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지는 것이 이기는 것보다 더 힘들다

목적과 수단의 도치

by 별똥꽃

오십 대에는 오 개 국어를 하고 싶다는 목표를 세운 후 나는 듀오링고라는 앱을 사용에서 중국어, 일본어 그리고 스페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공부를 시작하고 한 일주일 후 다음 리그로 승급되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비록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외국어를 공부하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있다는 것이 공부를 지속하는 데 자극과 위안이 되었다. 듀오링고에서 레슨을 마칠 때마다 포인트가 쌓여갔는데 자신이 받은 포인트에 따라서 자신이 속한 리그 속에서의 등급이 매겨졌다. 그래서 듀오링고 이용자들은 더 좋은 점수를 받기 위에 더 많이 그리고 자주 공부를 하게 되고 나도 그렇게 하다 보니 어렵지 않게 두 번째 리그인 실버를 일등으로 마치고 이후 골드, 사파이어, 루비, 에메랄드 리그 또한 일등으로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한 리그에서 다음 리그로 옮겨 가던 중간에 강력한 경쟁 상대자를 만난 적도 있다. 한 명은 나처럼 다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일본인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나와 같은 시간에 공부를 하지 않았고 내가 잠시 쉬고 있을 때나 자고 있을 때 자기 점수를 올려놓고 마치 닌자처럼 슬그머니 사라졌다. 나는 1등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밤낮으로 공부를 했다. 이번 주 월요일에 종료된 자수정 리그에서는 다개 국어를 공부하는 중국인을 만났다. 새 리그는 주로 월요일 아침에 시작해서 그다음 주 월요일 아침에 마치는데 그 중국인은 처음부터 두각을 드러내는 경쟁상대는 아니었다. 그런데 금요일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서 하루에 삼천 점이 넘는 점수를 올려놓고는 내가 지키고 있던 일 등 자리를 빼앗았다. 이후 나는 밤낮으로 더 열심히 공부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 중국인 경쟁상대는 너무도 단시간에 고득점을 냈다. 도대체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비결을 찾아내기 위해서 그 사람의 학습법을 나름 연구해보았다. 듀오링고에서는 팔로우하는 기능이 있다. 그 사람의 프로 파일을 보면 그 사람이 공부하고 있는 언어와 총점 같은 기본적인 정보를 볼 수 있다. 나의 중국인 경쟁자는 이것저것 아주 많은 언어에 손을 대었다. 듀오링고에서 언어 학습을 시작할 때 거의 대부분의 언어가 처음에는 그 언어의 알파벳이라든지 기본적인 표현 같은 것을 학습하도록 프로그램이 되어 있어서 기초 레슨은 학습 분량이 비교적 적기 때문에 단시간에 득점이 가능했다. 높은 점수 차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나의 미련 곰탱이 스타일대로 밤낮으로 쉬지 않고 공부를 했다. 나의 중국인 경쟁가가 3000점을 획득하면 나도 다음 날 그만큼의 득점을 했다. 그러면 나의 중국인 경쟁자는 익일 5000점을 냈다. 참고로 듀오링고에서 천 점을 획득하려면 적어도 3 시간을 쉬지 않고 공부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단순히 진도만 나가는 것이 아니고 공부를 하면서 매 순간마다 최대한 많이 말하고 기억하려고 노력했고 심지어 새로 나온 단어나 표현들을 노트에 다 정리를 하며 학습을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점수를 올리는 데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중국인 경쟁자를 만나기 전에 내가 기록한 하루 최고 점수는 2000점을 약간 웃도는 정도였다. 그런데 하루에 5000점을 내는 나의 중국인 경쟁자를 보고 기가 막혔다. 하지만 더 기가 막힌 것은 내가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공부를 해서 겨우 따라잡으면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내 중국인 경쟁자는 또 단시간에 1000점 정도의 점수차를 내놓고 유유히 사라졌다. 금요일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쉴 새 없이 따라잡기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일요일 밤 12시경 아니 더 정확하게는 월요일 0시에 나의 중국인 경쟁자가 또 나타나서 아주 순식간에 1000점 정도의 점수차를 냈다.


