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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Oct 25. 2020

나도 밥 차려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가족을 식구라고도 한다. 한솥밥을 먹는 사람들. 그렇지만 우리 가족은 밥을 같이 먹지 않는다. 두 집 살림을 하는 데다가, 같이 살고 있는 유일한 가족마저 나와 식성이 영 다르다. 우리는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거나 대부분 밖에서 사서 먹는다.


결혼하기 전에도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는 혼자 끼니를 해결했다. 결혼 이후에 한 동안은 음식을 만들어서 가족과 이 먹었다. 정확하게는 내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십 년 전까지는 그랬었다. 그 이후로 우리 가족은 두 집 살림을 할 때가 많았고,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는 이제 더 이상 먹고 싶지 않은 것을 먹지 않는다. 그래서 나도 요리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친구 중에 나보다는 나이가 많은 오십 대의 미혼녀가 있다. 팔십 세가 넘은 그녀의 엄마는 아직도 그녀를 위해 밥상을 차리고, 그녀의 도시락을 싸 준다. 그런 그녀가 부럽다. 누군가 나를 위해 밥을 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 축복받은 일이다. 아침에 출장지에 있는 남편한테서 전화가 왔다. 배는 고픈데 움직이기 싫어서 침대에서 게으름을 피우고 있던 나는 남편에게 대뜸 <나도 마누라가 있었으면 좋겠다. 밥 차려주는>했더니, 같이 있으면 자신이 밥도 하고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겠단다. 우리 남편은 말로는 못하는 것이 없다. 나를 위해 심지어 달나라도 갔다 올 수 있고, 온 세상 바닷물이 다 마를 때까지 나를 사랑한다고 한다. 하지만 뿐이다. 작년 여름휴가철 한 달간 같이 있었을 때 정작 끼니마다 밥을 한 사람은 나였다.


나도 밥 차려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배달의 민족>에 그간 쏟아부은 돈이 얼마인지 한번 검토해 보아야겠다. 어쩌면 식모 아주머니를 두는 게 더 경제적일지도 모른다는 황당한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벌면, 좋은 집에 식모 아주머니를 두고, 좋은 차에 운전기사 아저씨를 두고 그렇게 살 수 있겠구나 라는 망상도 해 본다. 이 참에 복권이나 사 볼까? 나도 팔자를 한 번 뜯어고쳐 보고 싶다.


어렸을 때는 부동산계의 거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왜 나는 돈 많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해야지 하는 생각을 못했을까? 나이 들면 속물이었던 사람은 더 속물이 되고, 속물이 아니었던 사람도 속물이 되기 마련이다. 돈의 힘을 좋든 싫든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물 타령을 하려고 이 글을 쓰게 된 건 아니고, 그냥 나에게 밥 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가족을 위해 밥을 해주는 사람들은 너무도 소중한 사람들이다. 내가 가족을 위해 다시 밥을 해 줄 때쯤이면 아이들은 모두 떠나고 나와 남편만 남아 있을 때겠지. 그때라도 내가 차린 밥을 먹겠다면 나는 기꺼이 가족을 위해 밥을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를 위해 밥을 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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