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똥꽃 Dec 07. 2019

감사함

성숙의 측도

사십 대의 우리 부부에게는 대학 다니는 아들과 중학생 딸이 있다. 남편과 아들은 먼 곳에서 일을 하고 학교를 다닌다. 우리는 흔히 알려진 기러기 부부다. 곧 딸의 생일이라 나 혼자 이것저것 준비를 해야 하는데 온라인으로 생일 파티에 필요한 물품들과 겨울왕국 케이크 상품권을 샀다. 딸에게 말했더니 5살짜리한테나 어울리는 케이크이라며 생크림 케이크는 싫다고 불평을 한다. 지난주에만 해도 친구들과 영화관에서 겨울왕국 2를 보고 와 놓고서는 말이다. 주중 쉴 새 없이 일하다 저녁에 운동하고 주말에 취미 생활까지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엄마가 자신의 생일 파티를 챙겨주는 것만 해도 고맙게 생각하지는 못할 망정 투정을 부리고 있으니 저런 애가 정말 내 딸인가 싶다.


남편과 나는 아이들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그동안 잘 돌 봐 왔다고 생각한다. 성장기를 어렵게 보낸 남편과 나와는 달리 아이들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고 있다. 남편도 나도 아이들에게 주기만 주기만 하다가 가끔씩 아이들이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을 때나 고맙다고 느끼지 못할 때 실망스럽다. 사실 여태껏 두 아이들에게 투자한 시간, 돈, 에너지를 우리 부부에게 썼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지금쯤 모은 돈으로 건물주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아이들은 태어났고 우리 부부는 양육의 의무를 다 해야 한다. 아이들 학자금도 모으고 있어서 아마도 대학까지는 무난히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부부가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서 유년기와 청년기에 했던 고생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나 자신을 돌아봐도 철이 없었을 때 내가 못 가진 것과 남이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이 컸다. 나에게 빚진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말이다. 없이 자란 우리 형제들은 모두 그런 마음을 조금씩 갖고 있기 때문에 가족들이 만나는 것도 그다지 유쾌하거나 반갑지 않다. 그런데 비단 우리 가족뿐만이 아니라 주위의 다른 가족들도 부모 자식 또는 형제간에 돈 문제로 금이 간 사람들이 종종 있다. 대부분 본인이 필요할 때 가족들이 돈을 빌려주지 않아서이다. 이렇게 내가 뭔가 필요할 때 가족이나 형제가 나를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사실은 참 미숙한 생각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성인이 된 후에도, 심지어 결혼을 한 이후에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다시 감사함이라는 주제로  돌아와서, 가족이나 형제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그건 참 감사한 일이고 만일 그렇지 못다면 너무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성숙된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제 대학생이 된 아들과 중학교를 다니는 딸에게 그런 것을 바란다는 것 자체가 어쩜 너무 빠른 것인지 모르겠다. 감사함이 교육으로 되는 것인지 아니면 본인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누가 나에게 뭔가를 베풀어야 할 의무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남이 나에게 해주지 않아서 서운했던 마음은 없어지고 반대로 남이 나에게 보낸 작은 친절에도 감사하게 된다. 내가 스친 수많은 인연들과 그 속에서 나에게 크고 작은 깨달음을 준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특히 나에게 친절을 베푼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감사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골목 연극제 후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