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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Aug 11. 2020

엄마와 딸

딸은 곧 고등학생이 된다. 내 기억 속에 가장 강하게 남아 있는 딸의 모습은 엉덩이까지 오는 긴 머리를 늘어 뜨리고 공원에 난 산책로를 뛰어가던 두 살배기 때의 그 모습이다. 그때는 내가 아직 일을 하지 않고 있을 때라 아이와 둘이서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 그 무렵 남편은 혼자 네 식구를 벌어 먹여 살리느라 어깨가 무거웠고 아들은 유치원을 다니고 있었다. 그때도 나름대로의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되돌아보면 이십 년 결혼 생활 중에 내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인 것 같다. 그 시절 딸은 내가 긴 머리를 손질할 때 아무 불평 없이 얌전히 앉아 있었고, 청바지든 드레스든 입혀주는 대로 다 잘 입었다. 딸과 나는 마치 한 몸처럼 하루 종일 붙어 있었고, 서로에게 가장 든든한 친구였다.


그다음 해에 나는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고 딸이 유치원에 들어간 이후에 남편과 나는 각각의 직장 때문에 같이 살 때보다 떨어져 살 때가 많았다. 남편과 떨어져 사는 동안에도 딸은 줄곧 나와 함께 살았다. 남의 돈 버느라 바쁘게 하루하루를 살다 보니다 보니 어느새 아이는 고등학교를 시작하게 되었다. 전염병 창궐로 지난 6개월 아이와 나는 매일 같이 붙어 있었지만 우리는 같이 있지만 따로 있는 그런 느낌이다. 아이는 하루 종일 방안에 틀어 박혀 나름 중요한 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가끔씩 그림을 그리고, 마지못해 하고 있는 하루에 30분 책 읽고 독후감 쓰기와 강아지 매일 2회 산책시키기를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은 유튜브나 인스타 그램 또는 친구들과의 화상통화 등으로 보내고 있다.


한집에서 꼭 남남처럼 살고 있는  딸과 가끔 마주 앉아 식사를 할 때도 있다. 그나마도 딸과의 대화는 종종 독백으로 끝이 난다. 딸은 내가 하는 말들에 관심이 없거나 마치 외계인이 하는 언어를 듣는 듯 행동한다. 아이에게 나는 그저 귀찮은 <라테는 선배> 같은 존재인 듯하다. 아이는 종종 내가 완벽주의자라고 말한다.  나의 완벽주의  성향을 온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볼 때 아이는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듯하다. 뭐든 노력해서 이루고 성취해야 되는 나의 세대와 그다지 노력하지 않아도 특별히 불편할 게 없는 아이 세대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의 대립이다. 내가 볼 때 아이는 감상적일 때가 많다. 나의 실용주의 가치관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 아이도 나도 각각의 세대가 만들어낸 가치관의 산물인 것이다.


지금은 나와 같이 살지만 따로 시간을 보내는 아이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나면 집에서 독립할 것이라고 말한다. 나름 집을 떠나서 더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하지만 사실 나는 아이가 독립해서 살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나는 모든 것을 너무 많이 걱정한다. 내가 걱정을 해도 걱정을 하지 않아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을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들이 벌써 대학생이 되어 알바를 하는 나이가 된 것처럼 딸도 곧 대학을 다니며 일도 시작할 것이다. 그간  살면서 깨달은  불변의 진리 중 하나는 <시간은 가고 아이는 큰다>는 것이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 시기 또한 지나가고 언젠가는 엄마와 딸이 아닌  인격체와 인격체로서의 상호존중이 가능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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