금요일부터 일요일 밤까지 황금 같은 주말 내가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리그가 끝나기 9시간 전 또 1000점의 점수 차이가 나자 나는 큰 고민에 빠졌다.


' 그냥 이대로 단념할 것인가? 아니면 밤을 새워서 붙을 것인가?'


밤을 새워서 공부를 하면 한 주를 시작하는 그다음 날 내 스케줄이 엉망이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그렇다고 내가 쏟은 노력을 물거품이 되게 할 수도 없었다. 결국 나는 또 오기를 부렸다. 1000점의 점수 차이에도 불구하고 리그가 끝나기 전까지 계속해보겠다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대략 30분의 시간이 걸렸다. 1000점을 따라잡으려면 중국어, 일본어, 그리고 스페인어로는 단시간에 높은 점수를 낼 수가 없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영어 레슨을 추가시켰다. 그리고 계속 따라잡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략 3시간 남짓 둘이서 잠도 안 자고 경쟁을 했나 보다. 새벽 3시 반 정도가 되었을 때 나는 드디어 나의 중국인 경쟁자를 앞질렀다. 그런데 또 고민이 되었다. 그 정도의 점수 차이로는 내가 먼저 잠을 자면 아주 쉽게 역전될 수 있기 때문에 안심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전날 새벽 6시경부터 공부를 시작했고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내 눈은 더 이상 글자를 읽을 수가 없었고 내 몸은 벽에 기대어 앉아 있을 힘조차 없었다. 마치 잠을 못 자게 하는 고문을 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고문관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 새벽 3시 반 이후로 내 중국인 경쟁자의 점수는 더 이상 오르지 않았다. 아마도 포기하고 자러 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쫓는 자에서 쫓기는 자로 입장이 바뀌었기 때문에 나는 쉴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의 안전거리를 확보하기 위해서 나는 새벽 5시까지 계속 공부를 했다. 뜨지 지도 않는 눈을 억지로 부릅뜨고 공부를 이어가는 내 모습이 마치 1차 세계 대전에서 사망한 군인이 무덤에서 나와 2차 세계대전에서 싸우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나는 총 23시간 동안 듀오링고에 매달렸던 것이다. 이제는 내 몸이 밤샘을 할 수 있는 그런 나이가 아니라는 걸 무시한 채로 말이다. 새벽 5시에 잠시 눈을 붙이고 새벽 7시에 다시 일어났다. 리그가 끝나기 2시간 전에 다른 변수가 생기면 안 되기 때문이다. 중국인 경쟁자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방심하지 않고 다시 학습을 시작했다. 결국 나는 어렵게 그 자수정 리그도 1등으로 마칠 수가 있었다. 듀오링고에서 자수정 리그를 1등으로 마치고 펄 리그에 진출했다는 메시지를 받았지만 그날 더 이상 듀오링고에서 학습하지 않았다. 학습을 재미있게 해야 되는데 우승에 매달리다 보니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쳤다. 듀오링고에 매달려서 이미 7주를 보냈는데 휴가 마지막 주마저 그렇게 보내고 싶진 않았다. 그날 밤을 새운 대가는 톡톡히 치러야 했다. 월요일은 너무 피곤했지만 잠을 잘 수 없는 상태로 하루를 보냈고 그날 저녁 일찍 잠을 자긴 했지만 다음날 새벽 4시도 못돼서 깨고 말았다.


' 이 나이에 내가 왜 이러고 사는 걸까? 말로만 듣던 일등병이 나에게도 있었구나!'


그까짓 게 뭐라고 나는 밤낮없이 몇 날 며칠을 그렇게 매달렸을까? 나는 왜 내 일본인 그리고 중국인 경쟁자들에게 1등 자리를 양보하지 못했을까? 불혹의 나이에 나는 왜 밤샘까지 하면서 그렇게 매달렸을까? 때론 지는 것이 이기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걸 절실하게 느꼈다. 이 망할 놈의 일등병을 멀리 차 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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