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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Jan 25. 2020

명절 층간소음

내가 한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돼서 <명절에 층간 소음 때문에 이웃들이 다툰 끝에 칼부림이 나서 한 명이 죽었다>는 뉴스 보도를 들은 적이 있다. 명절 이외에도 간 소음이 불러온 끔찍한 사건들에 대해 종종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아래층에 소음 피해를 줄이려고 각별히 조심하고 또 윗집에서 소음이 나도 웬만하면 불평을 할 수가 없었다. 처음 7년간은 꽤나 넓은 아파트에서 살았다. 이 집으로 이사 오기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소음 때문에 경비실에 연락한 적이 한번 있었다. 얼마 후 어떤 할아버지와 젊은 여자가 현관문 앞으로 찾아왔다. 윗집 할아버지가 보자기에 싼 과일 상자를 건네며 일본에 사는 딸이 몇 달간 방문 중인데 어린 손자들이 있다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알겠다고 말했는데 그 이후로도 소음은 계속되었고 그 과일 상자를 괜히 받았다고 후회했던 적이 있다.


재작년 여름 이 아파트로 처음 왔을 때, 견딜 수 없는 소음에 시달리게 된 것은 이사 온 지 겨우 한 달 정도 되었을 때였다. 천장에서 아이들이 달리는 소리, 또 가구를 질질 끄는 소리, 망치로 바닥 두드리는 소리가 처음 시작된 건 어느 날 저녁 6시 정도였다. 그리고 소음은 자정이 되도록 멈추지 않았다. 결국 나는 참다경비실에 연락을 했다. 윗집에서 제사를 지낸다고 시끄러웠다고 했다. '경건하게 지내야 할 제사를 왜 저렇게 요란하게 지내나?' 생각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소음은 종종 심하게 들렸고, 나는 경비실에 몇 번 연락을 더 했다. 그리고 이사 온 지 만으로 일 년가량 된 작년 여름, 아파트 상의 다른 문제 때문에 윗집 사람을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육십은 넘어 보는 윗집 아저씨가 그간 소음에 대해, 일 년에 제사를 여러 번 지내는데 그때마다 자신의 집에 서른 명 이상이 찾아온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 작은 아파트에 한 사람씩 앉을 공간도 없을 텐데 거기서 어떻게 뛰어다니고, 쉴 새 없이 움직이고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윗집 남자는 출가한 자식들이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온다고 아주 만족스럽게  말했다.


명절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 밤, 소음은 이른 저녁부터 났다. 나는 설이고 추석이고 다 일을 하는 직업이다 보니, 평소와 똑같은 날이라 다음날 출근 시간을 지키려면 저녁에 피로를 풀고 푹 자야 한다.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제자리에서 쿵쿵 뛰고, 바닥에 뭔가를 긁고, 두드리고, 그런 소음을 삼십 분만 들어도 미칠 지경일 텐데 저 윗 집구석은 한두 시간도 아니고 늦은 저녁에도 계속해서 낸다. 참다 참다 인내력에 바닥이 나서 경비실로 전화를 해 하소연한다:

"윗집 소음 때문에 미칠 것 같아요. 사는 게 너무 괴로워요. 조치를 좀 취해 주세요!"

어제는 한마디 더 붙였다:

"지금 몇 시간째 소음이 계속되는데, 누가 우리 집으로 오셔서 한 번 들어 보세요!"

그랬더니 경비실에서 하는 말이, 그건 관리 사무실로 연락해야 된단다. 그리고 관리 사무소에서는 전화를 받지 않다.


