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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Sep 27. 2020

집에서 맞는 마지막 아침

재택근무를 마치며

내일은 재택근무를 마치고 정상 출근을 하는 날이라서 아침에 분주히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서야 한다. 그리고 다음 주말이나 되어야 집에서 다시 아침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어젯밤에 언제 폭력적인 소음이 있었냐는 듯이 고요한 아침이다. 햇살은 눈부시도록 밝게 비치고 활짝 열어둔 침실과 베란다 사이의 문으로 국화꽃과 나팔꽃이 보인다. 베란다에 꽃밭을 만든 직후에는 꽃내음이 많이 났었는데, 요즘 스트레스로 둔감해진 후각 때문인지 꽃냄새가 나지 않는다. 찐한 국화꽃 향기를 맡고 싶다. 이 계절을 느끼고 싶다. 얼마나 많은 국화꽃 화분을 곁에 두면 꽃내음에 취할 수 있을까? 다시 꽃 주문을 해야겠다.


내일 출근을 하려옷을 차려입고, 화장을 하고, 집을 나서는 번거로움을 겪어야 한다. 다시 아침 알림을 여러 개 맞춰야 한다. 일어나는 시간과 옷 갈아입는 시간 그리고 집을 나서는 시간까지 총 세 개의 알람이 필요하다. 재택근무를 할 때는 아침에 준비하는 시간, 출퇴근 운전 시간, 그리고 퇴근 후의 개인 시간까지 다 근무 시간의 연장이었다. 이제 원상 복귀된 스케줄로 근무 외 시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한국에서 남은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는 느낌이 든다. 내가 태어난 도시에서 13년을 살았고, 지금 이도시에서는 10년째 살고 있다. 일 때문에 체류하고 있는 이 도시는 내 인생에서 두 번째로 오래 산 곳이다. 이런 곳에다 아파트를 사다니 참 미련한 선택이었다. 앞으로 일 년은 꼼짝없이 버텨야 한다. 은행 채무관계를 깔끔히 정리하려면 최소한 일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한국에서 얼마나 더 오래 있을지 결정해야 한다. 우리 가정의 경제를 생각하면 앞으로 최소 5년은 일을 더 해야 하지만 내 정신 건강을 생각하면 최대한 빨리 한국을 떠나야 한다. 한 곳에 너무 오래 머물렀고 나의 인내심에 바닥이 났기  때문이다. 한국에 더 오래 머물기 위해 아파트를 샀는데, 이 아파트 때문에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줄이야. 새옹지마. 인생은 끝없는 반전의 연속이다.


남편은 최근 MBA를 마쳤다. 내가 한국에 온 이후로 시작한 프로그램을 두어 과목 남겨둔 채 여태껏 끝내지 않고 있길래, 작년에 한마디 했더니 올해 드디어 끝을 보았다. 그리고 남편 승진 결정도 곧 날 것이다. 이제는 남편에게 가정 경제를 혼자 책임지게 하고, 나는 새들의 지저귐과 꽃향기 속에 영영 묻혀서 살까? 남편의 월급만으로 중산계층을 유지하긴 힘들 테지만 소시민의 생활은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이런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의 연속일까? 온갖 새들의 지저귐과 숱한 꽃향기에도 싫증이 나는 날이 올까? 혹시 배 고픈 날이 오면 어쩌지? 일할 수 있는 지금이 그리워지면 어쩌지? 지금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겠다. 소음에 지친 것인지, 일에 지친 것인지, 아니면 모든 일에 싫증이 난 것인지.


처음부터 정원사가 되었더라면 참 좋았을 걸 그랬다. 그러면 지치지 않고 평생 일할 수 있었을 것을. 왜 나는 나의 적성을 이렇게 늦게 알았을까? 경찰이 되겠다는 아들과 배우가 되겠다는 딸에게 정원사나 파크레인저나 수의사나 회계사가 되는 것은 어떻겠냐고 물었었다. 하하하... 그림을 좋아하는 딸에게 어렸을 때는 관심도 없는 악기를 여러 개 가르쳤었다. 딸이 악기를 하나도 제대로 못 배운 건 너무도 뻔한 결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아이들에게 엉뚱한 제안을 한다. 아이들은 언젠가 본인이 하고 싶은 직업을 선택할 것이고 단지 그것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이길 바랄 뿐이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을 보내고 있다. 다음 주 출근하면서 입을 옷가지도 챙겨둬야 하고, 여권 서류도 해야 하고, 일주일간 먹을 식료품도 장만해야 하지만, 게으른 몸은 그냥 침대에 앉아 창 너머 하늘을 바라보며 온갖 새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다. 고요한 이 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다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Reality check: 윗집과는 아무래도 공존이 어려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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