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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Nov 26. 2020

산 넘어 산

최근 마음이 참 복잡하다. 사실 가장 고통스러운 부분은 사람에 대한 실망이다. 나는 왜 미련하게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희망을 갖고 살까?


한국 명절에 쉬지 못하는 나에게 어느덧 쉴 수 있는 시간이 왔다. 어제 점심시간에 동료 중 한 명이 칠면조를 구워 왔다. 점심시간이 다 끝나고, 칠면조는 아직 반이나 남았는데, 누군가 전자레인지에 라면을 끓이다가 태웠다. 그리고 탄 냄새가 작지 않은 건물을 가득 메웠다. 그 사람은 왜 그랬을까? 남이 정성스레 만들어온 칠면조 요리를 두고 왜 라면을 만든다고 그 난리를 쳤을까? 점심에 칠면조 요리를 먹으라고 이메일이 몇 번을 갔건만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채식주의자였을까?


팀 프로젝트를 하다가 한 번 된통 당하고, 나는 다시 시도했다. 불만이 제일 많았던 한 명이 선뜻하겠다고 나서더니, 이 주가 지나도록 자신이 맡은 부분에 진척이 없었다. 내가 맡은 부분을 두 개나 완성해 놓고, 결국은 발표가 코 앞에 닥쳐서 그 사람이 맡은 부분까지 내가 해야 했다. 사람에게 최소한의 양심이라는 것이 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왜 미련하게 또 믿었을까?


한 달 내내 집을 찾아보았다. 하와이, 버지니아, 플로리다, 캘리포니아, 애리조나에서 다시 하와이 그리고 버지니아. 나의 집 구하기는 슬프게도 나의 인간관계 기술과 너무 닮았다. 자꾸만 도돌이 표. 하와이에서는 넓은 땅 있는 집 구하기가 힘들고, 플로리다 역시 집 값이 만만치 않고, 캘리포니아는 말할 것도 없고, 애리조나에는 나무가 없다. 버지니아 주는 그나마 조건이 괜찮은데, 조기 퇴직을 하고 맘 편히 쉴 수 있는 나와 달리, 십 년은 더 일을 해야 할 남편이 직장에 다니기에는 너무 먼 거리다.


요즘 자꾸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밤낮없이 머리 맡을 뛰어다니는 얼굴도 모르는 아이들과, 출근길 어김없이 도로에 주차된 차들, 그리고 일터에서 만나는 똑같이 이기적인 사람들. 이 모든 것들이 너무 지겹다. 사람이 점점 싫어진다. 아마도 한 곳에서 너무 오래 있었나 보다. 떠나려면 내려놓아야 하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내 존재 가치에 대한 금전적인 보상이 따르지 않을 때, 나는 과연 지금보다 행복할 수 있을까? 수많은 "What if..?"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최근 17년간의 공무원 생활을 그만둔 어느 브런치 작가의 글에서 이런 내용을 보았다: "확실한 건 계속 일을 하면 나는 내일도 불행할 것이다." 그건 나에게도 들어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동안 쏟아부은 노력과 수고가 아까워서 (매몰 비용이라고 들은 것 같다.) 여기서 쉽게 포기할 수가 없다. 그리고 불합리함을 견디지 못하고 달아나려고 하는 나약한 자신을 또 채찍질한다.


내가 사는 곳은 산으로 빙 둘러 쌓여 있다. 지난 십 년간 같은 배경을 보고 살며 참 지겹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산이 보이는 곳에 혹은 산속에 집을 구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산 넘어 산으로 가기 위해서. 그럴 봐엔 지금 이곳에서 더 견뎌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한편으로 해 본다. 내가 뭘 원하는지 사실 나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Now here이 자꾸 Nowhere처럼 느껴진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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