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없이 추석을 보낼 수 있을까?
과연 중대본 말은 들을까?
제목을 적자마자 머리맡을 뛰는 소리가 난다. 이번 주는 참 바쁘게 보냈다. 다름 아닌 층간소음 때문에. 지난주 토요일 윗집에서 난리굿을 하고 간 이후로 일요일은 이를 벅벅 갈다가 월요일 층간소음 이웃센터에 전화를 해서 전화 상담 약속을 잡고, 저녁에는 동대표를 만났다. 화요일 층간소음 이웃센터와 상담통화를 한 이후 목요일 다시 층간소음 이웃센터에 전화를 했다. 수요일 이른 저녁 몇 시간에 걸쳐 광적인 달리기와 온갖 기계음이 있었기 때문에 예전에 계획했던 대로 녹취 스케줄을 잡기 위해서였다. 상담자가 윗집 사람을 인터뷰했을 때, "우리 집에는 부부만 살고 있다. 매트를 깔았고 하나 더 주문했는데 오려면 시간이 걸린다."라고 말했단다. 정말 매트를 깔긴 깐 걸까? 하도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말한 것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보니 믿음이 가지 않았다. 상담자가 스케줄을 맞출 수 있는지 알아보고 연락해 준다더니 스물네 시간 이후에도 연락이 없어서 금요일 또 전화를 했다. 하지만 상담자가 외부 업무 중이라 오는 대로 나에게 전화를 해 주겠다는 말만 전해 들었다.
추석이 점점 다가오고 있어서 나의 불안은 극도에 다다르고 있다. 이번 명절에는 윗집에서 또 얼마나 많은 일가친척을 데려와서 얼마나 오랫동안 난리를 치고 갈 것인가? 나는 마치 시댁에 가기 싫은 며느리들이 명절증후군으로 힘들어하는 것처럼 우리 집에서 명절을 두려워하고 있다. 정말 층간소음이 싫어서 가까이 계신다면 시댁이라도 가고 싶은 심정이다. 최근 중대본에서는 추석을 조용히 집에서 보내고 가족에게 전화로 안부를 전하라는 문자를 보낸다. 윗집에서 과연 중대본의 권유를 귀담아들을까? 평소에도 시도 때도 없이 오는 사람들이 명절에 안 올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재택근무가 이번 주로 끝이 났고, 다음 주부터는 정상 출근이다. 출근을 하기 전에 독감 주사를 맞아야 될 것 같아서 예약을 하는 김에 몇 주 전부터 시작된 등의 피부 트러블도 같이 검진을 받기로 했다. 일을 마치고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가서 하필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하는 순간에 층간소음 이웃센터에서 전화가 와서 받질 못했다. 어쩐지 그때 전화가 올 것 같았다. 다행히 주사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다시 전화가 왔지만 전에 그랬듯 나중에 연락을 해주겠다는 말 뿐이었다. 독감 주사를 맞고 약국에서 피부 트러블에 바르는 약과 먹는 약을 받았다.
집에 오자마자 윗집에서 내는 소음이 들렸다. 정말 매트를 깔고 성능을 시험하는 건지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웅성거림과 함께 바닥을 긁는 온갖 소리가 들렸다. 약국에서 받은 약을 먹었더니 너무 피곤했다. 독감 주사를 맞고 약도 먹었기 때문에 술을 마실 수가 없었다. 아니면 분명 맥주라도 한 병 마셨을 것이다. 그날 소음은 열두 시간이 넘게 지속되었다. 나는 정말 '어떻게 사람들이 한 시도 가만히 못 앉아 있을까?'라는 의문이 수도 없이 들었다. 차라리 그 집 애가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이였으면 나는 그 아이가 비의도적으로 내는 온갖 소음을 이해했을 것이다. 집을 짓기 위해 건설 소음이 불가피한 것처럼 장애로 인한 것은 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쿵쿵 쿵쿵 뛰는 소리와 드르럭 드르럭 바닥 긁는 소리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나는 귀마개를 하고 밤 아홉 시에서 열 시 사이에 잠을 청했다. 귀마개를 밤새 계속하고 있었더니 갑갑해서 새벽에 잠이 깨고 말았다. 다행히 아침은 고요했다. 맑은 정신으로 활기찬 하루를 보내기 위해 아침 운동을 나갔다가 거의 열 두시가 다 돼서 집에 왔다. 그런데 오자마자 또 뛰는 소리가 들렸다. "어지간히 해라, **들아!"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층간소음으로 나는 점점 폐인이 되어 가고 있다. 험한 말은 일상어가 되어 버렸고, 내가 다 표현하지 못한 분노는 내 몸에 쌓여 내 피부를 상하게 하고 있다. 나는 최근 자주 술을 마시며 <낮에는 열심히 일하시고 밤에는 열심히 술을 마시신> 우리 아버지와 극적인 화해를 하고 있다. 지난주 금요일은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난 후 맥주를 마시며 늦게까지 일을 하고 있는 내 모습에서 아버지를 보았다. 지금도 귀마개를 하고 글을 쓴다. 낮에는 밖에 공사 소음이 요란하더니 지금 밖은 조용하다. 차라리 밖이 시끄러우면 집안에서 듣는 소음이 덜 괴로울 텐데. 이번 추석 윗집에서 중대본의 권유를 못 들은 채 하고, 또 일가친척 다 모아서 협소한 장소에서 단합대회를 한다면 나는 지난겨울처럼 귀마개를 이중으로 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추석에도 건설공사를 할까? 제발 그래 주었으면 좋겠다.
올초에 친정 엄마를 여위고 슬퍼할 틈도 없이 나는 계속 소음문제로 시달려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요즘에 아버지 생각이 더 많이 난다. 우리 아버지가 살아 계셨더라면 저 윗집 **들을 단단히 혼내 주셨을 텐데 생각하며 벌써 돌아가신 지 삼십 년도 더 된 우리 아버지를 기억에서 소환하고 있다. 내가 정말 정신이 나가 버렸는지 요즘은 우리 아버지의 거친 욕설이 그립다. 올 추석 우리 아버지의 푸짐한 욕설을 윗집에 선물하지 못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