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후 여전히 갈 곳이라고는 강가 밖에 없다
가는 길에 무거운 현금을 처분하기 위해 ATM에 들렀다
하필 젊은 남자가 하릴없이 구석에 가만 서 있었다
낯선 남자가 물끄러미 서 있는 곳에서
현금 봉투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바로 나와 버렸다
길을 건넜더니 백화점 안에 ATM이 있었다
다행히 집을 나온 목적 중에 하나는 달성했다
계속 걸어 강가에 이르렀다
아직 여름 무더위가 끝나지 않은 듯한 날씨 탓인지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는 않았다
계속 걸어서 비좁은 다리를 지나고
이내 강가에 앉아 쉬고 싶은 유혹에 빠졌다
강에 바짝 다가 서니 물이 불어난 강은
금세라도 넘칠 것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내 맘 깊은 곳의 슬픔도 덩달아 불어났다
마스크를 쓰고 일렬로 움직이는 사람들 틈에 끼여
다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얼마 못 가서 모여 있는 바위 위에 또 주저앉고 말았다
어젯밤 동료에게 전화해 달라는 문자를 받았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일이 태산처럼 쌓여있는 현실 앞에서
예고 없이 찾아온 이별 통보의 충격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래저래 오늘 하루만이라도 쉬어야 할 것 같았다
까만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고
줄지은 차들은 서둘러 집으로 가는데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내 인생은 지금 어디로 향하는가?
나는 누구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예나 지금이나 어렵다
나는 자라지 않는 아이처럼 매번 혼란스럽다
내가 갈 길이 너무 멀게 느껴진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애써 기분 좋은 생각을 했다
베란다 화분에 심은 국화 모종을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입가에 웃음꽃이 핀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침실 옆 꽃밭에 꽃이 가득하니
마치 공주가 된 듯한 기분이다
계절마다 침대 옆에 꽃밭을 만들면 되겠구나
그걸로 나는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