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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Jun 17. 2020

나를 아름답게 하는 작은 변화들

I put one foot in front of the other

**표지 사진: 비 온 후 물가에서 밀려 내려오는 물고기를 열심히 낚시 중인 다리가 긴 회색빛 새


지난주 중, 돈 버는 백수가 된 이후로 나는 귀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했었다. 하루아침에 풀가동 모드에서 오프 모드로 전환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틀간 늦잠과 낮잠을 잔 이후에 삼일째로 접어들면서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극단적인 선택으로 자기 최면을 걸어야 했다. 자기 최면 속에서 나는 하와이에 사는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다.


기분 좋은 착각 속에서 나는 일종의 To Do 리스트를 만들었고 그것을 조금씩 실천해 가기 시작했다. 리스트를 만든 첫째 날에 먼저 시도한 것은 산책이다. 둘째 날에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책을 듣기 시작했다. 오디오 북으로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편하게 누워 듣기만 하면 되었다. 책을 들고 눈으로 읽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이 내용을 듣고 이해는 비교적 쉬운 독서법이다. 그리고 외국어 공부도 시작했다. 중국어를 배우고 싶어서 구매한 중국어 교재에 따라온 것이 하필 DVD다. 컴퓨터를 켜고 DVD를 작동해야 하는 수고스러움을 피하기 위해 일단 작년 여름에 구해둔 일본어 교재를 집어 들었다. 일본어 무조건 따라 하기 CD를 CD 플레이어에 넣고 진짜 무조건 따라 했다. 일본어는 입문만 수차례 했기 때문에 무조건 따라 하는 것이 쉬웠다. 셋째 날에는 오랫동안 방치해 둔 가야금을 꺼냈다. 창고 쌓아 둔 수많은 악기들 중에 내가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악기가 가야금이다. 먼저 가야금 조율을 했다. 악기 조율 앱으로 열 두 선율을 GCDGACDEGACD 하나하나 맞췄지만, 결국은 아리랑을 연주하면서 내가 기억하는 선율과 비교해서 다시 조율해야 했다. 석사 과정 시작하면서 손 놓았던 가야금을 학위 받은 지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손대지 않았으니 그간 5 년간의 공백을 muscle memory만으로는 메꿀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악보를 보며 기억을 더덤어야 했다. 삼일 째 저녁 여덟 시경에 좋아하는 중국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그때 하필 중국인 동료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래서 중국 드라마는 나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고 그날 밤 동료와 자정이 넘도록 수다를 떨었다. 네쨋날 아침에는 미국인 친구와 몇 시간 동안 수다를 떨었다. 전날 밤늦게까지 했던 수다가 다음 날 아침 일찍까지 이어져서 피곤했다. 규칙적인 수면을 중요시하는 나에게 수면 시간이 너무도 부족했던 것이다. 오후에 남편과 화상통화를 마친 이후에 나는 결국 낮잠을 자고 말았다.


나는 모든 것을 너무 열심히 한다. 지금은 열심히 휴식하는 중이다. 이렇게 열중해서 쉬면서 "먹는 것"은 자연히 관심사에서 멀어졌다. 실컷 놀다가 배가 고프면 배를 채우기 위해 가볍게 먹는다. 시리얼이나 선식 등 칼로리가 적은 음식을 먹고 또한 먹는 양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산책을 할 수 없는 날에는 훌라후프를 한다. <매일 운동을 한다>는  목표를 세웠기 때문에 나와의 약속을 지켜야겠다는 무의식이 나를 지배한다. 결국 나의 생각이 나의 현실이 되는 것이다.


돈 버는 백수의 하루는 치열하다. 매일 운동을 하고,  외국어를 배우고, 나를 돌아보게 하는 책을 읽고 (듣고), 가야금 연주를 하고, 중국 드라마를 보고, 건축에 관한 프로그램을 보면서 미래의 집에 대한 꿈을 꾸고, 몸매 관리를 위해 식단에 신경을 쓰고, 네트워크를 탄탄히 하기 위해 지인들과 연락을 하고, 인터넷 쇼핑을 하고, 택배를 받고 등등. 캘린더에 내일 중고 거래 시간을 저장하고 맘 속으로 베란다 정원에 꽃씨를 심을 계획을 세운다. 이렇게 생각한 것을 하나씩 실천하다 보면 언젠가 나는 아름다운 나와 만날 것이다. 아름다운 나에게 다가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이 가볍고 신난다. 나는 지금 치열하게 최대한 휴식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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