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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Mar 30. 2020

2020년 1분기 회고와 통찰

코로나와 새옹지마

아마도 2020의 불길한 기운이 시작된 건 유학하고 있는 아이와 직장을 다니는 남편이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기 위해 한국에 왔을 때부터였다. 가족들과 맛있게 먹겠다고 티몬에서 주문한 포도가 상한 채로 도착했고, 그래서 환송을 시키고 환불을 요청했는데, 환불을 못해주겠다고 티몬에서 우기는 바람에 너무 열 받았던 사건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환불은 받았지만, 티몬과의 거래는 그 이후 끊어 버렸다. 그 사건으로 인해 기뻐야 할  연말은 얼룩졌다.


그렇게 새해는 시작되었고, 짧은 겨울 휴가 후에 우리 가족들은 모두 일상으로 돌아갔다. 여느 때처럼 일하느라 한 번도 놀아 본 적이 없는 설날 연휴에 친정 가족한테서 연락이 왔다. 17년을 병상을 지키시던 친정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삼일장을 치르려면 직장에 처리해 둬야 할 일도 있고, 아이 학교에 연도 하고 며칠간 장례식장에서 지낼 채비도 해야 하는 와중에 개를 맡길 곳을 찾느라 발을 동동 구르다가 내 신세가 너무 처량해서 눈물이 났다. 몇 해 전 친정 오빠가 돌아가셨을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친구들과 친지들에게 몇몇 부고 소식을 전했다. 설날 연휴에 장례식을 치르느라 멀리서 와준 사람들에게 고맙기도 했지만 참 미안했다. 그때는 이미 한국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입된 상태여서 장례식장 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장례를 치르는 동안 위생 문제에 관해 신경이 많이 쓰였다.


엄마의 장례식 이후에 우울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윗집에서 상식 밖의 소음을 만들어 몇 번 가서 따지기도 하고, 관리 사무소에 항의도 하고 정신없이 이 삼 주 가량을 보내고 있을 무렵 2월 18일 내가 사는 도시에서 슈퍼 전파자가 나왔다. 그러고 나서 며칠 후부터 직장은 재택근무로 전환할 태세를 갖췄고 일주일 후부터는 완전히 재택근무로 전환되어 5주가 지났다. 그간 나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뉴스를 지켜보았고, 심지어 주말에도 계속 그 시간 대에는 뉴스를 보았다. 사실 슈퍼 전파자가 나오고 나서 바로, 나는 다음 주 예정이었던 건강검진을 4월 초로 미뤘다. 내 치과 진료는 취소시켰고, 아이의 치과와 교정과 진료도 4월 초로 연기시켰다. 5년 전 메리스가 창궐했을 때 병원에서 집단 간염이 일어났던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칠 후면 벌써 4월 초가 된다. 나는 그동안 일만 하느라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그래서 벼르고 별러왔던 건강 검진을 아쉽게도 며칠 전 아예 취소해야 했다. 아이의 치과와 교정과 진료는 다시 5월 말로 연기시켰다. 이번 한 주를 더 일하면 직장에서 일주일 휴가를 받는다. 그런데 휴가기간 동안에도 최근  더 강력해진 방역 대책으로 집 밖에는 아예 나갈 수가 없다. 그전보다 오히려 더 발이 묶인 것이다. 올해 초에 중고 앱에서 성공적으로 가구를 구한 후에 한참 잊고 지내다가, 요즘 구하기 힘든 마스크가 중고 온라인 앱에서 유통되고 있는 것을 알고 며칠 전 여기저기서 구매를 했다. 그때만 해도 금족령이 떨어지기 전이어서, 휴가를 받으면 가까운데 산책하면서 쓰려고 장만해 둔 것이다. 내가 있는 곳이 아직도 감염 위험성이 크고, 서로의 안전을 위해 비대면 거래가 요구되는 상황이라 나는 판매자에게 입금을 시켜주고 택배를 부탁했다. 그런데 내가 거래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자꾸 내가 있는 곳으로 오겠다고 해서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비대면 거래를 하고 싶다고 몇 번을 강조해야 했다. 그리고 마스크 가격과 택배비를 보냈는데, 그날 오후에 그 사람은 결국 우리 집 앞으로 찾아온 것이 아닌가!


그래서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친절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전염병이 만연한 도시에서 모두가 방역에 동참해야 하는 이 시기에, 굳이 남의 집으로 찾아와서 낯선 이를 대면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말이다. 온다는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준비를 한 후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끼고, 손에는 레이텍스 장갑까지 끼고 밖으로 나갔다. 그 와중에 또 택배비를 돌려준단다. 물건을 받고 돌아온 후, 마스크가 담긴 비닐봉지에 소독 분무기를 뿌렸다. 마스크가 담겼던 상자에도 뿌렸다. 심지어 건네받은 돈에도 뿌렸다. 그 사람은 아마도 자신의 친절로 인해 내가 안 해도 될 수고를 겪는다는 것을, 그 친절이 나에게는 불필요한 위험 요소를 만든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최근에 내가 빠져서 보고 있는 중국 드라마에서 어떤 배우가 이런 말을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과를 먹고 싶어 하면 그 사람에게 사과 대신 배를 주면 안 된다."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아니고 사랑해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지만, 주위에 보면 사과를 원하는 사람에게 배를 주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게 남을 얼마나 피곤하게 하는 건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가까운 사람이든 먼 사람이든 내가 뭘 원한다고 말을 하면 그런 내 의사를 존중해 줬으면 좋겠다. 연락받고 싶지 않 사람들에게 연락이 안 왔으면 좋겠다. 내가 연락 안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뒤에도 계속 연락하는 사들의 특성을 보면, 나를 위한 친절을 가장해서 다들 자신의 잇속을 차리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누구를 어제 태어나 오늘 성인 된 사람으로 보는 것인지, 자신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을 모르나 보다.


아직도 내가 사는 도시에서는 집단 감염자들이 나오고 있다. 교회에서, 병원에서, 요양원에서, 그리고 정신병동에서. 엄마가 설날 연휴에 돌아가셨을 때 '왜 하필 연휴에 돌아가셨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병원에서 많은 감염자들이 생기는 것을 보니, 엄마가 그때 돌아가시지 않으셨으면, 요양원에 계시던 엄마는 코로나 감을 피하지 못하셨을 거고, 엄마의 건강 상태로는 회복도 못하셨을 거고, 지금 이 난리 중에 돌아가셨으면 남은 가족들은 엄마의 장례도 못 치렀 것이 뻔하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다시 생각해보니, 마치 모든 일이 <새옹지마>처럼 여겨졌다. 티몬과 연을 끊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처럼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에 쿠팡을 접하지 못하게 됐을 거고, 엄마의 장례식을 연초에 치르지 않았다면 우리 가족은 엄마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조차 못했을 것이다.


<의 눈> 속에서는 태풍을 알지 못한다. 우리가 어떤 사건을 겪고 있을 때는 그 사건의 전체적인 맥락보다는 부분에만 치우쳐서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나는 6주째 이어지고 있는 감옥 같은 생활에 염증이 생겼고 금족령에 무력감까지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태풍이 지나고 나면 나는 무슨 깨달음을 얻게 될까? 티몬과의 분쟁, 엄마의 장례식, 몰상식한 이웃에 항의, 건강검진 포기, 코로나 사태로 인한 감금 생활 등의 표면적인 불행의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때 아닌 태풍이 빨리 그치길 기도해 본다. 태풍의 잔해 속에 어떤 보물 숨겨져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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