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똥꽃 Feb 21. 2020

코로나 19와의 전쟁

때는 바야흐로 기생충이 오스카 4관왕을 받고 전 세계에 한국 영화의 우수성을 맘껏 알리며 기뻐하고 있던 어느 날, 코로나 19가 나의 도시를 삼켜버렸다. 환자 1명이 다음날에는 11 명이 되고, 이틀 후에는 34명이 되고, 삼일째 저녁에는 126 명이 되었다. 티브이에는 문대통령 내외가 봉준호 감독 그리고 영화 기생충 출연 배우들과 오참을 하는 영상이 나오고, 곧이어 채널을 돌리면 코로나 19 속보가 나온다. 티브이 화면에 코로나 19 확진자 수, 완치자 수, 검사 중인 사람들의 수가 적혀있다. 이윽고 정세균 국무총리가 "특별 재난 지역"으로 두 도시를 선포한다.


어제부터 직장에서 휴업령이 내려졌다. 사실상 반강제적인 격리 상태로 들어간 것이다. 이렇게라도 직장 내에서만은 바이러스 확산을 막아 보겠다는 필사적인 각오리라. 가족, 친구와 지인들에게 하나 둘 안부를 묻는 연락이 왔다. 첫 감염자가 생기고 바로 안부 연락해 온 사람도 있고, 하루 이틀 지켜보다가 일이 너무 커지자 연락해 온 사람들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위로의 말과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어떤 사람은 장난하듯 한 마디 던지다. <동병상련>이라는 말이 참 실감 난다.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를 느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이 상황이 그냥 남의 일일 뿐일 테니까 말이다.


여기저기서 계속 마스크를 쓰라고 한다. 그런데 마스크를 구할 곳은 없다. 내가 사는 곳이 코로나 19잠식되기 전에도 전국적으로 마스크를 구하기 힘들었다. 하루에 수백 명이 죽고 있는 중국에서는 두 도시에 폐쇄령이 내려졌고, 마스크를 안 쓴 사람들에게 벌금을 물린다고 했다. 마스크 살 돈은 있어도 구할 곳이 없는 이 시점에서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계속 말만 해대면 도대체 마스크를 어디서 구하라는 말인가?


오늘 마스크를 구하러 집을 나섰다. 다행히 몇 주전 외국에서 가족이 우편으로 보내준 마스크가 도착했다. 걸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당장 급한 불은 껐으니 다행이다. 음식도 구해 뒀다. 온라인으로 라면, 쌀 등의 기본 식량을 좀 비축해 두었다. 혹시라도 배달을 더 이상 받을 수 없으면 정말 큰 일이다. 직장 동료 중에 수학에 능한 사람이 계산을 해보더니, 이런 속도로 도시의 환자 수가 매일 증가하면 2주일도 못 돼서 확진자 수는 1백5천만 명이 될 것이라고 한다. 단순히 수학적으로 봤을 때 말이다. 도시 인구의 반 이상에 해당하는 숫자다.


과연 2주 후에 나와 가족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바이러스 감염자와 접촉을 피하고, 마스크를 계속 착용할 수 있고, 음식이 떨어지지 않는 한 나와 가족은 안전할 것이다. 6년 전쯤 메르스 사태 때도 살아남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때는 도시 내에 감염자가 이렇게 무더기로 나오지는 않았다. 이틀을 집에서 쉬었다. 하지만 아침 뉴스와 저녁 뉴스를 종교의식처럼 보고 있다. 청소며 빨래도 쉴 새 없이 하고 있고, 손은 하도 씻어서 손등이 갈라지고 있다.


흔히 나이 들 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들 한다. 올해는 연초부터 정신없이 가고 있다. 친정 엄마의 승천과 층간 소음  정면 승부에 이어 바이러스와 사생결단을 보는 중이다. 나는 이렇게 고단한 삶을 원하지 않는다. 여태껏 충분히 힘들게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한적한 섬에서 열대 과일 따 먹고, 종일 바다 바라보며 놀다가, 편안한 집에서 다리 쭉 뻗고 자고 싶다. 그 섬에 가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온라인 쇼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