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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Jan 09. 2021

족발 먹는 여자

다이어트의 부작용?

최근 디톡스 다이어트를 한다고 6일을 굶었다. 그때 머리를 스치고 간 음식들이 몇 개 있는데 미역국, 삶은 달걀, 그리고 족발이었다. 두 번의 출산 경험으로 아마도 나의 몸이 극단적인 트라우마를 겪으며 출산의 경험을 자연스럽게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미역국이 생각난 건 논리적으로  이해가 갔다. 어릴 적 운동회 날에 백 원인가를 주고  삶은 계란을 사 먹을 수 있었다. 요즘엔 흔해 빠진 계란이 그때만 해도 귀한 음식이었다. 그래서 삶은 계란도 이해가 갔다. 그런데 족발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나는 파도포비아가 있다. 발을 싫어한다. 웬만한 음식을 다 잘 먹는 나이지만 평소에 닭발과 족발은 즐기지 않았다. 닭발이 싫었던 건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어떤 애가 매일  닭발을 가지고 학교에 왔었기 때문이다. 그 닭발에 네일 칼러까지 해 가지고서. 그 애는 도대체 왜 그랬을까? 그 애가 가지고 온 그 닭발이  너무 혐오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닭발을 먹어 본 기억이 없다. 그리고 먹고 싶은 생각도 없다. 족발은 주로 썰어서 나오기 때문에 가족들과 몇 번 먹은 기억이 있다. 그러다 '이게 발이다'라는 생각이 들면 자연스레 입맛을 잃곤 했다. 그래서 왜 디톡스 다이어트 중에 족발이 생각났는지는 알 수가 없다. 보식기까지 마치고 며칠 후 족발을 시켰다.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기 위해 밥 없이 족발만 먹었다. 족발에 따라온 상추 몇 장과 깻잎 몇 장을 고기 몇 점과 다 먹고 난 후, 남은 족발을 먹어 치우기 위해서 쿠팡에 여러 종류의 쌈을 주문했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그리고 족발을 그다음 날 아침과 그다음 날 점심으로 또 먹었다. 족발에 따라온 큰 뼈는 강아지에게 주었다. 강아지는 횡재를 한 듯 기뻐하며 족발 뼈를 먹었다. 나는 재택근무 중간에 점심으로 족발을 먹을 수 있는 것에 대해 설명하기 힘든 만족감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발이 싫다. 다른 사람의 맨발을 보는 것도 싫고, 다른 사람의 발이 내 몸에 닿는 것은 더 싫다. 그런 내가 족발을 먹고 싶어 했다니... 다이어트의 부작용인가? 그때 시킨 족발을 다 먹고 났더니 이번에는 쌈이 남았다. 남은 쌈을 다 씻어서 부엌 바로 옆 냉장고가 놓인 베란다에 두었다. 그리고 오늘 또 족발을 시켰다. 밥을 안 먹기 위해 시킨 건지, 아니면 콜라겐이 많은 족발이 먹고 싶었던 건지는 모르겠다. 족발에 따라온 상추 몇 장과 깻잎 몇 장을 먼저 먹고 며칠 전 베란다에 내다 놓은 쌈을 가져왔다. 추운 날씨에 쌈이 콩콩 얼어 있었다.


오후 4시에 저녁을 먹고, 남아 있는 족발뼈가 자꾸 신경 쓰였다. 아까 강아지에게 족발뼈를 먼저 줬어야 했는데, 미처 생각을 못했다. 강아지에게 족발뼈를 준다는 핑계로 오후 7시에 또 남은 족발을 꺼냈다. 뼈에 붙은 고기를 조금 떼어 내고 강아지에게 주었다. 뼈가 종류별로 있어서, 강아지가 실수로 삼킬 수 있을만한 작은 뼈는 다 골라내고 큰 뼈만 챙겨주었다. 그리고 나도 고기 몇 점을 집어 먹었다. 그런데 아까 얼어 있던 상추가 녹아서 상태가 멀쩡했다. 얼었다 녹은 상추를 먹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다이어트하다가 우연히 접하게 된 족발이라는 이 음식... 돼지의 발... 이것이 나의 다이어트에 이 될 것인가 아니면 독이 될 것인가? 덕분에 우리 집 강아지가 일주일에 두 번씩이나  맛있는 식사를 다. 족발이 나의 파도포비아를 극복하게 해 줄지도 모르겠다. 알고 보니 나는 발을 잘 먹는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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