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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Apr 26. 2021

살면서 내가 딸에게 배운 것

나는 어리지 않은 나이에 딸을 가지고, 내 인생의 목표를 좀 더 현실적으로 바꿔야 했다.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포기하고, 되도록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안전성 있는 직업을 택했다. 그해 딸은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나에게 왔다.


아직도 거실에는 딸의 백일 사진이 걸려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바라보며, 아이가 어릴 적 그 시절 회상에 젖곤 한다. 나도 나지만, 아이 아빠도 딸을 엄청 사랑스러워한다. 부모의 사랑을 부족함 없이 받고 자란 아이, 자신이 예쁘다는 걸 너무 잘 아는 아이, 딸은 그런 아이다. 딸은 남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 자신이 뭔가를 성취해야 하고, 인정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모습 그대로 항상 사랑받기에 충분했고, 그래서 그게 얼마나 행운인지 그런 것조차 알지 못한다.


그런 딸과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했던 나는 가끔 닮은 구석이 있는 듯하다가도 자세히 보면 많이 다르다. 딸은 그림을 그릴 때 망설임이 없고, 뭔가 선택을 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사춘기를 거치면서 성격이 약간 내성적으로 변하긴 했지만, 딸은 여전히 낙천적이고, 쾌활한 면이 있다.


그동안 딸을 가까이 지켜보면서 내가 딸에게 배운 점들이 있다. 딸이 초등학교 일 학년 때쯤 집에서 훌라후프를 한 적이 있는데, 아이는 훌라후프를 아무 힘도 들이지 않고, 너무 자연스럽게 오랫동안 계속했다. 아이가 훌라후프 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훌라후프를 배웠다. 그 이후 산책을 하지 않는 날에는 집에서 30~40분가량 훌라후프를 한다. 내가 하는 몇 안 되는 운동 중에 하나가 된 것이다.


딸은 음식을 많이 먹지 않는다. 가끔씩 욕심을 내어 반찬이 많이 나오는 도시락을 시키긴 하지만 실제로 먹는 양은 도시락의 1/3밖에 되지 않는다. 세트로 나오는 맥도널드 햄버거는 아이가 먹는 음식 중에 가장 대량이다. 주로 아점이나 점저로 먹곤 한다. 어릴 적 사탕을 못 먹게 했더니, 아이는 요새 걸핏하면 슈퍼에 달려가 사탕을 사서 종일 먹고 있다. 아마도 군것질 때문에 음식을 적게 먹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아이는 나처럼 "음식을 남기면 안 된다!"라는 사명감 같은 게 없다. 한 입을 먹었든 한 입이 남았든, 자신이 더 이상 먹고 싶지 않은 순간에는 바로 수저를 놓는다. 남은 음식물 처리에 대한 고민은 오로지 나만의 것이다. 덕분에 우리 집 강아지는 아이가 남긴 삼겹살, 베이컨, 햄버거 패티, 치킨, 계란, 심지어 빵까지 못 얻어먹는 게 없다. 음식물 쓰레기 처치 곤란일 때는 그런 딸이 웬수 같다가도, 내심 딸이 부럽다. 자신의 입맛에 충실한 것, 그리고 먹어야 하는 사명감 없이, 단지 먹고 싶어서 먹고 싶지 않아서 그때그때 음식과 양을 스스로 결정하는 자유가 부럽다. 나도 그런 딸을 닮고 싶다. 하지만 "먹기 위해 사는" 나는 그런 딸과는 너무 다르다. 한 끼만 굶어도 너무 짜증 나고, 화가 난다. 나의 먹을 권리를 짓밟힌 것 같은 그런 분노가 치민다. 하루 종일 일에 시달리다 집에 오면 미친 듯이 먹을 때도 있다. 아,,,, 나는 진정 먹기 위해 사는 인간이란 말인가?


주말에 아이와 같이 옷 정리를 하다가 또 아이에게 배운 것이 있다. 아이가 옷장에 옷을 얼마나 쑤셔 넣었던지, 옷을 다 꺼내 놓으니, 남대문 시장에 무더기로 쌓아둔 옷과 같은 풍경이 되었다. 나는 아이에게 앞으로 계속 입을 옷과 입지 않을 옷을 분류하게 했다. (어쩌면 나의 실수였는지도 모른다. 몸에 맞는 옷과 맞지 않는 옷으로 분류를 시켰어야 했는데...) 아이는 손에 잡히는 대로 정말 영점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태산 같은 옷더미를 순식간에 분류했다. 나처럼 미니멀리스트를 소망하지만, 가난의 습관이 몸에 배어 버린 사람은 뭐든 버리는 것이 또는 포기하는 것이 쉽지 않다. 아이는 달랐다. 어쩌면 가난을 경험해보지 못한 자의 특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음식이 없어서 배가 고파본 적도 없고, 갖고 싶은 것을 못 가져 본 적도 없으니 말이다. 아이는 늘 살면서 자신이 필요한 것은 손쉽게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니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 또한 손쉽게 작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아이가 내심 부러웠고, 닮고 싶었다. 그래서 나도 아이의 흉내를 내 보았다. 정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옷장을 다 열어서, 내가 입지 않을 옷, 있으나 없으나 한 옷들을 꺼내서 바닥에 놓았다. 이내 내가 더 이상 원하지 않는 옷들이 큰 상자 한가득 모였다. 나는 그 옷들을 모두 헌 옷 수거함에 넣었다. 그리고 옷들을 하나하나 던져 넣을 때 묘한 쾌감을 느꼈다.

 

딸은 나와 많이 다르다. 때론 나를 가장 비판적으로 대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제 내 키보다 훌쩍 커버린 아이에게서 나는 앞으로도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 나와 다른 유년기를 보낸 딸에게서 분명 배울 점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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