명절 연휴 첫날 일을 마치고 집에 오니 또 소음과의 전쟁이다. 저녁 6시가 되기 전, 소음에 견디다 못해

아이에게 강아지를 방에 잘 데리고 있게 하고 위층으로 향했다. 그 집 현관문 앞에 가니 바글거리는 사람들 소리가 들렸다. 애들 소리도 들렸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들은 가족 친지끼리 저렇게 같이 떠들고 노는 것이 마냥 즐겁기만 할 거야'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냥 내려왔다. 그리고 윗집에서 내는 소음은 계속되었고, 자꾸 내 입에서 거친 말들이 튀어나왔다. 결국 아이에게 또 강아지 단속을 시키고 위층으로 올라가서 초인종을 눌렀다. 그 집 안주인과 아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왔다. 소음 때문에 왔다고 말하려던 차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 집주인 아저씨가 내렸다. 그래서 내가 거기 간 이유를 말했다:

"아래층 사람인데 위층에서 나는 소음 때문에 정말 괴로워 살 수가 없네요. 애들이 왜 그렇게 집에서 뛰어다니나요? 저희 집으로 내려오셔서 위에서 어떤 소리가 나는지 한번 들어 보세요!"

아무도 선뜻 나서질 않았다. 그 집 아들은 생활 소음인데 어떡하냐고, 배 째라는 식이다. 전에 마누라한테 고래고래 고함지르던 그*이 분명하다. 안주인은 자신의 집이 아니라 자신들 위층에서 나는 소리라고 했다. 나는 되물었다. "그 집 윗 층에서 내는 소음이 우리 집 천장에서 난다고요?"그리고 그 집 바깥 주인은 오늘은 명절이라 어쩔 수 없다고 너무 당당하게 말했다. 나는 그 집에서 내는 소음 때문에 티브이 보려면 볼륨을 크게 높여야 하고, 어떤 때는 우리 집 개가 놀라서 짖기도 한다고 했다. 그 집 소음 때문에 불필요한 차 소음이 발생하는 거다. 그리고 덧붙였다:

"참을 인자 세 번이면 살인을 면한다고 해서 몇 번을 참고 또 참다가 말하는 거예요. 정초부터 이웃한테 이렇게 불평하고 싶지 않아요. 애들 뛰는 거라도 좀 못하게 해 주세요" 그랬더니 윗집 내외가 하는 말, "오늘 또 유난스러운 놈이 하나 와있어서, 사촌인데, 쉽지 않을 거예요. 단속시키는데 애들이 말을 안 들어요! 일단 알겠어요."

그러고 내려왔더니 용기 내서 말한 것이 무색하게 고요가 지속된 시간은  분도 채 안 되었다.  또 뛰고 솟고 난리굿이다. 윗집 **들에 비하면 우리 집 개는 양반인 셈이다. 개한테 못할 욕인 거 같아서 개**라는 욕도 아깝다. 여기 살지도 않는 사람들이 와서 애**들 뛰어다니게 내버려 두면서 생활 소음이라는 뻔뻔스러운 아들과 자기 집 위층에서 나는 소음이 우리 집 천장에 들린다 억지를 쓰는 어미와 명절 연휴 내내 나보고 그냥 견뎌라는 양심 없는 애비다. 손바닥만 한 아파트에 서른 명 이상 초대하는 얼빠진 인간들이니 오죽하겠는가? 명절에 층간 소음 때문에 칼림 나는 게 남의 일 같지 않다. 결국 다이어트는 포기하고 김치전을 만들어서 안주로 곁들여 와인을 꽉꽉 눌러 담아 마셨다. 그렇게라도 안 하면 정말 돌아버릴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또 소음과의 동거는 시작되었다. 관리실에 전화를 해서 아파트 소음 관련 방침에 대해 물었다. 평일 아파트 소장 근무시간에 다시 연락하란다. 그리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지만 그분 <... 결국 아래층에서 이사를 가더라!>라고 말했다. 나는 이 집 대출금을 갚기 위해 명절까지 일하는데, 내가 내 집에서 편안히 쉴 수 없는 현실이 너무 억울하다. 윗집 사람들은 명절뿐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사돈에 팔촌까지 불러 저 난리굿을 하며 나에게 스트레스를 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가슴에 참을 인자를 새겨야 한다. 앞으로 남은 명절 연휴 삼일... 남은 포도주 반 병... 명절은 나에게 살생 본능을 깨닫게 하고 알코올 의존성을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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