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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Jan 19. 2020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

황금 같은 삼일 연휴가 시작되고 첫날이었다. 딸과 영화를 보려고 했는데, 앱으로 검색을 해보니 마땅히 볼만한 영화가 없었다. 딸에게 타 도시에 기차를 타고 가자고 하니 싫단다. 그래서 결국 아무 데도 못 가고 방콕을 하게 되었다. 하루 종일 먹고 따뜻한 나무 바닥에 강아지와 드러누워 뒹굴고 티브이를 보다가 죄책감에 잠시 운동도 했다.


리모컨으로 음악쇼와 드라마를 오가며 봤는데 평소 노래를 좋아하는 나는 노래 경연을 즐겨 본다. 주중에 본방사수를 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티브이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재방송을 보는 정도이다. 작년 <미스 트롯>에서 송가인이라는 거물이 탄생된 후, <미스트 트롯>이라는 음악쇼에서 남자들의 경연을 보는 재미 또한 만만치 않다. 트롯은 사십 대에게도 사실 익숙한 장르는 아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트롯을 즐겨 들은 정말 특별한 케이스다. 최근의 음악 시장 다양화를 위한 시도는 바람직한 사회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트롯 활성화 또한 노령화 현상의 부산물지 모른다. 지난번 티브이에서 경제 전문가가 나와서 58년생들이 시장에서 얼마나 매력적인 그룹인지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그들의 만 나이는 62세로 정년퇴직을 코앞에 둔 또는 한 사람들이다. 이제 굳이 현역으로 뛰지 않아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보이스 퀸>이라는 쇼도 관심 있게 보게 되었는데,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 간 로비 음악회에서 메인 보컬리스트였던 재즈 싱어가 자신이 출연 중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가끔씩 재방을 보기 때문에 사실  프로그램이 언제 시작했는지, 아직 방영 중인지, 언제 끝나는지 잘 알지 못해 마음에 드는 프로그램은 기본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해야 하기 일수다. <보이스 퀸>에서 내가 유심히 본 사람은 퓨전국악인 조엘라다. 그녀의 국악 창법이 짙은 가요는 첫 소절부터 내 심장을 쿵! 하고 떨어뜨린다. 두 소절을 들으면 두뇌가 정지되고 반 정도 들으면 눈물이 나고 다 듣고 나면 어느새 나는 만신창이가 된다. 그녀가 부른 노래들 중에서 특히 <님>이라는 노래는 어린 시절 아주 인상적으로 들었던 노래로 어쩐지 모르게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 노래를 처음 들었던 것은 김수희가 불렀을 때였다. 원곡자 김정호는 사실 누구인지도 모른다. 조용필이 부른 것도 티브에서 본 것 같고 인터넷으로 보니 나훈아가 부른 영상도 있다.


음악쇼 중간중간에 연이은 드라마 재방을 보았는데 <사랑의 불시착>이라는 북한 고위 공직자 군인 장교 아들과 남한 대기업 딸 기업인의 비현실적이고 실현 불가능한 러브 스토리다. 드라마의 중간부터 보기 시작해서 어젯밤 처음으로 본방을 보았다. 드라마를 보고 주연 배우에게 빠지는 나는 영락없는 아줌마다. 현빈이라는 배우를 처음 알게 되었고, 검색해보니 열애 이력이 화려했다. 사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런 드라마가 있는지 그런 배우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살았으니, 나의 무관심은 경악스러울 정도다.


음악쇼와 드라마로 보낸 하루는 그다지 생산적이지는 않았지만 나름 만족스러웠다. 가끔씩 아주 게으르게, 아무 생각 없이 하루를 보내는 것도 바람직스럽다고 생각한다. 노래는 나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고 드라마는 나의 현실과 이상을 화해시킨다. 세상에서 제일 슬픈 노래를 듣고 또 듣고 한 부작용이 있긴 했지만 그 또한 나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조엘라가 부른 <님>과 <님은 먼 곳에>를 다른 사람들도 꼭 들어 보았으면 좋겠고, 그녀가 <보이스 퀸>에서 우승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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