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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Mar 24. 2020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났다

탈옥의 기록 2

오 주 가까이 집에서 갇혀 지내다가 오늘 재택근무를 늦지 않은 시간에 끝냈다. 평소대로 저녁 뉴스를 삼십 분 가량 보면서 핵심정리했다. 아침에 한번 저녁에 한번 벌써 오 주째 주말에도 빠지지 않고 하고 있는 일과 중의 하나다. 아이와 함께 오래간만에 같이 바람을 쐬러 나가기로 했다. 주로 주말에 자주 오는 식료품 가게가 있는 곳이다. 운전해서 한 십 분도 안 되는 거리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올 수 있지만 최근 코로나 19 사태로 일주일에 한 번 올까 말까 할 정도다. 지난 토요일 다녀갔을 때 벚꽃이 조금 피고 있더니 화요일인 오늘은 활짝 피어있었다.


너무 반가운 내 마음과 정반대로 내 몸은 집을 나서기 전부터 이상 증후를 보인다. 아마도 벚꽃의 개화를 내 멈이 먼저 알아차렸나 보다. 다행히 체온 검사를 하는 검문소를 무사히 지나고, 마스크를 몇 개 구입 할 수 있었다.  이후로 나는 집안에 감굼돠기 전 자주 그가던 한식 식당에서 테이크 아웃 주문을 했다.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다가 계산대 앞에 있는 아이스크림 냉장고에서 돼지바와 붕어싸만코를 꺼냈다. 이 천 원을 건네자 주인아저씨가 물었다: "봉투에 담아 드릴까요?"

나는 재빨리 답했다: "아니요! 가면서 먹을 거예요!"

그리고는 반찬을 두는 곳에 작은 포장 용기에 담긴 반찬들을 종류별로 하나씩 집어 주인아주머니에게 주었다. 나온 음식을 건네받으며 마스크 속으로 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하고 나왔다.


딸과 나는 주차장에 세워 둔 차로 갔다. 먼지가 노랗게 앉아 차는 옅은 주홍색처럼 보였다. 딸과 나는 각각 아이스크림을 봉지에서 꺼내 입에 물었다. 차의 왼쪽으로는 일 년 중 항상 이맘때면 볼 수 있는 화려한 풍경이 펼쳐져 있다. 언덕을 내려오는 길과 만나 니은 자를 그리며 주차장에서 멀어지는 쪽으로 향한 길을 따라 핀 벚꽃과 목련화가 시선을 가득 메우도록 피어있었다.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물고, 꽃구경을 하고, 주차장 바로 앞에 보이는 내가 귀국 후 6년간 일을 했던 정든 건물을 바라보며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 눈물이 나는 걸까?' 나와 좀처럼 외출을 안 하는 딸이 옆에 있고, 그토록 기다리던 봄이 예쁜 꽃들을 선사해 주고, 아이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정든 건물을 보고, 오래간만에 저녁을 테이크 아웃 해 가는 데,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났다.


오히려 딸은 한 달 이상을 집안에 갇혀 지내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나보다 더 잘 견디는 듯하다. 평일 재택근무를 마치고 마스크 몇 개 사고 저녁 포장해 가면서 아이스크림 한 입 메어 물고 나는 너무 행복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다 큰 어른을 이렇게 처량하게 만드는 상황에서도 봄은 나에게 할 말이 있나 보다. 아이와 농담을 주고 받으며 웃고 울기를 반복하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다시 운전해서 집으로 가는 길에, 벌거벗은 가로수를 보고 또 순간 혼란에 빠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도대체 지금이 무슨 계절이니? 좀 전에는 봄인 줄 알았는데 나무가 온통 벌거벗었네." 아이는 나의 자문자답에 익숙한지라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집으로 돌아와 양념이 잔뜩 새어 나온 비닐봉지에서 일회용 박스를 꺼내지도 못한 채 포장해 온 닭갈비를 먹고 설거지를 했다. 설거지를 마치고 싱크대 하수구가 지저분한 것 같아 베이킹 소다를 뿌리고 식초를 들이부었다. 식초 냄새가 진동을 하며 하얀 거품이 샤아 소리를 내며 부글부글 끌어 올랐다. 나는 얼마 되지 않는 음식물 쓰레기와 다른 쓰레기를 집어 들고 산책을 하러 길을 나섰다. 아파트 건물을 나와서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길에 언제 변했는지 날씨는 무척 싸늘했고 차가운 바람이 내 몸을 감쌌다. 해는 이미 진 시각에 나는 산책을 하러 발길을 옮겼지만 채 한 시간도 못 되어 돌아오고 말았다. 날이 너무 어둡고, 날씨는 쌀쌀하고 게다가 무릎 통증으로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집에 돌아와 티브이를 켰더니 좋아하는 중국 드라마가 방영 중이었다. 그 드라마를 보면서 이름도 모르는 중국 배우에게 관심이 생겼다. 무술을 잘하고 큰 키에 묘하게 호감 가는 얼굴이다. 다음 생에는 아마도 무술을 잘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중국 드라마 시청을 마지막으로 작은 일들에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나는 그런 하루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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