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똥꽃 Jun 05. 2020

나만의 굴다리

어릴 적 내가 말썽을 피우면 엄마는 종종 나를 굴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했었다. 엄마는 분명 말 안 듣는 나를 골려 주려고 농을 했던 것인데, 나는 '혹시 정말 내가 주워 온 아이가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하곤 했다. 형제들은 많지만, 같이 자란 형제는 바로 위의 두 살 터울 오빠와 바로 밑의 네 살 터울 동생이 전부다. 큰 언니의 큰 아들은 나와 두 살 정도밖에 나이 차이가 나지 않아서 사실 큰 언니는 나에게  엄마뻘이다.

우리 형제들은 모두 다른 곳에 산다. 친정 식구도 없고, 내가 사는 곳이 고향도 아니고 하다 보니, 나는 주로 집과 직장을 오갈 뿐 대부분의 시간은 집에서 조용히 보낸다. 그러다가 최근 긴 여름휴가를 나흘 앞둔 어느 오후였다. 오전에는 정상 출근을 하고 오후에는 재택근무를 한다고 통보를 하고 집에 왔다. 예상대로 오후 근무는 그다지 바쁘지 않았다. 근무시간 끝날 즈음 들어온 업무상 이메일처리해 두고 밖으로 나가기 위해 중무장을 했다. 이 도시의 기온은 벌써 섭씨 34도로 그 날이 올여름 들어 가장 더운 날씨라고 다. 그래 봤자, 여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안경 위에 바로 쓸 수 있는 선글라스에, 야구 모자를 쓰고 N95 마스크를 썼더니, 귀 옆이 욱신거려서 다시 모두 벗었다. 마스크 끈이 안경다리들을 누르지 않게 하려면 제일 먼저 마스크를 써야 했기 때문이다. 더운 말씨에 아무것도 안 쓰고도 숨쉬기 힘든 마당에, 그런 차림으로 길을 나서려니 여간 번거롭지 않았다.

밖으로 나오는 김에 재활용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를 내다 버렸다. 아파트 뒤쪽으로 철거가 되고 있는 동네를 지나 이차선 도로를 건너서 군부대 담장을 따라 한 참 걷다가 다시 한번 건널목을 건너면 강가에 다다른다. 어느 때부터인지 나는 강가에 도착한 후 항상 가던 장거리 코스의 반대편으로 걷기 시작했다. 노인네들이 모여있는 정자를 두 개 정도 지나치고 돌다리를 건너면 멀지 않은 곳에 큰 다리가 보인다. 햇볕이 너무 따가워서 그곳에서 잠시 머무르려고 했는데, 언제나 그렇듯이 그곳은 노인네들이 벌써 장악해  버렸다. 나는 한 길가와 가까운 다리 건너 쪽으로 가서 다리 기둥에 기대앉았다. 한 오 분을 쉰 후 다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평소에 그쪽으로 산책을 할 때면 주로 멍 때리고 앉아서 노는 곳은 그날따라 뜨거운 햇살 때문에 좋은 휴식장소가 되지 못다. 그런데 내가 멍 때리며 쉬는 곳 바로 옆에 작은 다리가 하나 있었다. 보아하니 그늘도 제법 있어서, 잠시 앉아 쉬어 가기에는 좋을만한 곳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 다리 밑으로 내려가서 내 생각을 살펴보다가 한참 후에 고약한 하천 냄새 결국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매거진의 이전글 장독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