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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Dec 22. 2019

기러기 부부 상봉 하루 전

내일 오후 인천에 도착하는 남편과 아들 맞이 준비를 하느라 하루 종일 바쁘게 지냈다. 먼저 창고로 쓰고 있는 방 하나를 아들이 머무는 동안 쓸 수 있게끔 정리를 해야 했다. 잡다한 물건들을 베란다로 옮기기 위해 베란다에 있던 크리스마스트리는 거실에 갖다 두고 여름에 깔끔하게 씻어둔 화분들은 사진을 찍어 중고 사이트에 무료 나눔으로 등록을 했다. 무료 나눔이 등록되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연락이 왔다. 맨 처음 연락 주신 분을 위해 <예약 중>이라고 해 두어도 계속해서 연락이 왔다. 새삼 알뜰하신 분들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리고 있는 개를 입양시키고 식물을 키우고 싶어 화분들을 베란다에 쌓아 뒀는데 개를 입양시키는 것이 쉽지 않아서 식물은 당분간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전에 키우던 식물들을 개가 모조리 다 먹어버렸기 때문에 다른 식물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 뻔하다.


빨래는 또 얼마나 많은지... 이불 빨래만 세탁기 세 번을 돌려야 했다. 겨울 이불이다 보니 부피가 너무 많이 나갔다. 종일 방 치우기, 빨래, 설거지, 실 청소 등으로 바쁘게 보냈다. 지난주 남해에서 직접 부쳐준 시금치를 다용도 실에 방치해 뒀는데  마침내 상자 열어서 시금치를 깔끔하게 씻었다. 시금치가 너무 커서 꼭 밭에서 나온 문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꼬리 곰탕을 만들 때나 가끔 쓰는 대형 솥을 꺼내서 시금치를 전부 데쳤다. 큰 뿌리가 달린 시금치가 아무 양념 없이 그냥 먹어도 정말 맛있었다. 살짝 데친 시금치를 반찬통 세 통 담고도 남아서 남은 것은 다 먹어버렸다. 양념도 안 한 시금치만 먹었는데 배가 너무 불렀다. 아이에게 시금치 두 개를 겨우 먹였다.


삼일 째 운동을 쉬었는데 도무지 쉴 수가 없어서 오늘은 다시 시작했다. 훌라후프를 40분 하고, 브런치 어떤 작가가 소개해 준 운동 비디오를 보고 다리 운동을 했다. 주중에 그 운동을 따라 한  며칠째 다리가 너무 아팠다. 오늘은 상태가 좀 나아진 것 같아 다시 도전해 본 것이다. 운동을 며칠 쉬었는데도 직장에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은 탓인지 그렇게 안 빠지던 몸무게가 약간의 차도를 보였다. 배도 조금 더 단단해진 느낌이다. 운동을 마치고 안방 탁자 위에 쌓아둔 물건 정리를 하다가 지난주에 딸이 자신이 받은 생일 선물 중에 나에게 준 XS 바지 한 벌을 <안 맞으면 그만이다>라는 심정으로 한 번 입어 보았다. 약간 조이긴 했지만 장딴지와 무릎 그리고 허벅지를 지나 엉덩이까지 다 통과했다. 세상에! 내가 XS사이즈를 입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조금씩 희망이 보였다. 살 빠지는 속도가 느리더라도 이렇게 계속 다면 50킬로 이하도 가능할 것 같았다. 어쩌면 나도 44 사이즈를 입게 될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가려면 앞으로 한참 더 걸릴 것이다.) 일단은 50킬로에 55 사이즈로 목표를 정했다.


일요일 저녁이지만 다음날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2주간 온 가족이 휴식 같은 시간을 보낼 것이다.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익숙한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기는 참 힘들기 때문이다. 내가 직장에서 시달리다 보면 일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지 못하듯이 말이다.


남편과 아들이 집에 오면 처음 일주일 간은 여기저기 공연과 연극 등을 보러 바쁘게 다닐 것이다. 그리고 매일 운동도 할 계획인데, 얼마나 실현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좀 전에 첫 비행기 출발이 늦어진다 남편연락을 받고 급한 마음에 평소에 잘 안 하는 기도도 했다. 남편과 아들이 무사히 정해진 시간에 잘 도착하길 바란다. 함께 보낼 2주간의 계획은 그다음에 걱정해도 될 것 같다. 때마침 빨래 건조기도 멈췄다. 저녁 아홉 시, 이제 집 정리는 그만 하고 자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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