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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Jan 09. 2021

우리가 함께 할 꽃길

아내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남편

남편은 나보다 세 살 반 정도 나이가 어리다. 게다가 나는 남편의 첫 여자다. 그렇지만 남편은 내가 전에 사귀었던 남자들이 있다는 것을 그다지 개의치 않는다. 남편은 성격이 유쾌하고 마음이 바다만큼 넓다. 내가 전에 사귀었던 사람들을 이담에 만나게 된다면 남편은 먼저 다가가서 친구 하자고 할 사람이다. 남편은 그런 사람이다.


그런 남편은 본인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예를 들어, 승진할 때마다, 졸업할 때마다, 각종 상을 받을 때마다, 항상 신과 아내인 나에게 영광을 돌린다. 내가 내조를 잘 한 덕이라고 한다. 내가 한 일이 그다지 없어도 항상 내 덕이라고 한다. 남편이 나를 너무 어린 나이에 만났기 때문일까? 나를 만나고 남편은 성장과 성숙을 동시에 해야 했다.


남편은 낙천주의자다.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유쾌하고 즐겁게 시간 보내는 걸 좋아한다. 미래를 걱정하기보다는 현실에 충실한 사람이다. 나와 정 반대다.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 부부는 수많은 토론과 협의를 거쳐 중간쯤에서 합의를 본다. 남편의 세계는  너무 해맑게 순진하고, 나의 세계는 객관적이지만 냉정하다. 그래서 둘은 서로가 필요하다.


남편의 승진 발표가 난 후 남편은 나에게 이제 더 이상 힘든 일을 억지로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나는 그냥 썩이기엔 나의 재능이 아깝다고 말했다. 남편은 이제 내가 하고 싶은 일, 나를 즐겁게 하는 일만 해도 된다고 했다.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남편에게서 진한 남자의 향기가 난다. 나의 어린 남편이 어느새 상남가 되었다. "내가 먹여 살릴게!" "너를 책임질게!" 그런 말을 하는 남자에게서 매력을 느끼는 나에게 누군가는 내가 전근대적인 사고를 가진 페미니스트의 적이라면서 손가락질을 할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내 남자에게서 "너를 책임질 수 있어."라는 말을 듣는 데서 오는 희열을 부정할 수 없다.


마냥 어리게 느껴졌던 남편이 자세히 보니 여러 면에서 사랑스럽다. 내가 예전에 사귄 남자들을 질투하지 않는 남자, 자신의 성공을 다 내 덕으로 돌리는 남자, 항상 유쾌한 남자, 나를 책임질 수 있는 남자,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단점까지 사랑하는 남자. '내가 남편 복이 많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남편이 이제 꽃길만 걷자고 말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자고. 아마도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었나 보다. (상투적인 표현인 건 알지만 언젠가 한 번 써먹어 보고 싶었다.)


남편은 아직도 나를 열렬히 사랑한다고 말한다. 미치도록 보고 싶다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우리 부부는 일 년 이상 떨어져 지냈다. 나도 남편이 보고 싶다. 아들도 보고 싶다. 그래도 그간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도 훌쩍 자랐고, 남편도 내가 기댈 수 있을 만큼 든든한 나무가 되었다. 세월만 흐른 게 아니고, 우리 가족이 모두 성장하고 성숙해 온 것이다. 앞으로 우리 가족이 걸을 꽃길이 기대된다. 그 길에 무슨 꽃을 심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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