤비지 않는다. 모델 뺨치게 입맛 까다로운 사춘기 딸내미처럼 나도 뭘 먹기 전에 여러 번 망설인다. '저게 내 몸에 득이 될 것인가? 독이 될 것인가?' 그리고 뛰어나지도 않은 계산능력이 눈 깜짝할 사이에 작동다. 칼로리에 대한 직관적  검열이다.


모든 음식에 대한 칼로리를 꿸 정도 치밀하지도 부지런하지도 않다. 단지 내가 정한 탄수화물 습취량을 초과하지 않기 위해서 순간순간 최선을 다 할 뿐이다. 입맛 까다롭지만 건강한 음식을 챙겨 먹지는 않는 사춘기 딸내미의 고집에 못 이겨 햄버거 같은 걸 먹어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바깥의 빵은 버리고 내용물만 먹는다. 밥을 먹을 땐 집이건 식당이건 한 끼에 반 공기 이상은 먹지 않는다. 되도록 밥은 하에 한 공기로 정하고, 점심은 간단하게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가 엊그제 밤에 까다로운 딸내미의 고집 (이상하게 고집도 유전이 되는 것 같다)에 못 이겨 산책하고 돌아오는 길에 집 앞 분식집에 들러서 딸이 먹고 싶어 하는 오므라이스와 김밥 두 줄을 샀다. 물론 오므라이스 위에 케첩을 포함한 소스는 일체 들어가면 안 된다. 오므라이스 하나만 주문하기 멋적어서 김밥 두 줄을 시켰는데 오므라이스는 딸이 먹고 김밥 반 줄은 내가 먹었다. 운동과 다이어트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저녁 다섯 시 이후에 뭔가를 먹은 것이다. 김밥 반 줄을 저녁 여덟 시라는 늦은 시간에 먹고 자괴감에 빠졌지만 다행히 다음날 아침 체중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나머지 김밥 한 줄 반은 이후 이틀 동안 세끼로 나눠 먹었다.


금요일인 오늘 여느 때 보다 일찍 퇴근을 하고 바로 산책을 하러 나갔다. 평소에는 저녁을 먼저 먹고 운동을 하는데 오늘은 먼저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욕심 내지 않고 평소처럼 5마일만 걷기로 작정했는데 걷다가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산책 코스 끝까지 가고 말았다. 그곳에서 집으로 되돌아오면 9.5 마일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산책 코스 중간에 야시장 오픈 행사를 하고 있어서 구경을 했다.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계속 걸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많고 많은 부스에 딱히 먹고 싶은 것이 없어서 야시장만 쭉 한 바퀴 구경하고 다시 산책을 계속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집 앞에서 양념치킨 한 박스를 샀다. 친구들과 놀러 갔다가 늦게 집에 온 딸내미하고 같이 먹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딸도 나도 키친 한 조각 먹고 질리고 말았다. 그래서 평소처럼 집에서 차린 음식에 밥 반공기로 마무리했다. 이제 내 몸이 스스로 음식조절 능력이 생긴 것 같다. 몸무게가 차이 나게 줄고 있지는 않지만 하루하루 조금씩 목표에 가까워지는 것 같아 기쁘다. 내 몸이 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몸이 한뜻으로 같은 길을 걷고 있어서 좋다. 되도록 빨리 목표를 이루고 싶지만, 행여 오래 걸린다고 해도 꾸준히 목표에 다가가고 싶다. 오늘 하루도 아름다워지기 위해 살았기에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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