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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Jan 18. 2020

가장 의미 있는 생일 선물

주간 휴가를 왔던 남편이 다시 출국 비행기를 타기 전날 저녁이었다. 나는 직장에서 고단한 하루 일과가 끝나기 무섭게 집으로 돌아왔다. 이틀 전에 약속을 잡아 둔 곳으로 남편과 같이 가기 위해서였다. 겨울 해가 짧은 관계로  분이라도 목적지에 빨리 다녀오려고 이틀 전에 예약을 해 두었던 운전기사 통화를 해 보았더니 하필 오늘 원거리 다녀오는 길이라 빨리는커녕 약속 시간도 겨우 맞출 것 같다고 했다.


약속 장소에 십 분가량 일찍 도착했더니, 빨간 X자가 적힌 건물들 사이에 우리를 남겨두고 택시는 떠났다. 그곳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에게 전화를 했더니 오르막 위에 있는 집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남자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철거기에는 아까운 지은 지 얼마 되어 보이지 않는 집이었다. 집안으로 들어가자 거실에 쌓아 놓은 물건들이 가득했다. 남자는 우리에게 장롱들을 보여주었다. 안방에 있는 옅은 갈색 짝이었다. 먼저 장롱 상태를 확인하고 남자에게 돈을 건넸다. 상태는 비교적 양호했다. 옷 벌레 방지를 위해 장롱에 걸어 두었던 좀약 때문에 냄새가 지독했다. 남자는 처분해야 하는 다른 장롱들도 보여주었다. 다른 방에 놓여 있는 흰 농짝 하나가 튼튼해 보였다. 하지만 장롱을 싣고 갈 트럭이 얼나 큰지를 모르기 때문에 일단 트럭에 들어가는지 확인 후에 구매 결정을 겠다고 말했다.


약속 시간보다 십여 분이 흐른 후에 트럭 운전사가 도착했다. 트럭 운전기사는 먼저 화장실을 사용하겠다고 집주인에게 양해를 구했다. 트럭 운전기사에게 내가 장롱을 하나 더 실을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들어간다며 나에게 넌저시 운송비 더 달라고 말했다. 장롱이 있던 방문과 중문 그리고 현관문 입구가 모두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무겁고 긴 장롱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남편과 트럭 기사가 장롱을 한 끝에서 각각 잡았지만 중간중간 집주인과 나도 거들었다. 현관문에서 대문까지도 비좁았다. 게다가 좁은 골목은 내리막 길이었다. 그렇게 곡예하듯 장롱을 옮기는데 집주인은 사람이 살지도 않는 집에 굳이 신을 벗고 거실로 들어오게 했다. 무거운 가구를 든 채 신발을 신고 벗기가 여간 번거롭고 힘 일이 아니었다. 고집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나지만 살아가면서 융통성이라는 것이 참 필요한 때가 있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가까스로 가구 네 짝을 철거가 예정된 집에서 꺼내 트럭에 옮겨 싣고 트럭 앞에 올라 트럭기사와 남편 사이에 끼어 앉았다. 그 시 그곳에서 택시를 잡는 것 힘든 데다가 트럭과 같은 시우리 집에 도착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집에 도착해서 또 장롱을 한 짝씩 옮겨야 했다. 첫 장롱을 가지고 집안으로 들어갔다니 파티 장식을 하는 테이프가 벽에 걸려 있고 이리저리 풍선이 나뒹굴고 있었다. '이게 뭐지?' 생각하며 일단 장롱을 옮기기 위해 옷방으로 꾸밀 방 문에 있는 잡다한 것을 치웠다. 두 번째 장롱부터는 아들도 함께 내려가 옮기는 것을 도왔다. 아들이 작년에 무릎 수술을 받아서 가구를 옮기는데 그다지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다행히 우리 집으로 옮길 때는 엘리베이터가 있어서 힘이 덜 들었다. 장롱을 모두 옮긴 후에 트럭 운전사는 처음에 약속한 금액 160프로를 요구했다. 장롱 한 짝 추가 금액 치고는 약간 비싼 느낌이 있지만 저녁시간에 힘들게 고생한 것을 생각해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기분 좋게 대금치렀다. 


트럭 기사가 떠난 후 장롱을 놓을 곳을 배치하려고 하는데 남편이 생일 파티를 먼저 해야 한다고 했다. 내 생일날은 아직 며칠 더 남아 있었고 예정에도 없는 생일 파티를 그것도 중대한 일을 하다 말고 한다니 내심 짜증스럽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남편에게 생화인지 조화인지 알 수 없는 꽃을 전해 받고, 케이크에 불을 끄고, 카드를 읽고, 선물을 열고,  생일 파티에 필요한 의식을 다 치렀다. 때마침 중국집에 시켜둔 음식이 도착해 늦은 저녁먹고 난 후 다시 장롱 배치에 들어갔다. 옷방으로 쓰려고 정한 작은 방 한쪽 벽면 장롱 세 짝이 다 들어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두 짝은 한쪽 벽면 그리고 나머지 한 짝은 다른 벽면에 붙여야 했다. 한 짝만 따로 가지고 온 장롱은 안방에 놓았다. 안방에 있는 붙박이 장롱과 놀랍게도 잘 어울렸다. 장롱 배치가 끝나고 장롱 안팎 청소를 한번 싹 한 후에 빠르게 옷 정리에 들어갔다. 늦게지 정리를 하고 샤워 후에 잠자리에 든 시각은 이미 자정이었다. 다음날 나는 평소처럼 일을 하러 갔고 남편은 출국을 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벌써 10일이 지났다. 들여온 장롱 덕분에 집은 비교적 잘 정리가 되어 공간이 더 넓어진 느낌이다. 예전에 옷장 대신 썼던 책장은 잉여 생필품을 정리해서 넣었다. 9년 전 한국에 나왔을 때 넓은 아파트에 쓰지 않는 냉장고들을 바라보며 집에 냉장고가 네 개나 된다 사실에 내심 흡족했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그에 비해 반 정도의 크기밖에 안 되고 냉장고도 두 개밖에 없다. 하지만 이제 나 혼자만의 옷장이 다섯 개나 있어서 다시 부자가 된 기분이다. 아직도 옷장에서 좀약 냄새가 나서 시간이 날 때마다 환기를 시켜야 하고 옮겨 올 때 여기저기 긁힌 상처가 선연해서 누가 봐도  중고 티가 팍팍 난다. 하지만 남편이 출국하지 전날 마다하지 않고 옮겨다 준 중고 옷장은 내가 받아 본 생일 선물 중에 가장 의미 있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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