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똥꽃 Jul 18. 2020

배 다른 민족

우리 집 엥겔지수

예전 학교에서 엥겔지수라는 것을 배운 기억이 있다. 경제나 사회 같은 과목은 참 지루했지만 그중에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이 엥겔지수다. 뭐 대충 못 사는 사람일수록 소득에서 식비가 차지하는 부분이 높다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다시 한번 검색해 보니 소득이 올라가도 추가 식비는 오르지 않는다고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잘 살든 못 살든 다들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개인적인 사정으로 우리 집은 두 집 살림을 한다. 내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집은 2인 가정이다. 사춘기의 정점을 찍은 아이는 입맛이 아주 까다롭다. 요리를 잘하는 편 아니긴 하지만 아이는 내가 한 요리를 아예 안 먹는다. 아이는 모든 음식에 어떤 소스도 첨가하지 않고 심지어는 가공 음식이 브랜드만 살짝 바뀌어도 귀신같이 알고 안 먹는다. 내가 자라온 환경과는 너무 다르다. 내가 자랄 때는 음식이 귀했고, 음식이 입맛에 안 맞는다고 투정을 부리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나는 어떤 음식이든 감사한 마음으로 먹었고, 음식을 낭비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는 입맛이 까다로운 정도가 아니라 무슨 음식이든지 최소 마지막 한 은 남긴다. 정말 내 자식이지만 그런 점이 너무 싫다. 예전에는 애가 안 먹을 때 안절부절 했는데, 이제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배가 고프면 알아서  먹겠지 하고 그냥 내버려 둔다.


이렇다 보니 집에서 요리를 할 일이 드물다. 가끔씩 사다 놓은 식재료의 절반은 나중에 음식물 쓰레기가 된다. 심지어 가공 식품도 유통기한을 넘겨서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내가 요리를 안 해서 아이 입맛이 까다로워진 건지, 아이 입 맛이 까다로워서 내가 요리를 안 하게 된 건지,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논란처럼 확실한 답은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우리집에서 요리를 하지 않지만 엥겔지수는 상당히 높다.


요리를 안 하니 식재료를 자주 사지는 않고 우리는 주로 배달 음식을 먹는다. 심지어 배달 음식마저도 의견 일치를 볼 수가 없다. 아이는 치킨을 아주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유일한 닭요리는 삼계탕이다. 아이는 삼계탕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는 스파게티를 좋아한다. 나는 스파게티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가 어릴 때 몸에 해롭다고 맥도널드 음식과 사탕을 못 먹게 했더니, 이제는 맥도널드 음식과 사탕만 줄곧 찾는다. 삼시 세끼 꼭 챙겨 먹어야 하는 나와 반대로 아이는 음식을 조금씩 자주 먹는다. 이토록 아이와 나의 취향과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극과 극이다 보니 아이와 하루 종일 붙어 있는 요즘 먹는 일은 즐거운 일이 아니라 짜증스러운 일이 되어 버렸다.


음식 주문을 위해 자주 사용하는 배달 앱을 볼 때마다 나는 <배 다른 민족>으로 읽는다. 아이와 나를 위해 음식을 주문해야 하는 과정이 그렇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난 한 달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음식 배달을 시켰으니, 배달 음식에 쓴 돈만 해도 백은 족히 될 것이다. 게다가 장보기와 홈쇼핑으로 구매한 식재료  외식비까지  더하면 최소 백오십에서 최대 이백. 뭐 가계부를 따로 쓰지 않으니 정확한 액수는 알 수 없다. 신빙성 있는 자료 인지는 알 수 없지만 2인 가족 평균 식비가 2017년 52만 원으로 나왔다. 우리 집 식비 지출은 무려 3~4배다. 언제쯤 식비 지출을 줄이고 삶의 질을 좀 더 높일 수 있을까?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긴 하지만, 먹는 것에 너무 열중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글에도 인격이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