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를 한 지 한 달 그리고 이틀.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니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매일 똑같은 하루하루.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일을 시작해서 잠이 들 때까지 일을 하는 미련한 생활을 계속하다가, 이틀 전 문뜩 제정신이 들었다. 이렇게 몸을 혹사시키다간 코로나가 아니라 과로로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몇 년 전 뼈저리게 깨달은 조직의 생리를 또 잊어버리고 온 몸을 불태워 일하는 나는 한심하기 짝이 없다. 어차피 조직 속의 개인은 큰 기계 속에 쉽게 교체 가능한 작은 부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조직을 위해 생존을 위해 면역력을 길러야 하는 이 시점에 나는 또 내 한 몸 아끼지 않고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피곤해서 쓰러져 잘 때까지 일하고 눈 뜨자마자 또 일하고. 게다가 최소한의 운동마저 그만두고 부실한 식단에 수면부족까지 겹쳐서 온몸은 몸살에 걸린 듯 아팠다.
삼일전 이른 새벽에 눈을 뜨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결심을 하고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물론 미국에서 두루마리 화장지보다 구하기 힘든 마스크를 쓰고 말이다. 아파트 단지를 나와 아직 날이 밝지 않은 거리를 안전하게 걷기 위해 지름길은 마다하고 가로등이 켜진 큰길을 따라 걸었다. 매사에 조심스러운 나는 항상 최악의 가능성을 고려해서 마치 어느 순간이든 내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길을 나선다. 최소한의 소지품인 휴대폰을 지니고 가면서도 신분증을 두 개나 넣었다.
살기 위해서 운동을 하러 간 것이다. 집 안에 있기를 꼬박 한 달. 좁은 탁자 앞에 앉아 하루 절 반 이상을 어깨를 움츠리고 일을 하는 그런 생활에 변화를 주지 않으면 어느 날 내가 소리 없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며칠 전 신입 쿠팡맨이 과로에 지쳐서 죽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내가 사는 곳이 중국의 우한처럼 감염자가 많이 나온 곳이다 보니 계속 <집 안에 있어라>라고 세뇌를 당한다. 아니 외부와의 절대적 단절을 요구받고 있다. 지난 한 달간 내가 간 곳이라고는 회의 참석을 위해 직장 몇 번 들른 것, 지정된 곳에서 생필품 구입, 동물병원에서 강아지 약 구입, 그리고 몇 주전 강가에 산책하러 나간 것이 전부다.
대략 이 주 전인가 오후에 강가에 산책을 갔다가 숱하게 늘린 사람들을 보고 현기증이 났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6피트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레이저 망을 통과하듯 디딤돌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서 강을 건너 사람들 하나 없는 강둑에 앉아 멍하니 있다가 집으로 되돌아왔었다. 물론 그날도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하지만 전자발찌 없이 가택연금 생활을 하다가 밖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을 보았을 때의 충격은 컸다. 그래서 이후로 집에서만 쭈욱 생활했었다.
하지만 그런 가택연금 생활이 길어질수록 나자신이 <침몰하는 배 속에 앉아서 무작정 구조를 기다리는 것>같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구조대는 오지 않을 것이고, 나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큰길을 따라 한참을 걷다가 오른쪽 모퉁이를 돌아서 강가로 향하는 대로를 따라 걸으니, 지상철 입구에 <사람이 보이면 일단 멈추세요>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인기척이 나서 일단 멈춰 서니 환경 미화원이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다. 강가에 도착하니 세상은 아직도 어둑했다. 모두들 나와 같은 마음인지새벽 운동을 나온 사람들이 꽤 되었다. 다들 익숙하게 아무런 망설임 없이 자기 갈 길을 가는데 나는 앞으로 걷는 동시에 좌우로 걷고 있었다. 사람들과 6피트 거리를 유지하려다 보니 걸으면서 삼각함수를 풀 듯 앞뒤 좌우 사람들과의 거리를 계산해야 했다.
그러기를 계속하다가 시장에 들렀다. 산책을 나온 것만 해도 쾌 큰 일탈인데 시장에까지 간 것이다. 장사꾼들은 이제 가게 문을 열고 있었고 손님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강가를 따라 걸을 때부터 눈에 어른거리던 노란 배추 속 탓에 제일 먼저 산 것은 당연 작은 배추 속이다. 그리고 맞은편 가게에서 미나리 한 다발을 사고 났더니 남은 돈은 오천 원 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장 끄터머리에 인심 좋은 젊은 여인이 생고추와 치커리를 덤뿍 담아 주었다. 배추 속, 미나리, 고추에 치커리까지 다 넣었더니 제법 무거웠다. 나는 무슨 큰 범죄나 지은 것 마냥 불안한 마음으로 검은 봉지에 가득 담긴 야채를 오른손 왼손 번갈아 가며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를 걸어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서 모험 끝에 귀하게 얻은 야채를 깨끗이 씻었다. 물에 베이킹 소다를 듬뿍 넣고 몇 번을 헹군 후에 야채를 찍어 먹을 양념장을 만들었다. 냉장고에서 된장과 고추장을 꺼내다 보니 냉장고 구석에 있는 애플소스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애플 소스를 꺼냈고 역시나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고추장과 된장이 담긴 투명한 유리그릇에 애플소스를 다 넣었다. 된장과 고추장보다 약간 많아 보였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기대 이상으로 양념장은 잘 되었다. 싱싱한 야채를 배부르게 먹고 나니 좀 살 것 같았다. 그날 나는 밤늦게까지 일하지 않았다. 정해진 근무시간보다는 훨씬 늦은 시간이긴 했지만 그래도 평소보다는 이른 시간에 컴퓨터 전원을 껐다. 샤워를 하고 알레르기 약을 먹고 그날 밤 일찍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