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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Dec 22. 2019

특별한 토요일

금요일 너무 힘든 하루를 보내고 늦게 잠들었지만 습관대로 토요일 새벽 여섯 시 이전에 잠이 깨고 말았다. 아침나절에 남편과 영상 통화를 세 번씩이나 하고 어느새 정오가 지났지만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가 너무 힘겨웠다. 주말이라 이것저것 해야 할 집안일은 많은데,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다. 탑처럼 포개져 있는 그릇들을 먼저 씻고, 샤워를 했다. 그리고 난 다음 양념 치킨을 시켜먹었다. 음악 공연과 연극에 아이를 데려가기 위해 아이의 비위를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오래된 맨션을 예술 공간으로 바꾼 곳에서 네 시에 음악 공연이 있다. 공연 장소에 도착하니 의자가 아홉 개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공연에 필요한 의자이니 사용하거나 옮기지 말라는 안내문이 적혀있었다. 관객을 위한 의자는 없었고, 의자가 없는 관람이 그날 실험 연주의 가장 실험적인 부분이라는 것을 공연이 마친 이후에 깨닫게 되었다. 이번 공연은 해금 삼중주 실험곡인데 곡과 마지막 곡은 익숙한 멜로디와 연주기법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듣기가 편했다. 하지만 중간 곡은 지난주처럼 해금을 괴롭히는 듯한 소리와 연주법이 그다지 내 귀에 즐겁지는 않았다. 그런데 오른쪽 구석에 있던 아이 하나가 그 불편한 음에 맞춰 자연스레 몸을 들썩거리고 있어서 속으로 '저 애는 음악 천재이거나 영혼이 참 맑은 아이일 거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맘이 편해졌다. 연주가 끝나고 해금 연주자들이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니 아까 그 아이가 중간에 있던 연주자에게 "엄마!" 하며 달려갔다. 그제야 아까 그 아이가 음악 소리에 그렇게 자연스럽게 반응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다음 연극 공연이 시작하기까지는 두 시간 반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시내에 가고 싶다는 아이를 데리고 지상철도에서 지하철로 갈아탔다. 먼저 피자 가게에서 오븐 스파게티를 시켜먹고 (이 또한 입맛이 까다로운 아이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나의 적극적 노력이었다), 서점에 들러서 책을 한 권 샀다. 소극장으로 가려면 다시 지하철에서 지상철로 갈아타야 했는데 토요일 저녁이라 사람들이 많고 복잡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조금 먼저 가겠다고 아이와 나를 자꾸 밀었다. 특히 마른 축에 속하는 아이는 계속 밀려서 괴로워했다. 차라리 거리를 걷는 게 나을 뻔했다. 복잡한 역 속을 걷다가 아이가 지하철역에 왜 젊은 사람들보다 나이 든 사람들 더 많은지 궁금해했다. 나는 의술 발달로 늘어난 평균 수명과 출산율 저하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그리고 보니 정말 60대 이상의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아마도 경로 우대 활인권 때문에 지하철을 이용하는 노인 인구가 많 것 같. 실망스럽게도 우리가 오늘 지하철에서 만난 대부분의 노인들은 굉장히 무례했다. 지하철 바닥에 침을 뱉고, 남의 얼굴에 기침을 해대고, 사람을 이리저리 밀치고 다니고, 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이 내리기전에 겠다고 혼잡을 일으키고, 의자에 앉아서는 남의 얼굴을 빤히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나는 조부모님들이 모두 돌아가시고 태어났기 때문에 조부모님들에 한 기억이나 추억이 없어서 그런 건지 노인이 그다지 편하지 않다. 지하철 역에서 아이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도 짧은 파마머리에 남을 이리저리 밀치고 다니면 그때부터 할머니가 되는 거예요!"


우리가 소극장 근처에 도착했을 때는 연극 시작하기까지 대략 30분 정도 남아 있었다. 차가운 벤치에 앉아 기다리기 싫어서 아이와 같이 커피숍에 갔다. 레몬차와 유자차를 각각 마시고 우리는 소극장에 들어갔다. 중간쯤에 자리를 잡고 아이에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소설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베르테르는 다른 남자의 약혼녀와 사랑에 빠져서 그녀가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후에도 그녀를 잊지 못해 괴로워하다가 결국 자살을 하는 비극의 주인공이다. 무거운 이야기를 가볍게 풀어 보려고 가끔씩 배우들이 농담을 섞었다. 베르테르와 로테가 정원에서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로테가 "개구리들이 굉장히 많아요! 모두 우리를 빤히 보고 있어요!"라고 말했는데 아이와 나는 웃음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 (배우들을 뚫어지게 보고 있던 관객들이 한순간에 개구리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했지만 진한 감동은 없었다. 아무래도 극 중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한 내레이션과 무리하게 개입시킨 희극적 요소들의 부작용인 것 같다. 내레이션이 아예 없었거나 아니면 다른 배우 한 이 내레이션을 전담하고 일인 일역으로 좀 더 진지하게 이야기를 어갔으면 더 큰 감동을 지 않았을까 싶다.


연극이 끝나고 소극장을 나와 편의점에 들러 호빵을 하나 샀다. 호빵을 살 때는 집게를 이용해서 호빵 통 옆에 있는 종이에 호빵을 야 된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하고 집게에 호빵을 든 채로 카운트로 가져가는 실수를 했다.  그것 때문에 아이랑 또 한참을 웃었는데, 편의점을 나와서 아이가 이렇게 말다. "엄마, 나는 엄마가 매일 걱정이 돼요! 특히 산책하러 가면 '집을 찾아올 수 있을까?' 생각해요." 내가 길치임을 잘 알고 있는 아이는 그런 걱정을 하고 있었 보다. 아이와 께한 토요일 저녁은 나름대로 즐거웠다. 아이는 좋아하는 만화책을 산 것이 가장 신나는 일이었다지만, 나는 아이와 공연과 연극을 본 것이 정말 좋았다. 지금은 아이가 그다지 즐거워하지는 않지만 나중에 아이에게 특별한 추거리로 면 좋겠다. 기억이라는 것도 일정 부분 왜곡되니까, 아이가 토요일 저녁 엄마의 강요에 의해 공연과 연극을 본 것이 얼마나 괴로웠는지는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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