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똥꽃 Dec 01. 2019

골목 연극제 후기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해마다 골목 연극제를 한다. 3년 전에 처음으로 우연히 알게 되어 그해 전편 프로모션 패키지를 두  끊어서 남편과 같이 보았다. 작년에도 거의 전편을 다 보았다. 그런데 작년에 <마지막 쇼>라고 기억되는 연극을 보다가 내용이 너무 불편해서 결국은 연극이 끝나기 전에 나오고 말았다. 일본 소설을 토대로 만든 작품이라고 하는데 나로서는 도무지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받아들이기엔 거부감이 너무 많이 들었다. 그 일을 계기로 사실 다시는 골목 연극제를 찾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올해 남편이 하도 같이 연극 보고 싶다고 조르는 바람에 전편 패키지를 두 장 구매했다.


일 때문에 떨어져 있는 남편은 크리스마스 경에 집으로 온다. 그런데 연극제는 총 여섯 편으로 되어 있고 남편이 나와 같이 볼 수 있는 연극은 마지막 한 편뿐이다. 남편이 오기 전에 다섯 편을 봐야 하는데, 나이 제한이 없는 다섯 번째 연극은 딸과 같이 보고 처음 네 편의 연극을 같이 볼 사람을 찾아야 했다. 아는 분들께 부탁을 해서 다행히 처음 두 편을 같이 볼 사람이 생겼다. 내 친구들은 모두 다른 지역에 살고 있고, 주변에는 그나마 연극을 보고 이해할 정도로 한국어가 유창한 사람을 찾기도 쉽지 않다.


나와 첫 번째 연극을 본 사람은 직장을 통해 약간의 친분이 있는 사람이다. 명품 가방을 메고 명품 코트를 입고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보는 사람으로 나보다는 취향이 고급스럽다. 소극장도 소극장 연극도 그다지 즐기지 않지만 나를 위해 억지로 나와 주셨다. 소극장에 들어가기 전에 복도 대기실에서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잠시 기다리다가 약 10분가량 늦게 시작한  연극을 보았다. 기획을 한 사람이 연극의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연극에 나온 사람은 총 네 명이었는데 모두 일인다역이었다. 주제는 <못갱긴 남자>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우리 사회에 너무 보편화된 성형과 성형 후 자신의 얼굴을 상실하고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현대인들의 삶이었지만, 그 속에 동성애의 문제, 외모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 문란한 성생활 등 현대인의 삶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사회 문제들을 그려냈다. 작품 중간중간 보이는 선정적인 장면은 개인적으로 사실은 차라리 없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같이 간 사람도 연극이 너무 선정적이라 문화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올해 연극제의  연극을 보고 밖으로 나와서 가지고 온 우산을 찾려 하니, 하필 우산 통에 투명 우산이 너무 많았다. 똑같은 투명 우산들 중에 어느 것이 내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성형 수술 후에 거리에 자신과 똑 같이 생긴 사람들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던 연극 속의 주인공처럼 내 우산을 찾지 못해서 당황스러워하고 있을 때 어느 기자가 다가와서 연극 후기 인터뷰를 해 달라고 했다. 같이 온 사람은 벌써 자신의 우산을 챙겨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나는 연극 후기 인터뷰를 하느라 안에서 지체하고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같이 연극을 본 사람의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우리는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나누었다. 극 중에 불필요하게 선정적인 부분들 때문에 낯 뜨거웠던 것에 관해 우리는 말 대신에 마주 보고 한참을 깔깔 웃었다. 취향이 고급스러운 그 사람은 그렇지 않아도 별로 즐기지 않는 연극을 다음에는 안 려고 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소극장 연극이 좋다. 배우들의 혼신을 담은 연기를 바로  앞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 배우들이 실수를 해도 그런 인간적인 측면까지 좋다. 공연 중에 배우와 관객이 눈짓으로 손짓으로 소통하는 것이 좋다. 유명한 기획자가 만든 연극이 아니어도 유명한 배우들이 아니어도 좋다. 서민들의 눈으로 그린 세상 사는 이야기를 소극장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대가 너무 화려하지 않고 솔직하기 때문이다. 골목 연극제의 다음 다섯 편의 연극도 기다려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명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